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3장 영성 훈련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조회 수 2997 추천 수 0 2014.03.08 12:50:42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경제나 과학이나 정치적인 면에서 상당한 진보를 이룬 인도에게 이것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인도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도덕적, 영적인 면에 있습니다. 인도는 영적, 도덕적 파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인도 교회는 그나마 조금 나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사회에 영향을 끼쳐야 하며 나아가 사회의 도덕적 영적인 가치들을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선교 일선의 선교사는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선교사가 성령으로 충만 되어 있지 않고는 영적 도덕적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나 감화를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 충만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영성훈련 방법은 선교 일선에서 선교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성훈련의 목적

리차드 포스터(Richard J. Foster)는 그의 책 '훈련의 축제'에서 영성 훈련을 '내적, 영적 실제이며 마음 내부의 자세'라고 정의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삶의 형성과 영적 성숙 및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에서 성장을 위한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영적 실습입니다.

 

이 영성 훈련의 목적은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키고 신선하고 지속적인 성령의 충만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포스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도구로 영적 삶의 훈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훈련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하나님 존전에 우리를 내려놓도록 합니다.” 중요한 영성 훈련들에는 묵상, 예배, 기도와 금식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묵상

모든 선교사들은 반드시 '크리스천 묵상의 예술'을 발굴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삭과 다윗의 경우를 통하여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저녁에 묵상을 위해 들판으로 나갔습니다."(24:63) "나의 침상에서 당신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당신을 묵상하였습니다." (63:6)

 

우리 인도인들은 묵상이란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힌두교, 불교와 어떤 현대 종파와 같은 동방 종교들은 영적 지복을 성취하기 위한 종교적 연습의 일환으로 묵상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힌두교와 기독교의 묵상의 개념과 실천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아드바이따(Advaita-둘이 아니다라는 범어) 철학에 근간을 두고 있는 묵상에 대한 힌두교의 개념은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초월하여(마야 Maya) 브라만 속으로 흡수됨으로서 지복(Nirvana)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와 같이 이것은 비인격적이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분리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주 마음(Cosmic Mind)에 병합됨으로서 개성과 인격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묵상은 마음을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독교의 묵상은 우리의 인격적인 하나님을 관조, 반영, 탐험하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포스터는 이 점을 강조하여 말하기를 우리를 둘러싼 모든 번잡함으로부터의 격리는 하나님과 다른 인격체와의 풍성한 교제를 위함이다.” 기독교의 묵상은 예수님이 스스로 설명하신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인도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만약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나의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4,7)

 

우리는 말씀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말씀은 우리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선포된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함으로서 말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묵상을 함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적인 삶속으로 흡수합니다. 마치 우리가 물리적인 음식을 단순히 먹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소화시키고 흡수시켜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묵상입니다. 묵상을 하는 것은 말씀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며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이것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119:97)

 

기독교의 경배

효과적인 묵상은 선교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예배는 경모, 찬양과 감사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사랑, 공의, , 거룩하심, 친절과 자비-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과 우리를 위해 하실 일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다윗은 위대한 경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래합니다. "매일 나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나는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것입니다. 위대하신 주님. 위대하게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연민으로 충만하십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긍휼이 무궁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에서 선하십니다."(145:1-9)

 

오스왈드 샌더스는 예배를 예수님과 말씀 안에서 그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색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새로운 비전은 이사야 선지자의 삶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사람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6:1-5) 나아가 샌더스는 말하기를 예배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조물과 창조주의 측량할 길 없는 거리의 인식 안에서 하나님의 장엄한 위엄 앞에 가장 깊은 겸손과 경외로 드리는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영의 순종입니다.”

 

전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은 다음의 말로 예배를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경배란

-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양심을 촉진시키는 것

-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

-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으로 상상을 채우는 것

- 하나님의 사랑을 향하여 우리 마음을 여는 것

- 하나님의 목적으로 우리의 뜻을 헌신하는 것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되 힌두처럼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고마움과 감사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주를 경배하고 섬길 의무가 있습니다. “너의 주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오직 그만 섬기라.” (4:10) 경배와 섬김은 함께 합니다. 그렇지만 경배가 반드시 우선해야만 합니다. 포스터는 이것을 바로 지적했습니다. “경배가 절대적으로 첫째며 섬김은 둘째입니다. 우리의 삶은 찬양, 감사와 경배하도록 강조됩니다. 섬김은 경배에서 나옵니다. 경배를 위한 대용으로서의 섬김은 우상숭배입니다. 행위는 경배의 적이 됩니다."

