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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직신학자 김균진 교수님의 저서 <기독교 신학 5: 종말론> 중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왜 마르크스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가?
인류의 정신사에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기독교 종말론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르크스가 하나님 없는 하나님나라를 이루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달리 말해, 하나님 없이 역사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역사의 목적, 곧 공산주의 사회는 사실상 성서가 이야기하는 하나님나라다. 유대인 태생으로 개신교회 신자가 된 마르크스는 신구약성서를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는 하나님나라를 역사의 목적으로 보는 헤겔의 신학적 역사철학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의 뿌리는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나라에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하나님 없이, 기독교 종교 없이 하나님나라를 이루고자 한다. 그는 하나님과 기독교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 신앙을 통해 역사의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기독교 종말론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도전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 종말론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 없이 역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가? 하나님 없이 이상적인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런데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로 인류가 경험한 공산주의 사회는 마르크스가 기대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회였다. 그것은 모든 소유를 함께 나누고,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아니라 무서운 독재사회였다.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라 공산당원과 인민 간의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공산당원의 특권사회였다. 빈부 차이가 없고 굶주림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수많은 인민이 굶주림과 영양 결핍과 질병으로 죽음을 당하는데, 당수와 당원들은 비만증을 염려하는 사회, 인간의 기본 권리인 거주 이전의 자유마저 박탈된 사회였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장 높은 존재”가 아니라 “위대하신 영도자 동무”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희생당할 수 있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사회임을 우리는 지금도 눈으로 보고 있다.
1937년 9월 중순에서 11월 말 사이에 일어난 조선인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는 공산주의 체제의 잔인함을 예시한다. 연해주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20만 명의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되었다. 명령자는 스탈린이었다. 침대, 화장실, 취사 시설이 전혀 없는 화차에 짐승 떼처럼 실려 운송되던 중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추위로 죽었다. 목적지 중앙아시아에 도착해서도 주거 시설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땅에 구덩이를 파고 겨울을 지내야만 했다. 20만여 명 중 절반이 죽었다. 강제 이주의 첫째 목적은 일본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첩자 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 없는 하나님나라”의 실상을 예시한다.
1950년 12월 19일, 조-중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중국의 펑더화이는 인해전술에 투입된 중공군 병사들의 참혹한 희생을 차마 볼 수 없어 마오쩌둥에게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영하 30도의 혹한에 모두 동상이 걸리고 방한복도 방한화도 없이 노지에서 잔다. 미군의 네이팜탄 투하로 다 타 버려 신발이 없는 병사도 있다.” 마오쩌둥에게 충성했던 펑더화이는 결국 “반공산당, 반사회주의, 반마오쩌둥”의 “3반분자(三反分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74년 옥중에서 사망하고, 2년 뒤 1976년에 마오쩌둥도 사망하였다.
공산주의 체제의 이 같은 모습은 역사의 목적에 대한 마르크스의 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경험했던 20세기의 공산주의 체제는 “역사의 해결된 수수께끼”(das gelöste Rätsel der Geschichte)가 아니라 또 하나의 역사의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북한 사회도 이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만일 죽었던 마르크스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를 보고 대노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사실 마르크스의 꿈은 위대했다. 이 위대한 꿈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그 원인은 먼저 마르크스가 역사의 목적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체제는 현실적으로 공의롭지도 못하고 정의롭지도 못하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의 능력과 생활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부지런하고 근검절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태하고 낭비하는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다. 똑같은 조건에서 노동을 시작했는데, 받은 월급을 술과 여자에 탕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형성하는 사람도 있다(이것은 내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어느 기업인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결과물을 모든 사람이 강제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이다. 공산주의가 제시하는 사유재산의 폐기와 모든 소유의 공유는 매우 인간적으로 들리지만 정의롭지 못하다.
개인의 능력과 생활 방식의 차이를 무시한 모든 소유의 공유는 모든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고, 국가의 경제를 파탄시킨다.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해도 그 열매가 자기의 것이 되지 않고 공동의 소유가 된다면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나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된다. 결국 경제가 파탄에 빠진다.
124년 전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에 의하면 혁명으로 어지럽던 1848년에 프랑스 정부가 군복 만드는 재봉사 1500명을 직접 고용하고서 숙련도나 기술 차이를 따지지 않고 모두 똑같은 공임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재봉사들이 처음 공임을 받았을 때 모두 아연실색하였다고 한다. 모든 재봉사들이 똑같이 받은 그 공임은 하급 기술자의 반나절 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재봉사들이 만들어 납품한 군복이 예상보다 너무 적었고 품질 또한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을 유길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까닭은…재봉사들의 게으름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게으르게 일하고도 그 공임을 부지런히 일한 자들과 같이 받는다면 어느 누가 게으르지 않겠는가. 또 부지런히 일하고도 그 공임을 게으른 자들과 같이 받는다면 어느 누가 부지런히 일하겠는가.” 마르크스의 꿈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의 꿈이 실패로 끝난 근본 원인은 인간의 본성을 깊이 성찰하지 못한 점에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는 자기의 이웃을 희생시킬 수 있고 소유에 소유를 쌓고자 하는 이기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은 이기적 본성을 버릴 수 없다. 성서에 의하면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예레미야서 17장 9절). 이 썩은 마음, 곧 죄의 본성은 무산 계급자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마르크스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마르크스는 인간 세계의 모든 문제의 뿌리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 자신의 변화가 필요함을 그는 다음과 같이 시사한다. “상황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혹은 (인간의) 자기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오직 혁명의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403,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제3항).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 내면에 깊이 숨어있는 죄악 된 본성에 대해 침묵한다. 그는 단지 무산 계급에 의한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역사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마르크스가 구상한 사회는 인간이 천사일 때만 가능할 수 있다. 그 구상이 실패한 것은 인간이 야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Ridley 2001,358).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는 동시에 “사회적 유전자”가 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에게 더 큰 힘을 가진 것은 이기적 유전자다. 이기적 유전자로 말미암아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이기적 경향성을 가진다. 인간의 이기적 경향성 내지 본성이 변화되지 않는 한 마르크스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는 실현될 수 없다.
