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귀먹은 신을 섬기는 자들의 아우성

인도의 길 조회 수 3543 추천 수 0 2009.09.19 10:04:30

해마다 몬순이 지나고 책 좀 읽을 만한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면 예외 없이 고막을 두드리는 소음들에 마음이 번거로워진다. 가난한 이웃들이 지천인 인도에 살다보면 삶을 정말 힘들게 만들고 거친 말로 뚜껑 열리는 일들이 많다. 그 중의 으뜸은 정당들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소요도 아니다. 가진 자들의 더 가지고자 하는 몸부림도 눈꼴사납기는 하지만 그건 아니다. 숨 막히는 더위, 핸드폰에 가득 차는 광고성 스팸메일, 차가 멈추는 곳마다 달려와 동전으로 유리를 톡톡 두드리거나 긁어대며 한 푼을 구걸하는 이들의 인도판 ‘아줌마부대’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아니다. 우리를 정말 힘들고 열 받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귓가에 쉴 새 없이 잉잉대며 뇌세포를 아예 이잉이잉 진동 모드로 전환시켜 버리는 각종 종교의 성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음이다.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이 난민촌의 중심 다이아난드 콜로니였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정치·종교적인 이유로 갈라 지던 때 서부 펀잡지역의 난민들을 위하여 정부가 평당 1루피로 공짜로 불하하여 준 곳이다. 건축가이던 집 주인이 지은 집은 그곳의 ‘기준!’이 되었고 그 곳이 명당이었는지 바로 옆에 락시미나라얀 힌두사원이 세워졌다. 이에 뒤질 세라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시크교도들이 자기네들의 사원인 구루드와라를 세웠다. 힌두 사원앞의 작은 공원은 열심히 잔디를 가꾸는데도 10월이 지나가면 먼지만 풀풀 날리는 맨들 맨들한 땅으로 변했다.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한 연극공연이나, 각종 종교 모임의 결과였다.

그 모임을 할 때마다 성능 좋은 스피커를 틀어놓고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초저녁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틀어두었다. 공원을 향한 거실 창문을 꼭꼭 잠그고 두꺼운 소음흡수용 커튼도 내렸다. 무용지물이었다. 맞불작전 제1탄, 딸아이에게 피아노를 치게 해서 세 식구 같이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30-40분만에 항복, 이번에는 반대편 쪽방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콘크리트로 된 건물에 반향된 소리의 세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맞불 작전 제2탄을 펼쳐야 할 때였다. 그 소음에 버금가는 GE 창문형 에어컨을 틀었다. 평소에는 전기세가 만만치 않아 틀기가 망설여졌으나 그걸 지금 따질 때가 아니다. 건물을 울리는 에어컨 자체의 소음이 차라리 그 끊임없이 귀를 두드리는 찬가나 째지는 볼리우드 영화음악보다는 훨씬 견디기가 쉬웠다. 오죽하면 항간의 말쟁이들이 미국 CIA가 이라크 아부 가리브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고문할 최후 숨겨진 병기가 바로 이 소음이라 했겠는가?

인도의 모든 종교 창시자들과 섬기는 신들, 종교와 관련된 절기는 죄다 국경공휴일이다. 힌두교, 이슬람교, 자인교, 시크교, 기독교, 불교의 창시자들의 생일,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힌두교의 또 다른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될 마하트마 간디의 생일까지 죄다 국경공휴일이다. 1년 365일보다 더 많은 힌두 신들의 생일을 다 챙길 수는 없는 법, 대표를 뽑아 공휴일로 삼았다. 람이 그렇고 크리슈나가 그렇다. 무슬림들의 모함마드, 자인교도들의 마하비라, 시크교도들의 구루나낙, 기독교의 예수, 불교의 싯다르타의 생일날마다 터뜨리는 폭죽소리는 신도들의 숫자에 비례한다.

