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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조회 수 2492 추천 수 37 2005.02.16 23: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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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프라이머리 칼라스(primary colors)라는 영화는

상영시간이 두 시간 반은 되니까 상당히 긴 편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혹시 흑인운동가?)

흑백인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할아버지를 둔

‘헨리’라는 흑인 청년이 우연하게

대통령 후보로 나선 ‘잭’(?)의 선거 참모가 된다.

잭의 인간미와 진보성에 끌려서 그의 선거캠프에 들어오긴 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다.

잭에게서 발견되는 스캔들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 때문에

깊은 회의에 빠지면서도 잭에게 희망을 완전히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보다 25년 전에 이미 잭의 정치 승리를 위해

자기 삶을 걸었던 여자의 자살 건으로 인해서 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때 잭은 헨리를 이렇게 설득한다.

정치는 이런 거다.

나보다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떠나라.

이런 방식이 아니면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가?

결국 헨리는 잭을 떠나지 못하고,

잭은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잭은 대통령이 될만한 도덕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헨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가 잭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이 영화를 함께 본 다섯 사람은 이 질문을 갖고 서로 왈가왈부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갈등 가운데서 역시 현실주의가 승리한 것 아닐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미국 정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혹은 차악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구조에 철저하게 예속되는 것은 아닐까?

자살한 선배는 헨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제 길을 찾아 가라.

또 다른 선거 참모는 일찌감치 잭을 떠나면서 헨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로는 떠날 때를 아는 거야.

그런데도 헨리는 떠나지 못했다.

하나의 대답은 없을 것이다.

관객들이 알아서 찾으라는 말이겠지.

아예 답을 찾으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을 거다.

왜냐하면 이 세계와 인간과 역사는 그 어떤 공식으로도 완전하게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하고,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삼일 동안 읽은 다음,

피날레로 장식한 이 <프라이머리 칼라스>라는 영화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넘나든 셈이다.

한쪽은 철저하게 이 세상의 일에 관심을 끊고 하나님의 은혜에만 집중해야

내면적인 평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오직 정치적 욕망을 성취하는 것에만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자실한 여자가 자살하기 직전에

잭의 치명적인 약점을 제시하고 모든 정치적 욕망을 접으라고 하자

잭의 부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지난 25년간 쌓아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자기 남편이 아무리 부도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하게 증명되지 않는 한

무조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잭과 부인의 이런 태도에 절망한 이 여자는 결국 입을 다물고 죽는 길을 택했다.

토마스 아 켐피스가 아무리 세상의 욕망이 무의미하다고 외쳐도

세상은 귀를 막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이 세상을 그런 욕망에 취한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영적인 풍요만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전투구의 현실 속에서 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혹은 약간 개량된 방식으로 투쟁해야만 하는 걸까?

여기서 어떤 하나의 대답을 찾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한 사실만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은 세상과 등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깊숙이 참여해야만 한다.

다른 한편 우리가 세상에 들어간다면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헨리가 실패했던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여해야만 하는데 실패가 보장되었다는 게 바로

기독교인이 당면한 딜레마이다.


처음의 질문인 “헨리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는 곧

“기독교인은 왜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와 직결된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기독교인이 감당해야 할

일종의 십자가일지도 모른다.

떠나고 싶은데 현실적인 대안은 없는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간다고나 할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

토마스의 가르침과 이 영화 사이에 소통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세상의 현실 속에 있으면서도

신앙적으로는 끊임없이 세상을 떠나는 삶이 그 대답이다.

이 대답은 동시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기도 하다.

머물러 있음과 떠남의 변증법적 영성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심화할 수 있을까?



profile

[레벨:16]바이올렛

2005.02.17 10:33:51
*.208.98.184

정 목사님!
함께 좋은 시간들....보냈습니다.
3일 동안의 깊은 감동의 마음의 새김들이
평생가기를 다만 바랄 뿐입니다.

권현주 선생!
사랑하는 조카 서울 보내면 섭섭해서 어떡하지요?
섭섭할땐...
고전 읽기중 우스버 주글뻔한 사건!!!
- 하나님의 장작!!!! 안에서 거하며 -
ㅋㅋㅋ...어떻게 거할지 연구해봅시다.

함께한 분들...
새봄의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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