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달릿뜨 크리스천

인도의 길 조회 수 4278 추천 수 0 2011.04.09 06:02:53

달리뜨의 어원

달리뜨의 산스끄리뜨에서 형용사와 명사적 의미를 갖는데 고대적 의미로는 '터지다, 나뉘다, 깨어지다, 찢어지다, 짓밟힌, 학대받는, 흩어진, 박살난, 파괴된'등등의 의미입니다. 19세기에 와서 '조띠라도 퓰레'는 카스트제도에 희생자로서 불가촉 천민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하였고 암베드칼도 동일한 의미로 달리뜨를 사용하였습니다.

 

역 사

역사적으로 보아 현재 달리뜨로 알려진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2천년 중엽인데 이것은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알려진 리그베다의 내용에 기초를 둔 연구입니다. 리그베다는 인드라신의 영도하에 아리안족이 그 대적인 원주민인 '다스유스' 또는 '다사스'를 약탈하는 장면을 그리며 인드라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상당한 부분을 할애합니다. 20세기 인류학자들의 연구 또한 달리뜨는 인도대륙의 원주민의 후손들이라는 밝혀냅니다. '모헨조다로-하랍빠' 문명의 현장을 발굴한 인류학자들은 이 시대 사람들이 바로 리그베다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임을 밝힙니다. 발굴되는 유적을 통하여 이때 인더스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이 바로 원주민이었고 중앙아시아에서 침입한 아리안족에 의하여 동쪽과 남쪽 타밀나두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추정되어졌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 일단의 유목민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평야 정착민을 정복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사람이 되었고 정복자들은 왕과 귀족이 되었습니다. 리그베다는 찬양시 '프루사숙따'에서 네 개의 카스트의 존재를 노래합니다. '브라민은 입에서, 라자야나(끄샤뜨리야)는 두팔에서, 두 넓적다리는 바이샤가 되었고 그의 두발에서 수드라가 나왔도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에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두 적대적인 사람들의 갈등이 달리뜨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까지에 이르는 우파니샤드 시기의 챤도갸 우파니샤드는 브라만, 끄샤뜨리야, 바이샤로 태어날 수 있는 행위를 이야기하면서 찬달라(불가촉천민)를 개와 돼지에 비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인도 불멸의 위대한 문학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는 달리뜨는 명상이나 고행할 권리가 없고 또 교육을 받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각각 밝히고 있습니다. 마하바라타의 정수인 바그와드 기따에서 크라슈나는 네 개의 카스트와 그 역할에 대해서 명백히 밝히면서 라마야나와는 약간 달리 각자는 그 주어진 카스트에 충실한 삶을 살 때 보다 나은 카스트로 태어나게 되고 심지어 달리뜨라 할지라도 종국에는 신의 세계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마누법전은 달리뜨의 인간으로서 주체성마저 무너뜨려 버립니다. 마누법전은 두 번 태어난 계급으로서 브라만, 끄샤뜨리야, 바이샤를, 한번 태어난 계급으로서 수드라를 다루면서 그외에 다른 카스트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칭하는 제5계급을 이야기합니다. 이 제5계급을 다룬 것은 상위계급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불가촉천민으로 다루어진 이 계급 중 가장 멸시받는 계급은 브라만 여인과 수드라 남자사이에 태어난 자녀로서 찬달라 또는 사빠카라고 불리워지며 동네 외부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700년경 마누법전이 완성되었을 때 달리뜨의 부정적인 측면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브라만의 패권에 도전하여 고따마 부다(기원전 563-483)나 마하비라(기원전 540-468)가 불교와 자인교를 창설하였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카스트를 부정하는한 어떠한 종교도 인도의 토양안에서는 살아 남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자인교의 학자였던 지나세나 자신도 삼스까라스(삶의 순환주기)를 인정함으로서 자인교내에 카스트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빚어내며 힌두교 카스트 제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였습니다.  불교도들은 마누법전이 완성되는 시기에 천민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로 불교도들도 카스트에 동화되어졌습니다.

 

무슬림이 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712년이었습니다. 1202년 델리에 노예 왕조가 건설되면서 1862년 무갈제족의 마지막 왕인 바하둘 샤가 죽기까지 인도는 킬지, 샤이드, 수리와 무갈제국등의 이슬람왕조에 의해 다스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은 알라신앞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슬람 자체도 몇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고귀함을 의미하는 '아쉬라프', 짱을 의미하는 '샤이크', 무갈과 힌두의 크샤뜨리야에 버금하는 빠단이 있었는데 이 계급들은 힌두의 두 번 태어난 카스트에 해당하였습니다. 중간 그룹은 각기 깨끗한 일에 종사하는 직업을 다루고 마지막 계급은 청소부, 거지등 천박한 일을 하는 직업인과 불가촉천민으로부터 개종된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중 하나는 힌두이즘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영향이었습니다. 또 다른 가능한 이유는 이슬람 자체속에서 그같은 구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댜. 네루대 교수 임띠아즈 아헤메드는 '무슬림의 카스트와 사회계층'이라는 책에서 그런 요소를, '아랍은 비아랍사람보다 우월하며 아랍인 중에서도 쿠샤이트족은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하고 비아랍인 중에서는 부와 조부가 무슬림이면 아랍인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나 충분한 부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며 무식한 아랍인은 비록 알리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식자인 비 아랍인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며 무슬림 신학자는 상인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고 들고 있습니다.

