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제3장 간디죽음의 의미

스탠리 존스 조회 수 5655 추천 수 0 2010.02.20 09:36:30

마하트마가 암살되었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들었을때 무수한 유언비어가 난무하였다.

"무슬림이 죽였다."

"아니다. 그의 행동에 원한을 품은 반누에서 온 피난민이 죽였다."

간디의 사망소식은 이같은 무수한 유언비어와 뉴스가 같이 혼합된 채로  전 인도에 전파되었다.

무슬림이 이 일에 개입되지 않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만약 무슬림이 그랬다면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지 못한 4천만의 무슬림들을 향한 힌두들의 끔찍한 보복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들은 절대다수인 힌두들의 긍휼이 여김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만약 간디가 마땅히 죽어야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이 큰 뉴스거리가 될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느 한 미친 사람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미친 사람이 한 짓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밝혀진 진실은 이것이 사전에 어떤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계획되었던 일의 결정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인도인을 품고자 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과 행동에 대해 앙심을 품어왔다. 간디를 포함한 자와할랄 네루와 국민회의당 지도자들은 인도가 힌두나 무슬림 또는 기독교와 같은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세속적 민주국가 체제하에서 하나가 되길 원했다.

자와할랄 네루는 이 사건 발생 몇 주 전 알리가르 무슬림 대학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였다. 이 대학은 파키스탄 분리책동의 중심이었다. 대학 지도자들은 학생과 교수들에게 파키스탄 분리에 대한 선전의 기회를 주고자 3개월 동안 수업을 중단했다. 이 알리가르가 바로 "우리에게 파키스탄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슬로건이 내걸린 곳이었다. 이 대학 출신 무슬림 편향주의자들로 인해 유혈과 절망, 민족의 대이동, 인도 분리 등의 절차를 거쳐 결국 파키스탄이 탄생 되었던 것이었다. 인도 지도자들이 이 모든 비극적인 일에 주된 책임이 있는 알리가르 대학과 그 지도자들에 대하여 쓴 뿌리를 품는 것은 당연하였다. 자와할랄 네루는 힌두 지도자인 자신에 대한  무슬림들의 비난에 대해 화가 나 있었고 여기에 그것을 터뜨릴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네루는 옹졸하게 그 사실에 대해 원한을 품기보다 관대한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는 모든 이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비종교적인 인도를 건설하고자 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절대다수로서 힌두는 자연히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아무에게도 특권이 주어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인도의 한 부분이 될 무슬림이  절대적인 충성심을 인도에 드린다면 과거의 일은 불문에 부치고 한 민족으로 환영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웅심을 가진 대정치가의 결단이었다. 이것은 남부군을 물리친 링컨의

"누구에게도 적개심을 품지않는, 모든이에게 자비심을 베푸는"

이란 말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이때보다 자와할랄 네루가 위대했던 적이 없었다. 과연 무슬림이 네루가 내미는 우정의 손을 잡고 이 신생 인도에 결연히 동참할 것인가? 인도 역사에 있어 정말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발코니로부터 자와할랄 네루를 향하여 비 오듯 쏟아지는 꽃들과 한동안 끊어지지 않은 박수소리가 그의 역사적인 연설에 대한 답변이었다. 위대한 마음이 대 환영을  받았다. 무슬림은 네루의 연설에서 그들의 견딜 수 없이 불안한 현실의 탈출구를 보았다. 인도에 남은 그들은 인도의 부분으로 살아가야 했으나 4천만이나 되는 그들의 실제적인 위치는 하나의 인도로 합쳐지기에는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과거 파키스탄을 지원했으나 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독립 이후로 그들은 지도자 없는 이방인처럼 되었다. 이러한 그들에게 그들을 품어준다는 자와할랄 네루의 연설은 그들에게 살 희망이 보이는 탈출구가 분명했다. 그 연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중의 하나로 전해질 것이다. 불가지론자인 네루가 원수를 용서하는 참 기독교인의 태도를 취하였다.

