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실행이 아니면 죽음을!

인도의 길 조회 수 3907 추천 수 0 2011.09.08 18:41:02
좀 나이가 들다보면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 지기 마련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그렇다. 언젠가부터 보이는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마음이 허망해지고 영혼의 갈증이 더 심해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유대의 지혜의 왕이라 일컬어졌던 솔로몬이 그의 저서 서두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외치며 해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짙은 허무를 노래했을 것이다. 의자왕의 삼천궁녀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창고마다 넘쳐나는 것은 금은보석이었을지라도 늙고 노쇠해져가는 그에게 찾아오는 것은 그렇게 몸부림치며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에 대한 허무뿐이었다. 그는 그런 몸부림을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흔히들 사람들은 인도를 명상의 나라, 영성이 풍부한 나라, 그래서 영적인 스승인 구루가 넘쳐나는 나라라고 생각하며 인도를 방문한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이나 서구로부터 역류된 피자효과에 세뇌된 서구인들뿐만 아니라 ‘하늘 호수’같은 줄 알고 인도를 찾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많아야 2%에 불과한 겉으로 드러난 인도인의 영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인도의 전부인양 오해를 하고 자기도 그런 부류에 들어가보려고 뻘짓을 많이한다. 말이 너무 시니컬한가? 안타까와서 그러는 것이다. 그나마 그 영성추구의 2%도 사실은 지극히 현실적, 물질적인 인도인들이 이 땅의 것을 더 소유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모르고 가장된 영성에 푹 젖어든 것이다. 물질적인 인도인들속에 이 소유를 가지고 싸워보기전까지는 다시 말해서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머리터지게 싸워보지 않고서는 이 사실이 피부에 와닿기가 힘들다.

지난 4월부터 인도 신문 첫 면을 장식해온 일흔네살 노인 안나 하자레의 부패와의 전쟁은 인도인들이 얼마나 물질적, 현실적, 소유지향적인 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퇴역군인으로 마하라슈트라 소도시에 활약하던 안나 하자레가 이렇게 인도 정치권을 흔들 만큼 인도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급부상한 것은 바로 그 인도인의 최고 관심사인 소유문제, 속된 말로 표현하면 밥그릇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의 꼭지가 돌게 하는 요소 중 가장 극단적인 집단생존의 욕구에서 분출되는 종교분쟁에는 못 미치지만 밥그릇 문제는 인도 전체가 들썩거릴 수밖에 없는 심각한 것이다.

제이피 그린의 캐디는 6번홀 왼쪽으로 휘어져 4번홀 벙커쪽으 날아간 볼을 함께 찾으러 걸어가며 안나 하자레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스위스 구좌에 돈을 빼돌린 인도 정치가들의 검은 돈이 마치 자기 주머니에서 나간 것처럼 분노했다. 그 돈을 다시 찾아오면 공부하다 말고 이렇게 주말에 캐디를 하러 나오지 않아도 될 거라고 했다. 가진 자들의 더 갖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민초의 분노였다. 안나 하자레의 이번 부패타도행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90대부터 시작된 인도 경제개발의 직간접인 혜택을 보아온 중산층들이었다. 뭄바이의 다바왈라들의 모임도 이 운동을 하는 이들의 도시락을 제공하며 안나 하자레를 지원하고자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돈 맛을 알고 그 돈을 더 벌고자 하다가 더 가진 자들의 폭력, 썩을 대로 썩어서 진동하는 부패에 날마다 직면한 중산층들에게 안나 하자레는 그동안 쌓여온 분노의 분출구가 되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던져 자기들의 밥그릇을 위해 싸워주는 안나 하자레가 눈물겹도록 고마워서 너나할 것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잠간 인도에 살면서도 영어 난독증이 있어 신문을 보지 않는 이들, 월 독서량이 원피스나 신의 물방울 같은 격조 높은 만화나 골프천재 홍대리 또는 월간잡지 나마스떼 인디아에 국한되는 분들이나 인도, 인도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백안시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나 하자레 및 지난 몇 개월간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보겠다. 물론 ‘안나 하자레’를 구글하면 그 사연들이 후드득 쏟아져 나오겠지만 이렇게 요약정리해주는 학원 강사 같은 필자가 있으니 나마스떼 인디아 독자들은 참 행복한 거다. 어디서 돌 날아오는 것 같은데...

문제의 발단은 요상하게도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이 돈이 되어 온지는 오래 되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다보니 보이지 않는 주파수까지 돈이 되었다. 지난 주 종결된 한국 통신사들의 주파수 전쟁이 이미 몇 년 전에 인도에도 있었다. 방통부 장관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자찬한 한국의 동시오름 입찰방식과는 달리 인도는 밀봉입찰방식을 택했다. 10라운드까지 가며 한번 배팅때마다 수억원이 오가는 쩐의 전쟁, 동시오름입찰방식은 높이 책정된 가격 때문에 주파수를 점유하고서도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여 도산하거나 그 부담이 가입자들에게 오는 면이 있지만 적어도 투명성은 보장된다. 그러나 밀봉입찰방식은 얼마든지 뒷 작업이 가능한 부패의 여지가 남아있다. 남인도 타밀나두 주수상의 딸이자 전 통신장관이었던 안티무투 라자가 여기에 깊숙이 개입해서 감옥에 갔다. 사업허가를 받은 122개중 85개업체는 전혀 자격이 없는데도 통신장관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이들을 용인해줬던 것이다. 청렴, 클린 이미지로 소문이 난 만모한 싱 총리는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16개월간 이 문제에 모르쇠하고 있다가 일이 불거진 다음에야 급기야 난 모르는 일, 통신장관 혼자서 한 짓이라고 발표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여당이야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야당이야 좀 그렇겠는가. 승승장구하는 현 정권에 흠집을 내고 잘하면 정권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가 온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잘 모르지만 그 시기에 한 무림 숨은 고수가 분연히 일어났다. 그가 바로 안나 하자레다.

