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 전에 덕유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대피소에 예약을 하고 1박 2일로 덕유산 종주길에 나섰다.
가기 전 내내 비가 내려 어쩌나..했는데 출발하는 날부터 날이 개인다. 징조가 좋다!
지도에서 보는대로 육십령으로 해서 삼공리로 내려오거나,
영각사에서 삼공리로 내려오는 두 가지 종주코스가 일반적이란다.
마음으론 육십령에서 시작-> 삼공리로 내려오는 풀 종주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첫 날 집에서 출발해야하므로 육십령에서 삿갓재까지 가기엔 빠듯할 것 같다.
혹시라도 산행이 늦어진다면..? 초행길에 무리수를 두지 말자...
조금은 아쉽지만 안전하게 영각사에서 삼공리로 가는 코스를 택하는 수 밖에.
첫날은 영각매표소에서-남덕유산-월성재-삿갓봉- 삿갓골재 대피소까지.(삿갓골재 대피소에서 1박): 11km
둘째날은 삿갓재 대피소-무룡산-백암봉-중봉- 향적봉 정상-백련사- 삼공리매표소:18.7km (총 27.7km)
덕유산은 다른 유명산들에 비해 교통편이 좀 불편하다.
함양에서-> 서상-> 서상에서 -> 영각사로. 이렇게 가야 한다.
2014. 8.22. 금요일
아침 7시에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함양 행 첫 버스를 타고 10시 15분 쯤 함양에 도착.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서 있던 아저씨 한 분이 서상 가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친절하게도 서상행 버스가 출발하는 곳을 알려주신다.
길 건너서 왼쪽으로 가면 거기서 서상행 버스가 출발한단다.
덕분에 헤메고 묻는 시간낭비 없이 곧바로 서상행 버스 타는 곳으로 올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촌로들의 모습이 마치 고향처럼 푸근하다.
"자, 갈까요..?" 기사님의 말투 역시 유난히 여유롭다.
느긋한 기사님의 말투처럼 승객들 역시 느릿한 걸음으로 하나 둘 버스에 오르신다.
그 뒤를 따라 나도 올랐다.
베낭을 멘 나를 보고 기사님이 웃으며 묻는다.
"덕유산 가십니껴?"
"네.^^"
" 매니아신가 부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무덥겠다..."
버스 안의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 더버야 된다."
그 말을 받아 또 한 촌부가 이렇게 대꾸한다.
서로 아는 분들인가 싶은데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냥 대화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낼 모레부턴 또 비온다 캅니더."
"할매, 더워요?
더우면 유리창 열고 가소! 요래, 옆으로 밀면 되요."
부채질을 하는 할머니 승객에게 운전기사가 말한다.
운전기사양반이나 승객들이 만드는 버스 안 분위기에서 사람사는 맛이 물씬 묻어난다.
버스가 시골길을 달리다가 정차한 곳에서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올라오신다.
천원짜리를 넣고 동전을 부시럭 거리며 찾으시는데
뒤에서 앉아 있던 한 아낙이 얼른 나와서 나머지 동전을 대신 넣어준다.
" 고맙소.. 에구.. 죽을 때가 다되서 기운이 없네.."
하며 앞자리에 앉으시는 꼬부랑 할머니.
그 때부터 시작된 대화가 하도 재밌어서 여기에 옮겨보겠다.
기사: 죽을 때는 무신 죽을 때..... 할매요, 죽을 준비 다 됬능겨?
할머니: 죽을 준비가 머가 있겠노, 거저 몸뚱아리 거적에 둘둘 말아가지고 묻으면 되재.
기사: 그거는~ 몸뚱아리고. 몸뚱아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 중요한 건 혼이라예, 혼!
그 혼이 죽어서 좋은데 가야지... 혼이 좋은데 가려면 준비를 해야되는 기라.
그런 준비가 됬는가.. 이 말이다."
할매: ........
기사: 그런 준비를 해야 되는기라. 죽기 전에. 그 준비가 뭔지 아는교?
할매:..... 기사 말에는 별로 관심도 없으신 듯.
그러자 기사분 뒤에 있던 할머니께서 잽싸게 말을 받는다.
다른 할머니: 교회다니라카는 기제?
기사: 하아, 이 할매 눈치 한 번 빠르네...
교회 다니라는 것보다 성령을 받아야 된다.. 이 말이요, 내 말은.
할머니: 그거 받으려면 돈 많이 갖다 바쳐야 되잖나.
다른 할머니: 교회 장로가 도둑넘이더라!
기사: 하, 장로가 도둑이던, 말던 그런 건 신경쓰지 마소.
어디던지 가짜가 있잖소. 할매요, 참기름도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지요?
할매들: 하모, 그렇지.
기사: 그것처럼 신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카이.
가짜가 원래 더 시끄러운 벱이야...진짜는 말이다, 조~용~ 한기라.
거, 용각산 있지? 할매.
할매들: 응!
기사: 그 용각산도 진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라.
할매들: ....
기사: 그러니까 성령을... (하는데 할머니가 내리셔야 한다고 일어나신다.)
여기서 내리요? 좋은 동네 사시네.. 예, 할매요.. 잘 가시소~!!
할머니가 내리시는 바람에 버스 안의 대화는 일단락 지어졌다.
이 분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이 나왔다. 애를 써서 진리를 전하려는
기사양반의 진정 어린 열심에 동문서답하는 할머니들!
경상도 억양까지 곁들여 한 편의 재밌는 단막극을 보는 듯했다.
할머니를 내려 준 시골 버스는 이런 시골길을 달려 서상으로....!
서상에서 영각사까지는 택시를 탔다.
드디어 덕유산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영각사 입구다,
남덕유산을 향해 종주시작!