이 연설은 델리의 마하트마 간디의 금식과 동시에 일어났다. 이 금식에서 마하트마는 불일치와 부정직 두 가지 이슈를 내세웠다. 금식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몇 국민회의 지도자들의 부정직과 부패를 폭로하는 편지를 읽었다. 수년동안 심혈을 들여 훈련한 지도자들의 부정직을 대중들에게 폭로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둘째 이슈는 양측 다 책임이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대학살에 대한 힌두와 무슬림사이의 증오와 원한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금식에서 마하트마는

"당신들이 정직해지고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소이다."

라고 말했다.

우연히 럭나우에 있는 정부 청사에 들렀을 때 금식 중에 있는 마하트마에게 전문을 보내고 있는, 후에 연합정부의 지사가 된 사로지니 나이두 여사를 보았다. 나도 하나 같이 보내면 어떠냐고 물었다. 허락을 득한 나는 마하트마에게 보내는 전문에서 그가 불일치와 부정직 두 가지 이슈를 택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것들은 위대한 이슈였다. 나는 그의 연약한 육신에 이 두 가지 이슈들을 제시하게 된 그의 통찰력과 그의 금식의 실행의 결단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것은 인도와 세계를 정결케 할 커다란 힘이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나이두 여사에게 마하트마의 금식에 대해 두 가지 느낌을 말했다.

"그의 고통을 인하여 슬프나 한편 금식을 결행할만한 용기와 선함을 가진 것을 인하여 기쁩니다."

그녀는 대답했다.

"대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때 '슬프다'는 말을 빼세요. 우리를 위해 정결의 예식을 치루는 이 위대한 인물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하여 기쁘다고 말씀해 주세요." (이때 스탠리 존스 목사는 델리의 세인트 스테반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역자주)

그의 금식은 위대한 목적을 지닌 위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힌두들의 눈에는 그의 금식의 목적이 다 무슬림을 편파적으로 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덟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힌두와 시크가 무슬림 대량 학살 후 그들이 살던 집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어 버리고 무슬림 사원인 모스크를 자기네 사원으로 만들어버린 117개의 것을 무슬림에게 환원해 주라는 것이었다. 모든 금식 조건들이 무슬림을 위한 것이었다. 몇 힌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기들의 감정을 기탄없이 토로하였다.

“왜 그는 죄악의 집단인 파키스탄을 대적하여 금식하지 않는가? 우리는 보복행위를 한 것뿐이었다. 그들이 모든 것을 시작했고 그러므로 그들이 이 모든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마하트마의 전략은 옳습니다. 그가 무슬림을 대적하여 금식을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들은 아마도 어깨를 으쓱대며 '죽으면 죽으라지. 그게 우리에게 무슨 대수람?' 마하트마는 자신이 죽는 것을 보기 전에 그들의 태도를 바꿀 그의 친구들, 그를 사랑하는 이들을 대적하여 금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힌두와 시크가 자기들의 태도를 바꾼다면 그것이 무슬림들의 태도를 바꾸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략이 적절합니다.”

6일 동안 금식후 담당 의사가 만약 그가 금식을 계속한다면 더 이상 책임을 질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극도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때 중재자이자 '베하르의 간디'라는 별명을 지닌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가 간디가 제시한 조건에 대한 양측 대표의 동의서를 들고 도착했다. 간디가 그 동의서의 실행에 대해 확신했을 때 금식이 종식되었다. 간디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위대한 서약서가 도착한 그 순간은 위대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쓸개즙처럼 쓰디쓴 원한으로 가득찬 델리의 분위기에 가운데 도착한 그 동의서는 그 원한을 풀어버릴 촉매제가 되었다. 내가 금식 며칠 전 델리에 도착했었을 때 도시는 침울함과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열차역은 파키스탄에서 탈출한 갈 곳 없는 슬프고 공포에 질린 피난민들로 가득 찼고 곳곳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짐궤짝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저마다 한 보따리의 원한과 슬픔에 가득 찬 이야기를 쏟아 놓을 태세였다. 증오로 잔뜩 부어오른 이 도시를 깨끗케 할 것은 거대한 도덕적 힘 밖에 없었다. 그 금식은 기적을 일구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오가면서 울부짖었다.