일단 안나 하자레의 등장은 그의 순수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 그렇게 보인다. 본명이 키산(농부라는 뜻의 힌디) 하자레인 그는 서부 인도 마하라슈트라 출생이다. 7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도 그렇지만 인도에서 장남이 주는 의미는 그 책임감에 있어서도 각별하다. 아버지가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장남이 동생들,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 암묵적인 사회의 압력이다. 가난한 가정의 밥 먹는 식구(食口)가 줄줄이 달린 상황에서 그의 생존의 투쟁은 눈물겨웠다. 뭄바이 시내에서 꽃 파는 남자도 되었다. 그러다 지원입대해서 인파국경지역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생사여일,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백지 한 장 차이임을 깨달으며 어차피 한번 왔다가는 인생 무언가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때 뉴델리 철도역 매점에서 집어든 비베카난다의 소책자가 그의 삶의 전환의 계기가 된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며 온전히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고 싶은 거룩한 여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망은 점차 필히 해야할 의무감이자 소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78년 12년의 군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랄레간 시디로 돌아온 그는 인도판 새마을운동을 시작했고 정부는 그의 노력을 인도에서 세 번째로 인정하는 시민상인 파드마 부산으로 치하했다.

이어 마하라슈트라에서 사회운동을 하던 하자레는 지난 4월 델리에 입성, 앞서 말한 2세대(2G) 주파수 경매사건에 연루된 부패사건 타도를 내세우며 부패 공무원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로크팔'(옴부즈맨의 힌디) 법 제정에 민간인도 참여시켜줄 줄 것을 촉구했다. 그 무기는 간디가 자주 써먹었던 모 아니면 도, 삶을 내던진 단식이었다. ‘실행이냐 죽음이냐?’는 단순 간결한 화법을 구사하며 간디의 비폭력저항 방법을 본 딴 그의 투쟁방식은 거국적인 동조를 얻어 내었고 각 도시마다 부패 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2차 단식을 시작하자 정부는 그의 요구를 100% 수용, 6월말까지 법안을 마련해 7월 국회에서 심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자레는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단식을 중단했다. ‘8월 15일까지 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인도가 그렇게 빨리 일이 처리가 되겠는가? 지지부진하자 8월 16일 다시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28일 몸무게가 7.5kg이 빠진 상태에서 의회가 이 법을 공식 논의할 것이라는 정부의 답변을 받고 단식을 중단했다.

물론 안나 하자레의 단식투쟁이 반민주적이라는 논란이나 법이 고질적 부패문화를 종식시킬 것이라는 허상을 심었다거나 간디처럼 치장한 스타일리스트의 정치쇼라며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다. 더구나 구자라트의 주수상 모디를 지지하는 그의 모습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무슬림으로부터 회의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인도 사회 구석구석 암세포처럼 자리잡고 있는 부패가 이런 운동으로 일소될 수는 없다. 누구도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부패문제를 들쑤시다가 성장해가는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주장이 기득권자들 뿐만 아니라 실물경제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중산층들이 피부로 느끼게 되면 부패척결은 차후에 해결할 문제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아니 기득권자들은 반드시 그렇게 밀고 나갈 것이다. 또 먹힐 것이다. 민초들을 다루는데 이미 몇천년의 노하우를 가진 기득권자들이 언론플레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잠재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안나 하자레가 그의 단식 투쟁을 통하여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인도 전역의 서민들을 이끌어 낸 것은 일찍이 대영 독립투쟁때 간디가 주도했던 Quit India에서 보여준 비폭력, 아힘사 정신이 인도 대중들 내면에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캠페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단식운동에 참여한 인도 대중들은 자신들의 심금을 울리는 안나 하자레의 진정성있는 외침에 거리로 뛰어 나왔고 그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하게 비폭력적으로 캠페인에 참가하였다. 이런 모습은 수시로 터지는 폭탄테러, 종교분쟁, 빈부간의 격차, 그리고 관료들의 부패 등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평화의 나라로 이끌어가는 민주적인 성향이 대중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 안나 하자레가 그렇게 벼랑끝으로 자기를 내몰 수 있었던 것은 가진 것이 없는 자가 갖는 한계없는 용기때문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가진 것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질 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볼 때는 그 누구도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주머니에 단돈 100루피가 있을 때 마음이 든든하지 않는가? 그러나 반면 가진 것이 많을 때 약해질 수밖에 없다. 능력은 아낌없이 줄 때 생기고 쓰고 빌려주면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조그만 오두막, 얼마의 은행잔고가 전부인 안나 하자레는 솔로몬의 궁전, 그가 누리던 모든 것보다 더 풍성하게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그렇고 부패를 해서라도 이 땅의 것을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가진 자들이 진정 비움의 영성에 침잠하는 바램을 가져보는 것이다. 비울수록 풍성해지는 인생의 패러독스를 실질적으로 매순간 체험하고 싶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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