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일개 필부의 삶도

인도의 길 조회 수 4160 추천 수 0 2010.03.12 08:51:45

한동안 극장가에서 특급 배우 샤룩 칸(별명 SRK)이 주연한 역사물 아쇼카가 뜬적이 있었습니다. 꽤 오래 전에 마하트마 간디가 세계적인 영화로 명성을 얻은 이래 참 오랜만에 등장한 역사물입니다. 후자가 인도의 근대사를 다룬 것이라면 전자는 고대사를 다룬 것이라 이 작품을 만든 감독과 스탭진들의 고증에 대한 노력을 생각한다면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조상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 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 최초 통일왕국 마우리야를 세운 마가다 왕국의 둘째 왕자 아쇼카의 파란 만장한 생애를 그린 이 영화는 관객동원을 고려해서인지 한 여인 카루바키와의 사랑을 구심점으로 영화를 전개해 나갑니다. 한때 아쇼카 왕자는 이복형 수심왕자와 왕권 쟁탈전에서 도피하여 이름을 파완으로 바꾼 채 야인시절을 보낸적이 있었습니다. 이리 저리 방황하던 아쇼카 왕자는 당시 마가다왕국의 적대국이었던 칼링가 왕국에 이르게 되고 역시 왕권 싸움으로 남동생과 숨어 지내던 칼링가 왕국의 공주 카루바키를 만나 로미오와 줄리엣식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정해진 이별, 아쇼카는 위독하다는 어머니의 전갈을 받아 마가다왕국으로 돌아가게 되나 그것은 아들을 보기위한 어머니의 마음이 지어낸 거짓 통보였음이 판명되고 다시 아쇼카는 카루바키를 찾아 돌아오게 되나... 카루바키를 아쇼카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호위원이자 카루바키를 사랑하는 칼링가의 제1의 무사 비임은 카루바키는 죽었다고 거짓 통보합니다. 비탄에 빠진 아쇼카는 형의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 와중에 불교도들과 접촉이 이루어지고 불교도 왕비를 얻게 됩니다. 수심왕자는 제사장을 위협, 왕위에 오르려는 과정에서 야쇼카의 어머니를 살해합니다. 결국 형과의 왕권을 갖기 위한 한판 전쟁에서 승리, 즉위한 아쇼카는 비탄의 왕자에서 잔인한 살인마로 돌변, 수많은 인명을 전쟁을 통하여 파리같이 죽이게 됩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마가다왕국과 칼링가 왕국이 벌인 대전투에서 마가다왕국의 왕 아쇼카와 칼링가의 공주 카루바키가 적으로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앞에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룬 전장의 참혹함 앞에서 아쇼카는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아쇼카왕은 이것을 계기로 이미 왕비를 통해 일견한바 있던 不殺生 교리를 가진 불교도로 개종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아쇼카는 다르마를 근간으로 하는 덕치주의 정책을 써서 대제국을 힘보다 정신적 감화로써 통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주는 예를 남겼습니다.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 중 많은 이에게서 왜 불교가 태동된 이 나라에 불교도수가 적으냐는 질문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것은 이러합니다. 기원전 1500년경에 인도에 들어온 유목민 아리안족들이 인도 대륙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브라만교는 철저히 브라만이 드리는 제식 중심주의였습니다. 즉 브라만이 어떤 제사를 드리느냐에 따라 우주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입니다. 씨족, 부족사회를 거쳐 지역적으로 작은 나라들이 세워지면서 왕들은 왕위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신의 대리인 브라만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왕의 즉위식(라자수야)에 신권을 부여받는 말희생제(아수바베다) 의식을 브라만이 수행하면서 이른바 종교와 정치세력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의 결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화를 견고화 시켰고 이것은 기원전 6세기 신흥세력에 기반한 평등사상의 도전을 받기까지 계속됩니다.