"마하트마를 구하라."

"종교 단체간의 분쟁을 중지하라."

"힌두와 무슬림은 형제이다."

이 구호의 주인공들은 바로 몇 주 전 델리 거리를 피로 물들이며 이와는 정반대의 구호를 외치던 자들이었다. 그 모든 것을 바꾼 것이 첫 번째 기적이었고 마하트마 간디가 이를 이루었다. 무슬림들은 마하트마가 그들의 친구임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금식이 이를 증명했다. 그들에게 어떤 일을 이루어주기 위해 기꺼이 죽음까지 결단한 간디를 보며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찼던 의심의 구름은 캐시미르의 여름하늘처럼 깨끗이 걷혔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 극도의 도덕적 순간이었다. 한 작은 사나이가 결연히 나서서 자기 나라의 불일치와 부정직 두 가지 죄악을 그의 가슴에 품고 무력하게 침대위의 누워 연약한 몸으로 이를 감당하였다. 그리고 나라 전체는 금식에 반응하여 깊이 참회하는 분위기가 되어 비록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고 할지라도 간디의 훈령에 따라 변화될 것을 약속하였다. 이것은 그의 침대 근처에서 서명되었다. 힌두 경전인 기따와 무슬림 경전인 코란의 구절을 읽고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찬송가를 불렀다. 그리고 무슬림 의원이 오렌지 쥬스 한 컵을 간디에게 건네어 주었다. 위대한 도덕적 순간이었다. 마하트마의 영혼이 사람들안에 가득 찬 증오와 복수에게 승리한 순간이었다. 나라는 안도의 한숨과 감사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수명의 암살객 일당은 이 모든 일에 또 다른 앙심을 품었다. 그들은 간디가 무슬림에게 우호적인 금식에 대해 앙심을 품었고 실제적으로 무슬림이 기회의 균등으로 인도에 다시 합쳐지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슬림은 힌두의 지배를 받거나 인도 땅에서 없어져야만 했다. 인도는 오직 힌두를 위한 나라, 힌두스탄이어야만 했다. 이 일당의 불평어린 중얼거림은 마하트마의 기도 모임 며칠 전에 폭탄을 터트리는 성난 함성이 되었다. 마하트마 간디 자신도 자신이 저격당할 것을 사전에 경고받았다. 1월 28일 살해되기 이틀전 나에게 처음 소식을 전해준 라즈꾸마리 암리뜨 카울은 마하트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아빠. 오늘 기도모임에 아무런 '소동'이 없었어요?”

“없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나를 염려하는 것이었니? 만약 내가 광인의 총알에 살해된다면 나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죽어야해. 내 안에 분노가 전혀 없어야만 해. 신이 반드시 내 마음과 입술에 계셔야 해. 나에게 약속을 하나 해 주겠니?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넌 결코 눈물을 흘려서는 안돼. 알았지?”

여기에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을 조용히 기다리는 절대적인 침착함이 있었다. 그가 이토록 고결한 어투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무슬림을 정복한 힌두 영웅 시바지의 고향 뿌네로부터 온 암살객이 간디를 환영하였다. 무갈제국 시대 마라타의 영웅 시바지는 힌두가 무슬림 침입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땅이 무슬림의 지배하에 들어가자 그의 들끓는 분노의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시바지는 손바닥에 호신용으로 감추어둔 호랑이 발톱을 사용하여 무슬림 통치자의 내장을 찢었다. 이 이야기는 근대에 와서 새롭게 각색되었다. 마하트마의 암살객은 어떻게 그 힌두우월성이 유지되어왔는지에 대해서는 하등의 양심의 가책도 갖지 않은 힌두 우월 사상의 철저한 상속자였다.  시바지의 "호랑이 발톱"은 자기와 민족의 목숨이 절대 극명의 위협에 접했을때 사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호랑이 발톱"은 암살객의 피스톨로 바꾸어졌고 그 손은 마하트마에게 인사를 하기위해 정중히 모은 손이 되었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와 그의 힌두 사상이 부딪쳤고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했다. 암살객의 세발의 총탄이 발사되었을 때 두 가지 사상이 만났다. 암살객의 총탄은 말하기를