시크교도들은 구루나낙의 생일이 다가오는 시즌이 되면 여성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새벽마다 동네를 돌며 새벽송을 불렀다. 그 특심한 종교적 열정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나 간신히 이룬 단잠을 딩딩대는 쇳소리와 하이소프라노의 합창으로 인해 평화스런 몽상에서 거의 반강제로 깨어야 할 때는 정말 인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무슬림의 성전 마스지드 또는 모스크지역에 사는 이들의 형편도 그렇게 낫지는 않다. 성도들의 헌금은 곧 최신 앰프로 둔갑하였다. 스피커를 다는 탑의 높이도 올렸다. 그 스피커에서는 하루 다섯 번, 즉 수부라고 불리는 여명이 시작되는 때부터 시작하여 해가 중천에 뜬 때(주후르), 하얀 색깔의 해가 노란 빛으로 변해가는 석양으로 돌입하려는 때(아사르), 일몰직후(마그립) 그리고 어둠이 짙어 사물의 분간이 어려운 때(이샤)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려 위대한 신, 악바르 알라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주후르나 아사르, 마그립 그리고 늦게 잠을 습관을 가진 대다수의 도시인들에게는 이샤를 알리는 소리마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늦잠을 즐기는 이들에게 수부는 소음이 아닌 굉음의 수준이다.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시점, 계절이 시작되는 시점, 신들의 생일날 왜 이렇게 힌두사원이고 구루드와라고 모스크고 한결같이 그야말로 고성방가를 할까? 마치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와 갈멜산상에서 대결을 벌였던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처럼 말이다. 그때 엘리야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비꼬았었다. 사실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라면 갈멜산상에서 450여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던 엘리야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고 싶을 정도다. "좀 더 큰소리로 불러보시오. 바알은 신이니까, 다른 볼일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용변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멀리 여행을 떠났을지, 그것도 아니면 자고 있으므로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다수의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소음을 내며 불러대는 신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지만 내가 아는 한 신은 결코 귀머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힌두 사제든 무슬림 이맘이든 구루드와라의 구루든 한결같이 신을 귀머거리 취급하는 듯하다. 아마 이들이 이비인후과 의사들하고 카르텔을 형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소리의 세기에 비례하여 의사들이 만디르에, 구루드와라에, 모스크에 헌금을 많이 하기로 말이다. 모든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대다수 인도인들의 귀가 고음에 반응하는 고막의 부분이 많이 손상된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거기에 대해 폭죽의 피해에 대해 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을 보니 이 혐의도 턱없는 모함은 아닐거다. 또 아니면 신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귀 막고 탕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들의 음성을 듣고 죄의식을 느끼고 돌아오라고 그러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게다. 오히려 이런 소음으로 탕자들을 각성시키는 시도라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달아날 것이다.

인도 대법원은 9시 이후에 어떤 행사든 일정 수준의 소음을 내는 것을 금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종교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이 법을 따르려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도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 다른 종교가 내는 소음은 불륜이고 자기들이 속한 종교의 소음은 로망스인거다.

물론 종교가 내는 소리의 본질은 소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교회종소리를 기억하는가? ‘천다앙 만다앙 천다앙 만다앙’ 그 종소리와 처마 끝 풍경소리와 어울려 퍼지던 사찰 승려의 목탁소리는 그렇게 분주한 일상의 소리를 잠시 떠나 피안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게 하였다. 5백여 년 전 인도도 다름 아니었다. 그때 울려 퍼지던 북소리나 뗑그렁 거리던 사원의 종소리는 지나가는 길손에게 사원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어 그 방향을 향하여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한 마음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신들을 경배하게 하였다. 지금은 폭죽소리를 밤새도록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북인도 최대의 명절 디왈리도 예전에는 람의 귀환과 부의 여신 락시미의 방문을 밤새 디와(등잔)을 밝혀 환영했던 운치있고 고요하던 명절이었다.

1870년대에 펀잡의 제사장이었던 샤르다 람 필라우리에 의해 작사, 지금은 거의 세계 각처 모든 힌두들의 뿌자의 마지막 봉헌예식 아르띠에 사용되는 ‘옴 자이 자그디쉬 하레’는 처음 듣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감미로운 찬가이기도 하다. 기따 고빈다중에 나오는 비쉬누의 10명의 아바타를 찬양하는 다사와따라를 각색한 이 찬미가의 그 절절한 신에 대한 찬미 내용도 얼마나 좋은가?

무슬림도 지금은 초대형스피커로 하지만 당시에는 미나르라고 하는 탑에 올라가 좋은 목청을 가진 사람이 ‘알라아 악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치곤 했었다. 일출과 석양등 하루4다섯번 울려 퍼지던 그 청아한 목소리는 눈앞의 일에 마음이 분주해서 이 땅의 삶이 나그네 인생인 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 이들의 마음을 우주를 지은 창조주에게 돌이키게 하였다.

모든 종교가 내는 소리는 이렇게 신에게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범음이란 말이 있고 옴이라는 만뜨라는 우주의 소리라 하였다. 이런 소리들을 매개체로 하여 신도들은 신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기도를 통하여 뿌자를 통하여 신의 소리를 듣는다. 진정 신에 대해 집중하는 자는 이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이가 하는 목소리를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안다. 외면을 향하여 소리를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심의 초점은 신의 인도해 가는 우주의 소리에 있다. 그걸 들을 수 있는 영혼의 귀가 있다. 그런데 초짜들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자기 할 말 다 늘어놓으면서 칭얼대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자기 욕심으로 인해 마음의 귀가 멀어버렸다. 그래서 바락 바락 더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벙어리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자기 욕망의 표출이지 기도라고 할 수 없다. 신을 향하여 마음이 있는 자들, 들을 귀를 가진 사람에게는 한포기 새싹을 피우는 생명이 오는 소리가 들레지 않아도 새날이 밝아 오는 것처럼 분명하고 뚜렷이 들리는 법이다.

