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 공동식사 후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는 몇몇 여교우들 중
길순이 모녀가 언제나처럼 활짝 웃고 앉아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모녀인데 가족들에게서도 동네에서도 홀대를 받고 살아왔다.
어머니는 시집오자마자 남편에게 버림받고 후처에게 밀려 본채에서 사랑채로 쫒겨났다,
여러 해 전 남편은 죽고 후처는 떠났는데도 아직도 본채를 비어둔 채
사랑채에서 옹색하게 살고 있다. 자신처럼 지적 장애를 가진 딸 순이씨와 함께.
얼마 전에는 군에서 도배와 장판과 싱크대를 바꾸어주어 그나마 방이 산뜻해졌다.
이들 모녀를 교회로 이끈 건 정말 은총이었다.
교회에 나오라고 권유를 받은 바로 그 다음 주일부터 근래 병원 입원했을 때를 제외하곤
이십 년 가까이 한 주도 빠짐없이 주일예배에 나오고 있단다.
시계도 없고 시계를 볼 줄도 모른다는데 예배 종도 치기 전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성가대 연습하러 가는 길에 만나면 해맑게 웃는 모녀..
어머니 신씨는 아주 조신하신 분이고, 딸 순이 씨는 왈가닥이다.ㅎ
비둘기처럼 서로 의지하고 사는 이들 모녀에게 얼마 전
몹쓸 병까지 왔다, 딸인 길순이 씨가 난소암으로 투병 중이다.
전이가 많이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다행이도 치료비 전액은 나라에서 지원 받는다.
첫 항암을 할 때는 병원에 입원한 순이씨가 엄마를 찾아 울고 불고 난리였단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처음으로 모녀가 떨어졌다니... !
딸을 못 보는 어머니 역시 안쓰러울 정도로 바삭하게 말라갔다.
지금 길순이 씨는 자신의 상태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다.
복부가 불룩 올라와도 잘 웃고 명랑 쾌활하고 놀라우리 만큼 잘 먹는다.
누구에게나 "언니"라고 부르는데 주변 사람들 말로는 소띠라란다. 나랑 동갑이다.
항암이 끝나 빠진 머리도 얼추 자라서 헤어 스타일이 이쁘다.
그려주겠다니 좋아라 어머니랑 포즈를 취한다.
참으로 가난하고 외롭고, 가슴 저리게 애처로운 이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만을 사는,
그래서 늘 천국을 사는 모녀다.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한다.
마침 이달에 길순이 씨 생일이 들어있다. 선물로 주려고 그림을 액자에 넣었다.
그림을 받은 순이씨 모녀의 표정이 기대된다. ㅎㅎ

글을 읽고 그림까지 보니까 한편으로 먹먹한 마음이 들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 훈훈한 마음이 스며듭니다.
그들 모녀에게 주님의 한없는 은총이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