 

켄 나나칸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입증합니다. “경배를 사역과 동등한 위치에 두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역을 경배의 대적이 아닌 연장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역과 경배사이의 구별이 있더라도 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배가 끝날 때 사역이 시작됩니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공공집회든 예배의 훈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다른 성도가 몇 명 없는 밀림 오지에서라도 선교사는 개인, 가족 또는 다른 선교사와 같이 주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때때로 선교사는 그 사람들의 언어를 모두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토 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끼리의 교제에서 예배는 중요한 영성 훈련이고 선교사는 어떤 이유로든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전파할 기회나 예배를 인도할 대상이 없을때 주일예배를 소홀히 하고자 하는 유혹이 사역자들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선교사는 반드시 그런 유혹을 주의 깊게 피해야만 합니다.

 

기독교의 기도

묵상, 경배와 기도, 이 세 가지는 병행합니다. 사실 묵상은 포스터가 '묵상 기도' 라고 기술한 것처럼 기도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또 듣는 두 가지를 포함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우리말만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묵상은 하나님 전에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도록 우리를 돕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 모임은 묵상과 중보기도와 간구로 이끄는 죄의 고백과 묵상이 뒤따르는 경배-찬양, 찬미와 감사-로 시작해야만 합니다.

 

기도는 선교사역의 중추라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선교사들과 그들의 사역을 위해 정례적으로 기도하는 1000여 기도 그룹 내에 5만명이 넘는 친우 선교 기도 연맹(Friends Missionary Prayer Band)과 인도의 다양한 선교단체들에게 있어서도 이 말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비결입니다. 그렇지만 선교사는 외적인 기도지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개발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삶의 가장 위대한 예를 우리에게 제공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예수님은 밖으로 나아가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1:35) “그는 종종 스스로 들판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5:16) “무리를 다 보낸 후에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자 혼자 거기에 계셨습니다.” (14:23). “기도는 그 분이 사신 대기였습니다. 그분은 그것으로 숨을 쉬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가였던 마틴 루터는 기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하루 3시간 기도하지 않고서는 일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아자리아 감독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는 그의 존재의 주요 동기였습니다. 집에서나 해외에서나 임시 주둔지나 움직일 때도 하나님과 그의 만남을 지키기 위하여 4시 반에 일어나지 않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19세기의 선교사의 거장중에 한 사람인 허스슨 테일러는 50년 동안 한 번도 그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중국에 해가 뜬 적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선교사역의 전략적 무기입니다. 우리 주님은 가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말씀하셨습니다. (9:37, 38) 사도 바울은 그의 사역에 기도의 중요성을 느끼고 에베소 교회에게 두려움없이 용감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하여 기도해주도록 요청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것이니” (6:18,19). 그 같은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는 선교사의 삶에 중요한 사역입니다. 특별히 복음이 사람들로부터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때 그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는 선교현장에 선교사에 의해 행하여 질 수 있는 최선의 선교입니다.

 

기도는 선교 사역의 나아갈 바를 알려주며 능력을 줍니다. 영향력 있는 기도는 우리로 효율적인 선교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저는 남부 구자라트의 내부 부족들을 섬기던 첫 두 해(1975-76)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미전도 종족을 섬기는 이문화적인 정황에서 어떻게 교회건축과 복음 전파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방향도 없이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하며 힘써 일했으나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분투와 실패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무릎을 굽히도록 만들었고 기도에 우리의 시간을 더 많이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역지로부터 온 선교사들도 특정한 금식과 기도에 동참하였습니다.

 

무지와 맹목적인 믿음과 관습들, 인간이하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병든 자를 치료하고 악령을 물리치며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영적은사를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미전도 종족가운데 교회를 건립할 수 있는 사도의 은사를 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와 같은 2년의 금식과 기도 후 복음 듣기를 원하는 단체와 마을들을 알려주시고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시며 나아가 기사와 이적으로 복음전파를 확정할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았습니다. 기도의 결과로서 개종과 세례와 교회건립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교현장에서 모든 문제 앞에서 선교사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기도에서 그는 문제 해결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성공적인 선교의 비밀입니다. “은밀히 보시는 너의 하나님을 너를 공개적으로 상 주실 것이다.” (6:6) 선교사가 영적으로 메마른 지역에서 일하며 열매를 얻지 못할 때 그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드리며 방법과 장소의 전환 또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 등에 대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웨슬리 듀웰(Wesley Duewel)은 그의 책 기도를 통하여 세상에 접근하라에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세계 복음화의 열쇄는 당신과 나의 기도일 것입니다.” 라고 언급했습니다.