 

무슬림 통치시대의 다른 종교 또한 조금씩 다르게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타협 또는 동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유대교는 1020년에 코친과 서부인도의 봄베이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힌두 왕에게서 코끼리를 탈수 있고 드럼과 나팔로 행진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는데 이들은 백색인종인 고라와 검은색 인종인 깔라 유대인들로 나뉘어졌고 원주민과 동화된 유대인은 더 천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중 대부분은 1950년 이스라엘로 돌아갔습니다. 페르시아로부터 온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오기전부터 자체적으로 네 개의 카스트로 나뉘어져 있었고 힌두와의 접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달리뜨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시바신을 섬기는 링가야티즘은 모든 신도가 시바신앞에서 동등하다는 평등주의를 주장하였으나 그 자체가 카스트에 속해져 있기에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미미하여 달리뜨 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시크교 또한 평등주의를 주창하며 힌두나 무슬림의 개종을 독려하였지만 결국 그 자체에 카스트를 행하고 있었다는 자료가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란으로부터 건너온 바하이교도 힌두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체내에 카스트를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에 동인도 회사가 세워지던 1599년을 인도에 대한 영국 통치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첫 150년동안 동인도회사는 오직 비즈니스에만 전념했고 1744년부터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857년 힌두 카스트제도의 전복을 염려한 것이 주된 동기가 된 군대 봉기를 진압한 영국은 통치권한을 동인도회사에서 영국 왕실로 옮기고 통치 강령을 선포했습니다. 영국은 사회와 종교 관습에 대해서는 불간섭 정책을 시행하고 심지는 카스트를 옹호하는 법을 시행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심지어 가장 진보적인 평등주의자의 종교인 기독교도 이 카스트제도에 물들었고 그 결과로 일반적으로 달리뜨문제와 특수한 면에서 기독교 달리뜨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무갈제국의 통치기에는 박티운동을 주도한 박티 성인들은 달리뜨의 문제를 제시한 것과 영국의 통치기간중에 몇몇 위인에 의해 달리뜨의 지위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무척 고무적이었습니다. 비록 사회전체를 개혁하지는 못했지만 조띠바 퓰레, 암베드깔과 간디같은 위인들은 달리뜨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퓰레를 뒤이은 암베드깔은 달리뜨를 힌두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고자하는 노력을 한 반면 간디는 힌두사회의 계층질서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고 달리뜨를 존속시키면서 대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간디는 금식으로서 '분리된 가운데서 선거'를 하고자 결정한 수상의 선언문을 힌두 다수의 카스트 선거에 지정카스트라고 불리운 달리뜨를 '결합해서 하는 선거'로 바꾸었습니다.

 

암베드깔은 인도의 헌법 그 자체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인 것처럼 인도 헌법은 모든 사람에게 전적인 종교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또 종교 차별을 금지합니다. 그러나 지정카스트를 인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341조는 헌법의 근본 정신을 위배하였는데도 그대로 대법관도 사용하여왔습니다. 웃기는 것은 지정카스트가 되어 정부의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항에 처음에는 힌두 달리뜨만 해당이 되었다가 나중에 시크, 불교 달리뜨까지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은 여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명백한 종교 차별인데도 아직까지 인도 헌법은 버젓이 그 차별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대통령령으로 임명된 특별 사무관이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 보고한 1951년 조사 보고서와 1980년 보고된 만달 위원회의 보고는 달리뜨의 비참한 현실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만달보고서는 인도 사회내 거대한 '불평등과 차별의 요소'를 가진 카스트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90년 8월 수상이 만달보고서의 일부를 시행하라고 했을 때 인도 전역은 한차례 뒤집어졌습니다. 이러한 노력도 실패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종교와 정치적 구조에 의해 지원을 받은 수세기에 걸친 압박과 착취로 빚어진 달리뜨 들의 망가진 내면을 다루는 대신 다양하게 표출된 외부적 현상에 제한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찬 달리뜨의 문제 

크리스찬 달리뜨의 문제는 현존하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어떠한 문제들이 있습니까?

