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감자를 좀 더 심었다.

작년에 모자랐기 때문이다.


3월에 심은 감자를 하지 무렵에 캤다. 

북을 주어 깊이 심었다가 캐기만 하면 되니 초보 농사꾼에게는

매우 수월한 농작물인 셈이다.

알이 고르진 않아도 크고 또 자잘한 감자 알이 꽤 들었다.


감자 농사는 올해로 몇 번째이지만 

감자 알이 딸려 나올 때마다 신통해서 남편을 불러 제낀다.

"여보~! 이리와 봐요!"

남편이 뛰어 나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흙에서 갓 나온 싱싱한 감자알들을 찍어댄다. 

농사의 기쁨을 진하게 맛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살면서 이런 생생한 순간이 얼마나 될까.


요즘 감자는 우리집의 요긴한 주식이다.

오랜 항암으로 입맛을 잃은 남편이 밥 대신 감자죽으로 끼니를 때운다.

나만의 감자죽 요리법은 쉽고 간단하다.

찐 감자의 껍질을 벗겨 으깬 다음

 양파를 잘게 채 썰어 버터에 볶아낸 후 으깬 감자와 함께 우유를 넣고 믹서기에 간다,

냄비에 넣고 한소큼 끓여 소금간을 하면 부드럽고 구수한 감자 스프 완성이다.


감자죽을 끓이다 보니  내 인생 속에 들어온 감자의 단편들이 

몽글몽글 되살아난다.  

어릴 때 살던 지역은 강원도가 가까워서 인지 감자가 흔했다.

여름 날 한 끼는 감자가 들어간 음식이지 않았을까. 감자 범벅, 감자 수제비, 

그도 아닐 땐 그냥 찐 감자. 아, 감자 밥도 있었다. 밥 솥 위에 감자를 몇 알 넣어 

밥과 함께 으깨어 먹던 감자 밥. 언니는 그때 하도 먹어서 지금 감자를 즐기지 않는다는데 

나는 여전히 감자가 맛있다.

갓 캔 감자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다. 

분이 팍팍 나는 그 심심하고 포슬한 맛!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순한 포근함이다.


중고등학교 때 도시락 반찬은 감자 볶음일 때가 많았다.

내 단골 도시락 반찬인 들기름으로 볶은 감자볶음을 단짝 수희가 참 좋아했었지.....

복숭아 빛 뺨과 눈이 예뻤던 수희..... 그 애는 지금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어느 해 여름방학 때 수희가 우리 시골집에 놀러 와 며칠 지낸 적이 있는데 

엄마는 감자 범벅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 당시 여름 간식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감자범벅이 아니었을까.

찐 감자와 밀가루 반죽이 버무려진, 강남콩도 듬성듬성 박힌 달짝지근하면서도 무덤덤한 맛.

그 시절 구황식품이자 더없는 간식거리이며 반찬이기도 하고 주식이기도 했던 감자.

그 감자를 초로의 나이에 내 손으로 심고 거두어 먹고 있다니...!

그것도 아픈 남편의 주식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위로인가.

감자죽은 독한 약에 시달리는 남편의 위장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요즘 끓여 먹는 감자죽에는 내 어린 날의 여름도 스며들었고

 소녀 시절의 그리움도 녹아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를 감싸는 부드러운 위로도. 


곧 영국에 사는 아들 내외와 어린 손주가 찾아온다.

그들에게도 감자스프를 해 주어야겠다. 

 매쉬드 포테이토와 감자 샐러드도!

엄마가 농사 지은 거라고 슬쩍 으스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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