“일부를 위하여”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는 말하기를,

“전부를 위하여”

그것은 '일부분' 대 '모두'였다. 모든 땅이 그 이슈로 투쟁해왔다. 미국에서도 ‘모두’라는 단어로 인한 여덟 번의 커다란 위험이 있었다. 모든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그것과 투쟁하고 있다. 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오래 전 유대 땅에서 일어났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요 11:47-50)

당시 그렇게 특권을 가진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예수를 제거할 구실을 만들었던 것처럼 인도에서도 그와 같은 특권 그룹이 동일한 구실로 마하트마를 제거할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인도를 구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암살자는 그 스스로 눈에 보이지 않는 힌두 구원자의 옷을 입게 되었다. 

만약 마하트마 간디가 무엇을 위해 죽을까 그 이슈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하더라도 그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정확히 그의 삶의 축약이며 삶과 죽음을 일관되게 만들었다. 그는 인도 전부를 위해 살고 인도 전부를 위해 죽었다. 이것은 그의 삶의 절정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모두’를 위한 제단위에 죽었다. 우리는 광란의 행위를 변명할 구실이 없다. 그러나 간디는 살아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듯이 계속하여 죽음으로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장차 올 그 일을 위해 그 비극을 쓰셨다. 예수님도 그의 죽으심 이전에 이 사실을 감지하셨다.

“나는 너희와 말을 더 이상 많이 하지 않겠다. 이 세상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 일어나라. 여기에서 떠나자." (요한복음 14:30,31, 표준번역)

여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섬기는 악이 있었다. 악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도록 도왔다. 이것은 마하트마 간디에게도 일어났다. 암살객은 마하트마 간디와 그의 사상을 정지시키려고 총을 쏘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룬 것은 오히려 그의 사상이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세계 만민에게 알려지도록 하는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암살객의 총알은 간디를 영원불멸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는 살았을 때보다 죽어서 더 강해졌다. 그가 목적한 일을 위하여 순교하지 않고 그의 사상을 위하여 죽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마하트마와 그의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마하트마처럼 자신이 목적한 일을 죽음으로서 잘 요약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암살자 고드세가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 그것을 자신 스스로 파괴한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이었던 공산주의는 파경에 이를 정도까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마하트마 간디의 죽음은 공산주의 사상에 최대의 손상을 주었다. 지금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마하트마의 죽음에 대한 반역이다. 공산주의 조직들은 자발적으로 조직을 해체하거나 정부 명령에 의해 와해되었다. 힌두 인도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 조직라스뜨리야 스와얌세바 상그(국가 봉사 기구)는 비합법적이라고 선언되어졌고 R.S.S. 의 동맹이었던 마하사바는 그 프로그램에 있어 정치 운동가들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향후로는 사회, 경제, 종교 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난 마하트마 간디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단시간에 이런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공산주의 체제로 인도를 이끌어가고자 하던 자들은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때를 분간하지 못하자가 되고 뒷북을 치는 격이요 비애국자며 국부에게 불성실한 것이 되는 것이다.

마하트마 살해의 두 가지 진정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의 무슬림을 포함한 인도의 하나됨에 대한 소망이며 또 하나는 비폭력이다. 고드세로 대표되는 단체는 마하트마가 비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바로 힌두를 거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드세는 비폭력을 폭력으로 저지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가 바라던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그는 비폭력의 힘을 신장시켜 세계적인 관심거리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간디는 폭력이 가장 승전가를 높이 울릴 때, 다시 말하면 그를 죽이는 그 시점에 비폭력의 힘을 증명했다. 폭력은 그것이 시행되었을 때 가장 미움을 받게 되었다.

최근 어느 날 나는 그의 모습에 대한 나의 촌평에 대한 그의 대답을 보았다.

“당신은 알지 못하시죠? 나는 125세까지 살 겁니다.”