 

첫째는, 달리뜨로서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기존 전통사회에서의 배척과 정부의 특혜를 받지 못한다는 불이익과 동일한 기독교내의 카스트 사회에서도 차별대우를 받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둘째는 4세기경 남인도 케랄라 지역에 들어와 8세기에 뿌리를 내린 시리안 정교내에서 인정된 카스트는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유럽기독교인 즉 서부 해안 고아지방에 도착한 포루투칼인이나 캘커타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술많이 마시고 나쁜짓 더 많이하고 더 많이 사람들을 때리고 모욕을 준다는 이미지를 원주민에게 남겼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영향이 아직까지도 인도인 내부에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셋째는16세기에 인도에 도착한 유럽 선교사들도 이런 나쁜 영향력을 고치려고 애쓰기 보다 타협하거나 안주함으로서 개선의 여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특히 로마 카톨릭 선교사인 로베르토 노빌리로부터 시작된 교회내의 카스트제도의 인정은 뒤따른 신교 선교사들이였던 지젠발그, 헤베르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쳐 기독교내에 큰 장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넷째, 인도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기독교 복음을 상위 계층 중심으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신.구교 선교사들의 선교방식은 인도 달리뜨 기독교인들 내부에 자리잡은 깊은 내부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섯째, 초기 선교사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종교적인 이해입니다. 대부분 할레대학 출신으로서 프랑케 교수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은 개인 경건, 개인적인 접근, 피안의 세계, 천국에 있을 장래에 대한 준비, 현재의 삶은 별로 중요치 않다는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선교에 임했습니다. 이런 중세의 선교사들의 기독교 종교에 관한 이해는 크리스찬 달리뜨로 하여금 전적 자유를 경험하게 하는 대신에 그들의 내적 포로된 상태를 간직한채 삶의 현실을 도피하게하는 길을 제공하였습니다.  

 

여섯째, 선교사들의 인도인을 대하는 자세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은 진리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무지한 인도인들에게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아가 인도인은 선교사가 가진 진리, 믿음을 단지 감사로 영접하기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벌을 받게 될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문화 상황화를 이루지 못한 선교사들의 선교신학은 훗날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습니다.

 

일곱째, 선교사들은 섬기는 종으로 인도인을 섬기기보다 오히려 사합(주인님)으로 섬김을 받았습니다. 자연히 인도인들의 내면에 선교사란 서양인과 주인님을 결합한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월감은 변화되지 않는 크리스찬 달리뜨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선교사들은 상위계층 또는 인도 사회의 지도자를 개종시키게 된다면 모든 이들을 개종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렉산더 더프는 하위 계층의 자녀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반가와 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는 프란시스 세이비어와 같이 숫적으로 증가 효과를 보기 위해 하위 계층을 개종시킨 사람이 있는 반면 로베르토 노빌리와 같이 아예 하위 계층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는 두 그룹이 있어 왔습니다.

 

아홉번째, 선교사 자신들이 달리뜨 제도를 전적인 세상의 제도로서 인도 교회의 전형적인 표현이다라고 말함으로서 이 제도를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실시되던 교육마저도 이를 옹호했습니다.

 

열번째, 소위 기독교 세계의 지도자들이 뇌물을 받아 먹거나 자기만 생각하고 행동을 함으로서 다수의 달리뜨들에게 절대적인 불행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인도 크리스찬 신학 재정립의 필요성

인도의 달리뜨는 그들의 주체성을 상실했습니다. 잃어버린 주체성을 다시 획득하기 위하여 개종을 포함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최근 달리뜨의 선각자들은 그들의 자주성에 대한 질문과 연계된 기본권을 재획득하는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달리뜨 크리스찬이 주체성회복을 이루고자 한다면 신학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신학은 소수의 힌두 브라만 개종자들이 자신들의 개종을 기존 힌두 브라만적인 전통에 입각하여 밝힌 신학이라 다수의 인도 기독교인에게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서민 특히 달리뜨의 경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신학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정립될 때 달리뜨 기됵교인이 자신들의 인간으로서 기본권 회복과 주체성 확립 투쟁에 직접적인 동기가 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만약 역사적으로 힌두종교 및 그것의 카스트가 인도에 있어 달리뜨 문제의 시작이며 또 이를 깊게한 것이라면 다른 종교 - 내부적으로 발생한 자인교, 불교, 시크교, 링가야티즘과 외부로부터 온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와 바하이교-가  달리뜨의 잃어버린 인간 주체성을 회복하는데 전적인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들은 달리뜨 자신들을 카스트제도의 막강한 영향력과 충격으로부터 구할 수 없거나 그것에 대항할 수 있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달리뜨로 하여금 그들의 인간 주체성을 회복하게 하려면 카스트 제도를 포함한 지배적인 종교문화의 영향력으로부터 달리뜨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달리뜨 크리스찬이 만든 새로운 신학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인도 달리뜨 크리스찬의 잃어버린 인권과 기본권 회복이 가능토록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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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India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의 책임자로 있는 James Massey목사님이 쓴 'Dalits in India'(1995 초판, 1999 재판, Manohar) 의 요약 정리입니다. 인도 선교를 위하여 인도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서, 특히 인도 빈민 선교를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참조 되시길 바랍니다.



[레벨:1]중흥호랭이

2013.11.03 08:34:23
*.46.65.145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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