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라다 크리슈나

인도의 길 조회 수 6142 추천 수 0 2009.08.14 11:24:15
후마윤 영묘의 지붕이 바라다 보이는 오베로이 호텔 도로 건너편에‘순더르 나가르(아름다운 동네)’란 시장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아름다워 ‘순더르(아름다움)’란 이름까지 부쳐졌는가 하여 의아심에 찾아가노라면 가게 앞마다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골동품들의 고색 창연함이 그 의미를 먼저 알게 해 줍니다. 그 오랜 세월, 먼저 가신 정든 님들의 손길 그리는 그리움이 애잔히 녹아든 자태로 거리 귀퉁이에 고즈넉이 자리를 잡고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애잔한 아름다움이 묻어나 이 거리를 순더르 나가르라 부르는 모양입니다.

    

관광객을 보고 반색하는 주인의 얼굴이 꼭 아니더라도 그렇게 말없이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가게로 들어섭니다. 형형색색 아녀자들의 장식품들이 되었음직한 아기자기한 소품들, 인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신들의 형상사이로 언제나 돋보이는 에로틱한 남녀 한 쌍의 목각 또는 청동제품이 있습니다. 언뜻 봐서는 사랑하는 청춘 남녀의 상인 줄로만 알았으나 오랫동안 델리의 뜨거운 더위를 견디면서 이들과 함께 있다보니 이제 이들이 자기 이름들을 알려줍니다. 피리를 비껴들고 구성지게 불어대는 주인공 남자가 크리슈나이며 물동이를 옆구리에 끼고 살포시 크리슈나에게 기댄 여인이 라다입니다.

    

크리슈나의 피리와 라다의 물동이의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듣습니다. 지금은 인도의 수도가 된 델리로부터 아그라를 향하여 남동쪽으로 130Km를 이동하여 가면 브린데반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이 라다와 크리슈나의 고향입니다. 목동으로 자란 크리슈나는 개구쟁이이자 바람둥이였습니다. 고비라고 불리는 양치기 아녀자들이 강가에서 목욕을 하면 그 속옷을 온통 나무에 걸어놓는다든지 물감 던지는 홀리명절이 오면 양치기 소녀들의 옷을 울긋불긋한 물감으로 엉망을 만들어 놓곤 했습니다. 그렇게 개구쟁이 같았지만 누구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수려한 외모와 혼을 빼놓는 듯한 피리소리는 소녀뿐만 아니라 아녀자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크리슈나의 피리소리에 마음이 흔들려 넋이 홀린 라다는 피곤에 지쳐 골아 떨어진 남편을 뒤로하고 피리소리를 좇아 나섭니다. 마침내 크리슈나를 만난 라다는 그와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신분 계급이 맺어준 애정 없는 결혼을 한 라다에게 크리슈나는 첫사랑이었습니다.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을 하면 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빈가슴을 끌어안고 깊은 밤까지 타오르는 목마름으로 몸부림치는 열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말없이 와서 그녀의 온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달빛 밝은 밤을 쫓아 집을 나서는 벅찬 설레임으로 그의 품에 안겨 님의 피리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쏟아지는 별빛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대화들을 나누며 라다는 그렇게 사랑을 배웠습니다. 희끄무레 사라져가는 새벽별이 헤어져야 할 때를 알릴 때마다 후벼파듯 가슴이 아파오는 시린 안타까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풀잎 끝에 내려앉은 새벽이슬방울과도 같던 그녀의 더운 가슴을 안아주었던 크리슈나와의 사랑은 불꽃같은 열정과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속에서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그 사랑 앞에 크리슈나도 라다와 사귀어 가면서 그의 바람기를 잠재우게 됩니다.