그는 그의 성격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이 말을 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오래 살도록 하지 않는 것은 더 높으신 하나님의 안배였다. 그가 그렇게 살았더라면 온 나라는 그의 육신이 소멸되어가는 동안 그의 동상을 책꽂이에 모셔놓고 존경의 염을 표할지는 모르지만 그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캘커타와 델리에서 치러진 두 번의 금식이후의 승리로 인해 이루어진 영향력의 절정에서 죽었다. 그는 그 금식들을 통해 기적을 일구었고 그의 영향력은 절정에 달했다. 수억의 인도인이 간디를 경외하는 것보다 더 큰 경외함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그의 일생동안 달성한 그 어느 사람보다도 더 깊이 경외함을 받았을 것이다. 기억하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삶을 존경하는 만큼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깊은 경외심을 표현한다. 그의 죽음은 개종되지 않고 반쯤 증오로 가득한 수백만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믿음의 불을 당겼다. 매우 고결한 모습의 시크교도가 어느 날 나를 자기 곁으로 이끌고 나즈막하게 말했다.

“나는 마하트마 자신과 그의 가르침에 흥미를 느끼고 그가 죽던 그 기도모임에 참석했지요. 그 이후로 나는 그의 제자가 되었어요.”

신약에 ‘순교자’의 의미는 ‘증인’이다. 그렇다면 마하트마의 순교는 그가 살아왔던 삶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며 그 증거는 인도 수억의 사람과 세상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만약 순교가 ‘자발적인 희생’으로 정의된다면 결과적으로 간디의 죽음은 ‘순교’이다. 그는 이전에 폭탄이 던져졌지만 경호원들이 기도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경호원들을 기도 모임에 참석시키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순교자였다. 지금 그의 사상과 영혼, 그리고 영향력은 순교로 인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들이 분리되어 설명되거나 의문시 되어질 수 없는 것은 그가 살았을 때 추구하던 그 이념을 위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더 적합하게 한 사람이 없다. 그가 일과의 지침을 주고 자신과 백성들을 위한 기도모임으로 가는 길에서 인도 전체를 위해 순교자로 죽은 것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것은 최고로 위대하고 삶의 절정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그것은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의해서 안배된 무대였다. 간디의 삶과 죽음은 일관된 것이다. 그는 순교자로 살았고 순교자로 죽었다. 그는 ‘모두’의 제단에서 죽었고 인도와 인류가 존재하는 한 모두에 의해 기억될 것이다. 자와할랄 네루는 간디가 죽던 그날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후에도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 관하여 말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세계의 가장 위대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이 더 좋게 생각하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에서 동일하게 그는 모두를 위한 인도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레벨:16]정병선

2010.02.20 10:25:13
*.80.66.78

선교사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간디는 저에게 수치와 경외감을 안겨준 분이랍니다.

간디의 삶을 읽고

예수 이후로 가장 예수의 길을 간 사람이 바로 간디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말이지요.

어느 그리스도인보다 더 예수의 제자다운 길을 걸어간 그에게 경외와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수치를 느꼈습니다.

존스는 그의 죽음을 정말 잘 읽어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간디는 제 인생의 수수케끼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profile

[레벨:26]사띠아

2010.02.21 03:23:26
*.173.244.4

목사님.

건강회복은 잘되어 가시지요?

목사님의 행복에 대한 귀한 글은 찬찬이 잘 읽고 있습니다.


온몸으로 진리(사땨)를 추구하며

알고 있는 바를 실제적으로 실천하려고 했던 간디의 삶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배우게 합니다.


인도의 하나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투쟁을 한 그의 모습은

우리 시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줍니다.


냉철한 판단력은 언제나 인도와 인도인을 사랑하는

가슴이 전제가 되어

남을 향한 비판과 정죄보다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그런 삶이 늘 돋보입니다.

아마 스탠리 존스 목사님은 그 점을 잘 포착한 듯합니다.


요즘 그의 핵심 사상인 샤따그라하(진리 파지)를 다시금

읽으며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툰 번역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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