갠지스강 유역의 잉여농산물의 축적으로 인한 상업 발달로 세력을 얻게 된 신흥 세력은 기존 브라만 중심의 기존 지배 세력과 부딪치게 됩니다. 사람은 전생에 자기가 쌓은 업에 따라 주어진 운명에 충실할 때 더 나은 생을 보장받는다는 기존 업(까르마: 業)사상에 대항하여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인간의 운명은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붓다의 새로운 업사상은 이 신흥세력의 대환영을 받게 됩니다. 또 만인은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은 평소 수드라 또는 바이샤로 추정되어지는 자신의 모계혈통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아쇼카를 크게 고무시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의 인도를 건설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던 브라만중심의 차별주의를 배제하고 불교사상을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통치하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식의 법의 적용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도둑질한 브라만이 곤장 열 대면 수드라도 그러했습니다. 당시 차별된 계급사회속에 살고 있던 대중들은 행복하게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브라만도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만 없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호구지책(糊口之策) 힌두교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소나 말 같은 동물을 희생해서 드리던 제사를 그냥 신상앞에 꽃과 과일을 갖다 놓으면 되도록 절차 간소화(가정의례 준칙?)를 하였습니다. 민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 대중, 평신도들을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다른 요인도 있지만 이것이 아마 불교 쇠퇴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삶의 전환 고비 때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한 의식을 치루기를 원합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식, 돌잔치가 있고 결혼식, 장례식이 있습니다. 브라만은 다른 목적이 있었겠지만 하여튼 그것 하나는 칼같이 챙겨주었습니다. 반면 불교는 참선, 고행을 강조했지만 민초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민중들은 뭔가 허전했습니다. 굿이라도 하고 푸닥거리라도 해야 사는 재미가 있겠는데 그냥 앉아서 벽만 쳐다보라니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절들이 많이 세워질수록 평신도와 승려들과의 관계는 더더욱 멀어졌습니다. 그러니 토속신앙을 접수하고 민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힌두교에게 당해낼 겨를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초기에는 없던 간다라 문명의 영향을 받은 불상들이 절마다 들어서자 신상을 섬기는 힌두와 다를 바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불상 봉헌식등 각종 행사 때마다 만난 비구와 비구니 사이에서 일어난 도덕적 타락은 더 이상의 불교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치명타는 서기 10세기부터 시작된 유일신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의 침입이었습니다. 힌두들은 이교도 세력에 대항하여 단결을 이루기 위해 자신들만이 가지는 카스트, 정결규례 등을 내세우게 됩니다. 그 와중에서 불교는 그 발붙일 곳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불교의 쇠퇴와 함께 인도 사회가운데 스며들었던 만민평등사상은 일보 후퇴를 하게 됩니다.

인도가 헌법적으로 만민평등주의를 주장하며 자랑스럽게 이것을 지구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의 면피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 삶속의 기조(基調)를 이루고 있는 카스트에 기초한 불평등 사상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근대의 인도의 국부라 칭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이 불평등 사상을 극복하고자 불가촉천민들을 신의 아들(하리잔)이라고 부르며 천민의 딸을 양녀로 맞이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힌두 체제내의 개혁 그 자체가 갖는 한계성에 직면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불가촉천민의 지도자이자 인도 헌법의 초안자 암베드칼도 이 계급사상 투쟁에서 패배, 불교로 단체 개종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아쇼카의 삶과 불교의 흥망성쇠 그리고 인도의 평등사상의 흐름을 지켜보며 요즘 지도자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모임을 비롯한 한국 교회들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가진 것없고 못살고 힘들 때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비전하나로 충분히 배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들도 같이 고민하며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세상의 부요함의 누룩이 모임에 들어오고 소위 평신도들도 많이 똑똑해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생겨난 단체내 계급의 불평등성에 대하여 하나님앞에 평등을 요구하며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경구처럼 세계 역사상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나라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상이 그 통치이념을 뒷받침해주었습니다. 중국의 유가사상, 로마의 기독교사상, 고려조의 불교 유입, 조선조의 유학의 유입 등이 그 예입니다. 아쇼카왕은 즉위 초기에는 브라만체제를 고수한 카우탈리야재상의 도움을 받아 중앙집권적인 제국건설을 이룹니다. 그러나 칼링카 전투 이후 불교사상을 도입, 다르마에 기초한 정치쇄신을 이룹니다. 제가 속해 있는 모임도 평신도 중심의 모임이라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제사장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계급들에 의해 모임이 운영되어져 왔고 현재까지도 창시자 한사람이 권력의 핵심에서 구성원들의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이제까지는 그것이 통해오고 또 모임의 획기적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지도자가 아쇼카 왕만큼이라도 지혜롭다면,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면,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 앞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낡은 부대가 되어버려 쓸모없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 모임도 소망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금 영화 아쇼카속에서 감독이 그렇게 보여주고자 애썼던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평범한 일개 필부의 삶도 인도 전체를 호령한 아쇼카왕의 인생보다 더 위대하다." 자비량 선교사 생활을 해가면서 한 소자도 정녕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삶을 살고픈 소원이 간절해지는 요즈음입니다.


[레벨:2]바라바

2010.03.20 10:20:00
*.2.45.158

아쇼카 대왕의 불교 입문이 궁금했었는데 대략적인 이해를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종교에 관심이 많아 이 종교 저 종교 들여다 보는 취미가 좀 있어서 책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인도의 힌두교에도 관심이 많지만 책의 접근이 쉽진 않네요. 목사님께서 추천하실만한 힌두교에 관한 일반소개서처럼 개략적인 내용을 담은 도서가 있으면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특히 인도의 경전 바가바가 기타나 베다문헌 등이 보고싶네요. 목사님은 지금 인도 어디에 계시는지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인도에 관심이 많거든요.

profile

[레벨:26]사띠아

2010.03.24 18:59:08
*.177.217.8

바그바드 기타는 마하트마간디가 보통사람들을 위해 해설한 것이

국내에 번역 되어 있습니다.

 

힌두교나 불교등 비교종교에 관한 분야는

다비아 웹지기이신 이길용박사님이 전문가이십니다.

국내 출판된 상기 관련도서도 많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뉴델리에 살고 있는 자비량선교사입니다.

종교가 많은 나라에 살면서

여러가지 보고 들은것은 많이 있지만

요즘은 기독교가 무엇인가?

이 질문 하나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고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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