 

금식과 병행하는 기도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제임스 얼리 마세이는 '영성 훈련'이란 그의 책에서 금식 기도를 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인간의 영을 민감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13:2,3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명백한 안내를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교회지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금식은 비젼, 이해와 창조적인 영적 습관으로 인도하는 영성 훈련입니다.

 

델리 바이블 펠로우쉽 목사 로버트 레이드(Robert Reid)는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이유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믿음이 그릇된 기반위에 서 있을 때

둘째, 우리의 마음이 은밀한 죄를 즐기고 있을 때 (66:18)

셋째, 우리의 기도의 동기가 불순할 때 (4:3)

넷째, 우리의 마음속에 거리끼는 바가 있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지 못할 때 (1 3:21, 22)

다섯째, 우리의 마음속에 쓴 뿌리를 품고 있거나 남을 용서하지 않고 있을 때 (11:25)

여섯째, 우리의 물질적인 관계가 올바르지 않을 때 (벧전 3:1-7)

일곱째, 우리의 기도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불신과 절망의 분출구가 될 때 (11:6)

 

금식기도

금식과 동반한 기도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제임스 얼 매시(James Earl Massey)는 그의 책 영성 훈련에서 금식과 동반한 기도의 효율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인지할 수 있도록 사람의 영을 예민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2,3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명한 안내를 얻기 위한 교회지도자들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금식은 비전, 이해와 창조적인 영성 습관으로 이끄는 훈련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금식의 좋은 예를 보이셨습니다. 로버트 콜만(Robert Coleman)은 그의 책 주인의 마음에서 이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영적인 요구가 더 긴급할 때 음식을 삼가는 연습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는 사역에 음식에 대한 절제가 요구됩니다. (8:1-3). 다른 때에 예수님은 기도와 묵상에 그 자신을 온전하게 드리기 위하여 금식 기간을 의도적으로 지키셨습니다.” (4:1,2; 4:2; 1:12,13)

 

모범적인 선교사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미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빗 브라이너드는 규칙적인 금식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역에 합당한 자로 나를 축복하시고 안내해 주시도록 간구하기 위하여 은밀한 금식 기도를 위해 이 날을 구분해 두었습니다. 바로 그 밤에 주님은 저를 기도가운데 놀랍게도 만나주셨습니다. 저의 영혼이 그 같은 고뇌에 있은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식 기도는 그의 규칙적이고 잦은 영성 훈련이었으며 선교 일선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기도로 가장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의 사후 윌리암 캐리나 헨리 마틴은 그의 일기를 읽고 인도로 왔습니다. 마틴 루터, 존 칼빈, 존 녹스, 존 웨슬리, 찰스 피니같은 다른 위대한 사람들도 금식기도의 가치를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성취한 것이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특정한 경우의 기도 

웨슬리 듀엘은 영성 훈련의 일환으로서 사회관계와 수면으로부터 금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금식의 영은 또한 수면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아버지 하나님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잠을 자지 않으셨습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동일한 영적 굶주림, 부담과 관심은 잠을 자지 않음으로서도 이루어집니다. 오직 하나님과만 교제하고 중보기도 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 자신을 가족과 친구들과의 교제로부터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진짜 금식입니다.”

 

선교사는 반드시 금식 기도에서 능력의 근원의 비밀을 배워야 합니다. 그는 전선의 최전방에 있습니다. 그의 과업은 사람들을 사탄의 왕국으로부터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영적 전쟁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6:12) 그러므로 선교사는 그가 동료 선교사 또는 지역 신자들로 인하여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적 그리스도들로부터 박해가 있을 때, 중요한 프로그램을 짤 때 반드시 특별한 금식 기도의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규칙적인 철야기도, 새벽기도와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금식 기도를 위한 특별한 날을 비워두는 것은 성공적인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중요한 영성 훈련들입니다.

 

선교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은 브라안 라이스(Brian Rice)의 책 '영적 동력'에 잘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도는 인간의 노력으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기도할 때 선교의 권능과 능력이 그들에게 부여되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에 홀로 서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체계적인 성경공부, 묵상, 예배와 기도를 개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일에 바쁘고 종종 우리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묵상과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유혹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확하게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바쁜 삶이 가져다주는 황무함을 경계하시오." 선교사는 바쁜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성취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진리일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을 없애고자 하는 유혹을 조심스럽게 피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선교사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어주길 기대합니다. 그 같은 그리스도를 닮은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만이 가능합니다. 유명한 찬송가가 그 필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너 성결키 위해 네 머리 숙여

저 은밀히 계신 네 주께 빌라

주 사귀어 살면 주 닮으리니

널 보는 이마다 주 생각하리 (212장 너 성결키 위해- 역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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