글을 맺는다. 이 땅의 종교인들이 할 일은 확성기 메가헤르츠 높여 귀먹은 신들을 깨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침잠하여 막힌 자기의 귀를 뚫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며 인도의 종교가 가야할 길이다. 어느 영화에 나온 아메리칸 인디언의 말처럼 말이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9.19 13:14:21
*.234.41.70

인도가 참 시끄러운 동네네요.

신의 이름만 대면, 법도 무사통과인가요? 아니면  법 그까이꺼, 이런 배짱인가요?

막가파로 보이는군요.

영화를 봤어요. 퀴즈풀어서 백만장자 되는 이야기더라구요.

아이들의 연기가 참 일품이었지요.

그 중에 애들 꼬셔서 눈멀게 하고 돈벌이 시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야, 자말, 넌 운이 좋았던 거 뿐이고"

신의 이름으로 학대받는 아이들..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profile

[레벨:26]사띠아

2009.09.19 13:32:00
*.173.232.127

도시의 이야기입니다.

시골은 아직도 천다앙 만다앙을 기대할 수 있지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셨군요.

외부인의 눈으로 본 인도인의 모습이죠.

그래서인지 오리엔탈리즘이 약간 느껴지지만

그래도 꽤 인도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백만장자 만들기 프로그램(꼰 버네가 크롤빠띠?)은

오랫동안 인도인의 인기를 모아온 프로그램이지요.

라라집사님.

그렇게 지속적으로 인도에 관심을 가지시다보면

훌쩍 인도 오실일 생겨버리십니다!!!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9.19 21:17:24
*.234.41.70

에잉~! 선교사님, 자꾸 바람넣지 마셔요.헤헤

글찮아도 영화 보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예전에 올려주신 사진 꺼내 봤답니다.

여전히 이쁜 아이들이예요.

인도, 제게는 아주 슬프고도 애잖한 나라네요.

툭 하면 터지는 테러에, 유혈사태, 극심한 빈부차이,

구걸행위가 아직도 자연스러운 나라,

제게도 점점 이런 인도가 각인 되어 가고 있네요.

언젠가 인도에 가게 되면,

더 피부적으로 느끼게 되겠지요.

그래서, 히말랴 다음으로 꼭 가보고 싶은 동네가,

'시티 오브 조이'동네랍니다.

패트릭 스웨지가 돌아가셨네요.

영화 찍다가 인도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던데..

그래서 그가 더 좋았었는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9 인도의 길 부패공화국 file [4] 2010-11-08 7982
38 인도의 길 명예살인 [6] 2010-07-04 5369
37 스탠리 존스 제7장 간디의 삶의 핵심 사땨그라하 (01) [2] 2010-07-04 5908
36 스탠리 존스 제4장 파키스탄 생성의 배경 file [2] 2010-06-19 4683
35 인도의 길 인도인과 함께 가기 2010-06-07 4441
34 인도의 길 어느 반공포로의 죽음 file [2] 2010-05-01 6028
33 인도의 길 조기 테니스 멤버들 file [8] 2010-04-10 4599
32 인도의 길 일개 필부의 삶도 [2] 2010-03-12 4160
31 인도의 길 누가 붓다를 죽였는가? [1] [1] 2010-03-12 4591
30 인도의 길 인도 봄소식 file [10] 2010-02-24 4210
29 스탠리 존스 제3장 간디죽음의 의미 file [2] 2010-02-20 5655
28 인도의 길 북인도 벌판에서 부른 생명의 노래 file [8] 2010-02-02 4654
27 스탠리 존스 제2장 대조되는 성격의 결합체(3) file [3] 2010-01-09 4074
26 인도의 길 디와(등잔불) file [14] 2009-11-11 11928
25 인도의 길 딸, 그 애물단지 [7] 2009-11-10 4908
24 인도의 길 거리의 천사들 [5] 2009-11-10 4446
23 스탠리 존스 제2장 대조되는 성격 조화의 결정체(2) [4] 2009-10-29 3536
22 인도의 길 어떤 두 사랑 이야기 [7] 2009-10-25 4297
21 인도의 길 야무나 강변 화장터 탐방기 [9] 2009-09-24 6050
20 인도의 길 초심으로 이끄는 곳 file [11] 2009-09-21 4651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