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선희언니가 김장을 했다.

김장은 언니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다. 

일년 동안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장 김치는 언니의 꼭 필요한 양식이다.

다른 찬거리가 없는 언니에겐 김치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혼자 살아도 해마다 김장을 한다. 그것도 많이.

그 김장에  도우미로 불려간 지 몇 년 째다.

언젠가 언니가 김장하는 걸 보고 속이 터져 도와 준 것이 발목이 잡혔다

선희언니는 일손이 느려 터져서  혼자 김장을 하면 밤을 샐 판이다.  

번번이 손 빠른 나를 놀라워한다.

 자신은 뭘 빨리 하려다 보면 떨어뜨리고 깨뜨리고 넘어지고 다친단다.ㅎㅎ

 그러니 힘들어도 지원을 나갈 수 밖에. 

이웃에 사는 소량씨도 와 있어서 더 빨리 끝났다.


올해는 손수 키운 배추가 잘 됬다. 

매번 배추 속이 부실하더니 올해는 배추가 실하다.


선희 언니는 볼 때 마다 참 놀랍다.

사람이 저렇게 해맑을 수 있을까,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렇게 적은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저렇게 외로움이 없을 수 있을까... 등등의 점에서 말이다.


언젠가 무주 읍내에서 언니가 좋아한다는 냉면을 함께 먹은 일이 있는데

그 때 모습을 잊지 못한다. 

냉면 그릇을 앞에  두고 얼굴 가득 웃던 어린아이 함박웃음을...!

그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물냉면 한 그릇에 저렇게 천진스런 찐웃음을 웃을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눈치를 보거나 머리 굴리지 않는다. 

그 순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그런 면 때문에 오해도 받지만 나는 언니의 그런 투명함이 좋다. 


빠듯하게 생활하는 선희언니는 썸썸 바자회 단골 고객이다. 

거기서 필요한 걸 구입하는 걸 아주 즐긴다.

"혜란 씨, 이거, 지난 번 여기서 산 샌들인데 넘 편하고 좋아, ㅎㅎㅎ"

"어머, 나 이거 필요했는데... 이거 내가 살께!"

언니를 위해서라도 중고 바자회를 계속하고 싶을 정도다.


모든 게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쩌면 저렇게 적은 돈으로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볼수록 그 내공이 놀랍다. 부러운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어 보인다.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면 단호히 고개를 가로 젓는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좋단다,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 것이고 죽은 후에도 이 터에 묻힐 것이라고,

덤덤히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길 원하는 부귀와 권세와 사랑하는 가족, 안정된 무엇 하나 그녀에겐 없지만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홀가분한 삶을 산다.


올해도 선희언니는 손수 키운 배추와 고춧가루 마늘로 김장을 잔뜩 해서 독에 묻었다. 

월동준비 끝~! 


이제부터 선희언니는 동안거?에 들어갈 것이다.

그 깊은 산중, 혼자 사는 오두막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맘껏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여러 마리의 개들과 함께 한가한 겨울을 보낼 것이다.

누구도 빼앗지 못할  그녀만의 자유를 향유하며~!



선희언니.jpg

지난 여름 내 손주를 안고 찍은 선희언니.

5개월 짜리 아기와 육십 년을 넘게 산 언니의 해맑음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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