장융의 자서전 <대륙의 딸>은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쓰촨성 이빈시의 시장이었던 그녀의 아버지 장쇼유 는 참으로 청렴결백한 공산당원이었다. 그는 먼 거리를 갈 때 아내를 자기 차에 태우지 않고 걸어서 따라오게 했다. “또 그는 아내의 생명을 구해준 반혁명 게릴라 혐의자를 원칙대로 처벌해버렸다.…또 그는 자기 형이 차(茶) 판매 사업에 추천되었을 때에도 앞장서서 반대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장쇼유 같은 사람은 공산주의 사회에 거의 없다. “일단 비판에 대한 면역이 생기고 나자 공산주의 관료들은 자본주의 관료들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부패했고 관료 세계에는 정실이 판을 쳤다”(Ridley 2001, 357-358).
청년 마르크스가 철저히 연구했던 헤겔은 “영(정신)으로서의 하나님”(Gott als Geist)이 역사의 궁극적인 주체라고 보았다.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의 변증법적 자기 활동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생각을 현실의 바탕을 결여한 추상적인 것이라 반대한다. “영”이라고 하는 “귀신”(Gespenst)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의 주체는 “영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산계급자들 곧 노동자들이다. “노동자 혁명의 첫 단계는 무산 계급을 지배 계급의 자리에 높이 세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있다”(Marx 2004, 616,<공산당 선언>에서). 무산 계급은 유산 계급이 소유한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 수단을 국가 곧 공산당에게 맡겨 생산력을 가능한 한 속히 증대시키는 데 통치권을 사용해야 한다(616).
여기서 마르크스는 무산계급자들도 이기적 본성을 버릴 수 없는 인간이란 사실을 간과한다. 끝까지 “자기의 것”을 먼저 챙기려는 인간이 권력을 장악하면 부정과 부패에 빠지기 마련이다. 무산계급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수억 원의 뇌물을 챙기는 현실은 이를 증명한다(부산항운노조의 경우). 정치와 경제 운용에 전혀 경험이 없는 무산계급자들이 국가 권력을 쥐면 수많은 실수 및 시행착오로 국가 경제가 파탄에 빠지며 결국 독재체제로 변모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20세기의 모든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에서 경험하였다.
마르크스의 이 같은 문제점은 많은 진보주의적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난다. 인간의 교육, 이성과 도덕성과 감성의 개발, 사고의 패러다임 변경 등을 통해 역사의 목적에 도달하려는 진보주의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원인도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간과한 데 있다. 기독교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간과한 데 있다.
물론 인간의 양심과 지성과 감성과 도덕성의 개발도 필요하다. 강력한 법질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이성과 양심과 감성과 도덕성을 개발해도, 아무리 강력한 법질서를 만들어도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극복되지 않는다. 참으로 위대했던 마르크스의 꿈이 실패로 끝난 근본 원인은 이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데 있다. 정치는 실종되고 권력욕이 난무하는 오늘날 정치 현실의 원인도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의 꿈은 실패로 끝났지만, 기독교 신학은 마르크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은 마르크스를 무신론자·이단자라고 비난하기 전에, 왜 그가 하나님과 종교를 거부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중요한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신앙은 역사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모든 실천을 약화시키는 “민중의 아편”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국가종교가 되어 정치권력자의 시녀와 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이 점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종교를 거부할 때 노동자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 홀로 역사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것은 노동자들, 아니 인간 일반에 대한 너무 과도한 기대다. 죄악 된 본성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쇠사슬에 묶인 자가 자신의 힘으로 쇠사슬을 벗어나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 명제로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들이 극복되지 않을 때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은 다시 머리를 들게 된다. 구소련 연방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한동안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은 잠잠한 상태였다. 자본주의 체제가 거의 온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초래한 문제들 때문이다. 빈부격차, 사회양극화, 새로운 형태의 사회계급화, 자연파괴와 생태계위기,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세계의 미래가 더욱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것이 무신론·유물론이라고 비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은 언제나 다시금 고개를 들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다시금 기독교의 역사 목적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등장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문제점은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가들은 그들의 이념을 반드시 실현해야 할 지상명령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강력한 흑백논리 속에서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기의 이념을 실현코자 한다. 이를 위해 여론 조작과 선거 조작과 독재도 불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생과 사를 함께 했던 동지들을 하루아침에 제거할 수도 있고(공산당원들 사이의 알력과 테러와 숙청), 어린 자녀들 앞에서 부모를 고사총으로 즉사시킬 수도 있다. 모든 범죄와 모순이 이념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권력의 세습도 정당화되고, 최고 권력자의 성적 타락도 정당화된다. 그들의 이념이 양심과 인간성을 마비시킨다. 이런 인간이 역사의 목적을 실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틀린 얘기다.
※ 김균진 교수 약력
한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학위(M.A.)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몰트만 교수의 지도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
1977년부터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명예교수
- 주요 저서 -
<Gottes Sein in der Geschichte>(헤겔의 하나님 이해와 역사 이해, 박사학위 논문, 1976)
<헤겔철학과 현대신학>
<헤겔과 바르트>
<유토피아니즘과 기독교>
<자연환경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이해>
<생명의 신학>
<기독교 신학 1,2,3,4,5>
<현대신학사상>
<죽음과 부활의 신학>
<예수와 하나님나라>
<루터의 종교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