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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주체

조회 수 1978 추천 수 22 2005.03.11 23: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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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5월중에 있을 특강 원고의 일부이다. 현재 시간이 나는대로 글쓰기 중인데,
그중에 일부를 맛보기로 여기에 올린다. 큰 제목은 "성령론적 설교 행위에 대해"이다.)


은혜의 주체

성령이 진리의 영이라는 이 엄정한 사실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설교의 한계와 아울러 주관주의적 설교 행위에 기울어지고 있는 설교자의 오류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은혜의 주체에 관한 질문이다.
대개의 설교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신들이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쳐야겠다고 생각하거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성령이 은혜의 주체라고 말할 뿐이지 실제로는 설교자가 그 은혜를 다루거나, 더 나아가서는 처리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청중들이 자신의 설교에 감동받고, 그 결과로 교회에 충성하고, 건전한 인격을 갖게 되며, 허무한 이 세상에서 위로와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을 목표로 열정을 다 기울여 설교한다. 그런 설교자가 있는 교회의 청중들은 기독교 신앙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각종 예배는 물론이고 여러 성경공부과 개인적인 “큐티” 공부에도 힘을 쏟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그런 믿음이 좋은 신자들이 되어간다. 이런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는 부흥한다. 그래서 몇 년 사이에 수천 명, 또는 수만 명의 교회로 발전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이런 현상을 필자가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의 중심에 있는 설교자나, 아니면 주변부에 있는 설교자나 모두 한결같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은혜 현상이라는 게 과연 신학적으로 정당한지, 그리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한 건지 질문을 던질 뿐이다.  
우선 이런 대중적인 은혜 현상이라는 건 기독교 안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 안에, 그리고 정치나 대중예술, 심지어는 연예, 오락 세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슬람교도들의 예배행위나 성지순례 행위는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가장 감격적이고 열정적인 상태로 몰고 간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행하고 있는 전도행위도 역시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정도에 이르고 있다. 한국을 성지로 생각하고, 문선명 씨에 의한 국제 합동결혼식에 참여하는 전세계 통일교 신자들의 열정은 우리 개신교 신자들보다 윗길이다. 이런 종교적인 열정과 그들 나름의 은혜 현상에 대해서 종교학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거의 끝이 없을 테니까 이만 접어두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현상과 우리 기독교 안에 있는 은혜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물론 그런 주장이 근본적으로 옳기는 하지만 그런 주장만으로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은혜 현상을 다른 종교의 그것과 완전하게 구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런 식으로 기쁨과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이 경험하는 그런 것들은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종교적인 범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비록 종교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종교를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종교 현상과 비슷한 대중문화 행위는 적지 않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전국 대도시 광장에 수만, 수십만 명이 모여 “대-한민국!”를 외친 장면은 거의 종교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그런 집단적 응원에 몰입함으로써 자기를 초월할 수 있었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없으면 죽고 못 살듯이 따라다니는 일본의 중년 여성들의 그런 심리현상도 역시 자기를 초월하려는 인간의 종교적 욕망과 일치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는 기독교의 은혜를 이런 종교일반, 또는 인간의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현상들과 구별하고 싶을 것이다. 기독교의 은혜는 당연히 그런 것들과 달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도덕적으로 변했다거나 개혁적으로 변했다는 것은 이런 사태에서 거의 무의미하다. 오히려 수백억 원을 들여 교회당을 건축한다거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한다거나, 교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기독교의 은혜라는 게 그렇게 유별나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점에서는 이 세상은 드러내놓고 욕망에 치우치지만 우리는 은밀하게 그렇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신앙과 은혜에 무슨 문제가 개입해 있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 문제는 인간인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만 할 일종의 숙명이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우리는 궁극적인 것을 모르지만, 또한 모른 채 그것을 전해야 한다는 역설이 곧 우리의 숙명이다. 설교자가 이런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 실증적으로 무언가를 주장하고, 더 나아가서 청중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결국 우리의 그 많은 주장은 순식간에 선동으로 변할 것이며, 그 선동이 먹히는 경우에 청중들은 세뇌당할 뿐이다. 오직 진리의 영인 성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청중들을 다루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선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선동은 정치와 종교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교육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평생 피아노와 살면서 현재 피아노 선생으로 있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그 피아노 음악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거의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의 피아노 실력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었지만 시간의 연륜 가운데서 다시 생각해보면 별 게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들이 음악 자체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피아노를 잘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학생들을 자기의 생각으로 끌어 오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자기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음악 자체가 가르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그는 피아노 레슨 시간에도 가능한대로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줄이고 대신 음악 자체가 활동하도록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설교자도 결국 이런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설교 명망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듯이 청중들을 도구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온갖 종류의 인간학적 열망이 과도하게 분출됨으로써 결국 성령의 활동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학적 열망은 우리가 당연하고도 좋은 것으로 여기는 모든 사건과 현상들도 포함된다. 예컨대 언제부터인가 대도시 중형 이상의 교회가 경쟁을 벌이듯이 건립하고 있는 복지관도 역시 이런 인간학적 열망에 속한다. 필자가 여기서 이런 복지와 봉사활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라 그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벌어지는 성령론의 축소를 경계하는 것뿐이다. 물론 이런 일에 나서는 교회들도 역시 자신들의 행위를 근본적인 목표로 삼는 게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인간의 영혼구원이 목표이고 복지사업은 이른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복지활동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해야 할 교회의 존재방식으로서는 그렇게 바람직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을 감당하려면 대신 다른 본질적인 일을 포기하거나 소홀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자립하지 못하는 이웃 교회를 내버려두고 복지관을 세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회의 단일성이라는 본질에서 볼 때 상당히 곁길로 접어든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무얼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은혜의 주체가 성령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성령이 활동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설교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마 이런 말들은 우리가 흔하게 들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완전히 돌팔이 약장사 같은 설교자들도 여전히 성령을 의지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이니 더 긴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성령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성령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의 논의는 바로 이 대목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설교가 과연 성령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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