    

이들이 나눈 아름다운 이야기는 훗날 벵골의 시인 자야데바의 ‘기타고빈다’(목동의 노래)로 엮어져 수많은 젊은이들의 사랑노래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타고빈다’는 비슈누 문학의 효시가 되어 오늘날 크리슈나 숭배사상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즉 시대를 따라 그때 그때마다 동물 또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세상을 유지시켜 나가는 보존의 신 비슈누가 당시에 크리슈나로 화신(아바타라)하여 라다와 사랑을 나눔으로 인간이 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라다와 크리슈나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 사랑이야기를 종교로 발전시킨 인도인들을 보노라면 성경 속에 있는 노래중의 노래 아가서가 생각이 납니다. 술람미의 여인과 지혜의 왕 솔로몬이 나눈 사랑 노래가 농도 짙게 성경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인생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몸부림치던 그 때 그는 왕궁을 벗어나 변장을 하고 시골로 가서 양치기 소년으로 한때를 보냅니다. 그때 사귄 처녀가 술람미의 양치기 소녀였습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장래를 약속하고 잠시동안의 이별을 하게 됩니다. 술람미 소녀는 그리움에 밤마다 눈물짓습니다. 얼마 후 왕은 왕으로서 그녀를 만나러 시골 동네를 방문하게 됩니다. 소녀는 이 행렬에 흥미를 갖게 되나 진정 그녀의 마음은 연인에게 향해져 있었습니다. 왕의 얼굴을 볼 때까지 소녀는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나 곧 그녀의 목동이었던 것을 알게 되고 왕궁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연애시절, 약혼식 그리고 결혼식에 걸쳐 신랑은 신부를 ‘사랑함을 입은자’로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는 자’로 서로의 사랑의 감정과 육체의 즐거움을 표현합니다. 이 시들은 사랑이란 감정의 아름다움의 벅찬 감정의 극치입니다. 또한 신부가 결혼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처녀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으로 오직 이 기쁨의 비밀은 결혼을 통한 성숙된 사랑에서만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2:7, 3:5, 8:4) 그렇지 않는 상태에서 이를 얻고자 하는 것은 마치 피지 않는 꽃봉오리를 꺾는 것과 같이 파멸을 가져올 뿐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초기 크리스천들은 이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하나님과 사람,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 관계로 해석했습니다. 솔로몬은 단순히 육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이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종교개혁중에서나 종교개혁 후 그 극심한 박해를 겪어 가는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신부의 그 공허한 마음이 신랑의 현현으로만 가득 채워졌듯이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허허로운 가슴도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으로만 가득채워지고 풍요로와 질 수 있음을 솔로몬의 노래를 통해 배웁니다.

    

라다의 사랑을 그리는 인도인이나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그리는 유대인이나 인간의 사랑을 통하여 신과 인간의 사랑을 그리고자 하는 접근 방법은 비슷해 보입니다. 다만 유부녀를 꼬셔서 사랑을 나누는 크리슈나나 남편을 재워두고 참사랑을 찾았노라고 정부를 밤마다 찾는 라다를 별 문제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 정신적의미만 부각시켜서 그 사랑 자체를 미화시켜 가려는 두리 뭉실한 도덕의식이 좀 껄끄럽습니다. 


한편 아가서는 얼굴 붉힐 만큼 적나라한 표현과 섬세한 묘사로 가득 찬 노래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을 통해 나누는 성행위와 감정의 나눔 들이 결코 추한 것이 아니며 이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노래중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빛나는 진정한 노래가 아닐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할수록 인간의 가슴은 더욱 더 큰 목마름에 허덕이지만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사랑을 경험해 가는 이 가슴은 창가에 어른거리는 가을볕 받은 뽕나무 잎같이 빛납니다. 이와 같은 기쁨과 감격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거하는 모든 크리슈나와 라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에게 있기를 바라고 쏟아지는 가을 햇살 가득 그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03.10.4 아침) 


조지헤리슨이 연주하는 힌두신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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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08.14 22:05:11
*.234.35.112

선교사님 글이 이렇게 맛깔스럽다니요!!