이번 덕유산 종주길은 이런 숲길로 시작됬다.
하늘도 파랗게 축하를 해주고 있다. 어제밤까지도 비가 내리더니...
버섯도, 넝쿨도 앞다투어 빼곡히 얼굴을 내밀고 ... 반갑게 웃는다.
계곡물은 경쾌하게 종주의 서막을 연주하고....
꿀벌도 잠시 바쁜 일손을 멈추고..
가을을 알리는 잠자리도 내 팔목까지 날아와 앉으며 환영이다.
이런 산 친구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남덕유산으로... !
점점 더 깊이...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을 넘어 삿갓재로 가야한다. 갈 길이 멀다.
아찔하게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남덕유산 정상. 해발 1507미터.
정상에 오르니 맑던 시야가 뿌옇다.
지리산를 닮은 산새다.
저쪽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서봉인 듯..
그런데 자꾸 발길이 지체된다.
다름 아닌, 이런 친구들 때문이었다. 나비와 꽃들의 향연.
작은 들꽃들..
동자꽃이란다.
이건 이름을 아는 원추리꽃...
통나무 집에서 세상이 궁금한지 고개를 내미는 작은 아기 버섯 둘^^ ,귀엽다.
오이풀 꽃.. 덕유산 전체에 많이 피어있다. (나중에 이름을 알았다.)
구절초, 꿀벌들.
독버섯마저 유혹적이다....
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얼마나 거대하며 또 얼마나 작고 작은지..
산에 들면 들수록 빠져들어간다.
그 거대함과 더 이상 정교할 수 없는 그 미세한 아름다움에...!!
이런 작은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가는 바람에 느릿느릿...
산장 도착이 예정시간보다 좀 늦어졌다. 그러나 뭐 어떠랴..
삿갓재 대피소는 규모가 작다.
대피소에 도착하자 안내직원이 먼저 내 이름을 댄다.
-김혜란씨죠?
-어떻게 아세요?
-여자 분 혼자 오셨으니까요.
담요를 한장 빌리고 여자용 2층 침대 중 아래층을 확보했다.
그리고는 땀에 절은 몸을 씻기 위해 샘터로 내려갔다.
샘터에는 샘물이 콸콸 나온다. 샘물을 보니 반갑고 반갑다.
우선 팔을 씻었다. 와.. 시원하다.
무엇보다도 땀에 젖은 몸을 아쉬운대로 씻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야말로 샘물의 역할을 제대로, 톡톡히 하는 샘이다!!
물을 받던 여인이 묻는다.
-혼자 오셨어요?
-네.
-어머.. 여린 분이 용감도 하셔라..!
그녀가 놀란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몇년생이예요?
초면에 나이를 묻는 것이나, 그녀는 거침이 없다. 활달하고 맑다.
내가 나이를 얘기하니
-어머나, 나랑 동갑이네요~! 그렇게 보였어요.
동우회에서 왔다는 그녀는 10년 산을 탔는데도 혼자 큰 산을 가본 적이 없단다.
혼자 산행..!
내가 만난 여자들 대부분은 혼자 산행을 겁낸다.
그런데 용기를 내서 혼자 다녀보면 안다. 빠질 수 밖에 없는 그 맛을!
혼자 산행은 같이 하는 산행보다 훨씬 느낌이 깊고 크다.
주변에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기 때문일까,
한 번 혼자 가보라고 했다. 생초보인 내가 10년 선배에게.^^
그녀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며 얼굴과 목 손 발을 씻고 양치도 하니 끈적임이 사라진다.
라면 끓일 물을 받아서 올라왔다.
이제는 저녁밥을 먹을 차례.
단골메뉴인 라면을 끓여 먹고나서도 뭔가 부족한 듯 해서 라면 국물에 누룽지를 넣어
누룽지 라면탕을 만들어 먹었다. 후식으로 커피와 땅콩도!
옆에선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다. 번거롭기도 하고 무거운 건 질색이라
무겁게 들고 와서 잘 먹는 편보다 가볍게 와서 간단히 먹는 걸 택했는데
다음 번엔 나도 고기를?? 체력을 위해 고려해 볼 일이다.^^
밖으로 나오니 밤안개 같은 운무에 대피소 주변이 포옥 쌓여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산행객 두어명... 어둔 산자락 아래 그들의 자태가 그림같다.
그러나 밤의 정취를 즐기기엔 피로가 몰려온다. 곧 바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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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루,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시네요.
그러니 덕유산의 나비가 하나도 안 부러울 것 같은..
산새가 험해 보이지는 않네요.
그래도 혼자 산행을 가시다니!!
저는 감탄만 할 뿐입니다.
용기도 부럽고 체력도 부럽고..
아, 이거 제가 지난 번에 드릴 말씀인가요?^^
한이 박혀서 그런가봐요.^^
시원한 산, 꽃 사진에
제 마음도 눈도 정화되네요.
감사드려요.

야생초는 낮은 산이나 들판에 있는 줄 았았는데
높은 산에도 많이 피는군요.
이름을 많이 들었는데
자유혼 님 덕분에 덕유산도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다른 가파른 산과 바위등반을 미리 본 탓인지
이번에는 뭐 크게 고생했겠다는 생각도 안 드는군요.
본인 스스로 등반 초년생이라시지만
폼새가 완전 베테랑입니다.
운전기사와 승객의 대화가 이번 상행기의 별미군요.
비가 억수로 퍼붓네요...
적당한 어둠,
쏟아지는 빗소리,
내 마음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거닐며 노는 시간이 참 행복하네요.
자유혼님도 행복을 찾아
세계와 팔도를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군요.
행복한 모습들을 사진과 글로 만나니 기분이 더 좋은 비오는 날입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