만능 요리사 맨치로 무슨 재료든 몽땅 맛나게 요리해 주시는군요^^

저는『아가서』를 댑따 좋아해서 자주 읽고 있는데,

제 아는 어떤 목사님은 대게 부끄러버하시대요?ㅋㅋ

아, 그러고 보니 선교사님의 "아가서 강해"가 듣고 싶어 지네요.

꼭 들려 주세요~~!! 녜?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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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8.15 03:54:32
*.163.109.79

대학 시절 새벽기도 시간에 한달동안 아가서 큐티 섬김이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무지하게 달려들어 그것을 섬겼는데

남은 기억이라고는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거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얼굴이 따땃해져옵니다.

어떻게 그렇게 무모했을까.


지금도 이렇게 아가서에 대해 대략 몇줄 그적거렸지만

이것이 신학적으로 제대로 맞는지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답니다.

대학 시절 이후 이십수년이 지난 또 다른 무모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다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이런 말 남기며 인생을 마치지나 않을런지요.


라라집사님.

저에게서 아가서 강해를 기대하시다니요.

아마 다비안생활을 꾸준히

게으르지 않게 이 길을 가다보면

그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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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9.08.14 23:06:51
*.116.154.149

사땨님!

갑자기 처용의 노래가 생각나는 건 왠일인지..

지적하신 그 껄끄러움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

사람이 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진다는 말씀이시죠? ㅎㅎ

 

뽕나무 잎새 같은 햇빛에 시선이 머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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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8.15 04:45:45
*.163.109.79

모래알 집사님.

은혜는 같이온 미국인 친구 로라와 함께 자기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추억여행을 갔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열차간 옆에 앉은 사람이 밤새도록 코를 고는 바람에

잠 한 숨 못자서 한숨 자고 일어나

찻집 네개가 모여있는 짜르두깐(짜르-4, 두깐-가게=네개의 찻집)에서

친구랑 차를 한 잔 마시고 산 중턱을 감싸고 있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고 합니다.


오늘은 라다가 그렇게 사랑했던 크리슈나가 태어난 생일을 기념하는 휴일이었습니다.

천둥과 번개의 신 인드라(4천왕중 금강역사)를 몰아내고

서민의 가슴에 목동의 신으로 자리잡아

어느듯 국가적으로 생일을 챙겨먹는 크리슈나를 기리는 갖가지 행렬이

아마 뉴욕 맨하탄 어디메서도 '하레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 하면서 있지나 않을런지요.

거기에 연관된 조지해리슨의 글을 바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래 저래 크리슈나의 생일날인 오늘 

폭죽을 터트리며 해피버스테이 크리슈나를 기리는 이들이

저렇게 밤잠도 안자고 하레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를 외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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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2009.08.14 23:33:52
*.118.129.226

이렇게 귀한 글을 오랫동안 꿍쳐 놓고 이제서야 풀어내시다니요.. "하늘 호수" 운운하는 시인의 책을 읽고나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신비감과 거부감 등의 상반되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사땨님의 글은 인도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을 하게 하면서 동시에 인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인도의 철학과 신화 등을 가르쳐 주시니 이제 인도를 보다 깊이 그리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 같네요..

 

나중에 인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면 사땨님, 책임 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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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08.15 01:34:53
*.234.35.112

이방인님, 그렇지요?

아마 선교사님과 이방인님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으실걸요?^^

두 분께서 '사회학적 시각'으로  풀어내실 <인도&미국의 사회와 문화>, 지는 기대만땅입니다.

언릉언릉 컬럼방으로 복귀하시지요. 이방인님~~!!^^

글구.. 늦었지만, 왕 축하드립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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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8.15 04:50:44
*.163.109.79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심어둔 그 인도에 대한 환상을 빨리 깨어야

인도가 제대로 보이는데

미리 저의 글을 통해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오시면

인도가 훨씬 잘 보일 것으로 믿습니다.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몰라 책임진다는 맹세는 못해도

이 가슴말랑한 사땨 어디가겠습니까?


언제든지 쌍수들고 환영합니다. 

오셔서 보시고 기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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