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4)

조회 수 755 추천 수 0 2019.10.31 20:04:40

메멘토 모리!

중세기 유럽 사람들은 ‘memento mori’라는 라틴어 문장을 그릇이나 옷, 또는 현관문에 새겼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의 근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로마 시내에서 개선 행진을 벌인다. 왕이 하사한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탔을 것이다. 그 뒤로는 수많은 부하의 줄이 이어진다. 구름떼처럼 몰려나온 로마 시민들이 가도에서 환호를 올린다. 개선장군이 영광을 한몸에 받는 순간이다.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환영식의 한 소재다. 지금은 당신이 신에게 돌아갈 영광을 받으나 곧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메멘토 모리는 영혼의 잠을 깨우는 죽비다.

잠시 옆으로 나가는 말이다. 로마 문명은 탁월하다. 오늘의 유럽 문명은 로마 문명에 빚진 게 크다. , 건축, 토목, 철학, 군사, 의술, 문학, 연극 등등에서 다른 문명을 압도한다. 로마는 오늘의 미국처럼 강할 뿐만이 아니라 세련미가 넘쳤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신학도 여기에 포함된다. 기독교 초기 교부들은 헬라어로 신학 작업을 수행했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로는 로마 언어인 라틴어로 글을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로마 권력이 로마 권력이 예수를 처형했다는 사실이다. 사도신경에는 두 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로마 총독 빌라도다. 한 사람은 자기 몸을 통해서 예수를 세상에 나오게 하였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권력으로 예수의 생명을 끊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도 사도신경을 예배의 중요한 순서로 계속 유지했다는 사실은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이후로 기독교가 어용 종교로 변질한 게 아니라 제국과의 긴장 관계를 여전히 놓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는지.

오늘의 의학은 영생불사를 약속한다. 현대인들은 거기에 매력을 느낀다. 좋은 식단과 피트니스와 종합 건강 검진과 건강 보험 등은 현대인들의 주요 관심 사항이다. 인공지능과 결탁한 의학은 모든 사람에게 장수와 건강을 담보해줄 것처럼 보인다. 모두 건강하게 노년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앞에서 짚었던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건강의 배신>에서 이런 현대인의 로망을 헛된 꿈이라고 비판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우리의 면역력과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세포는 늘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아무런 장애 없이 오래 살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영생이야말로 분명 더 매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리콘벨리의 억만장자들로 대표되는 인구통계학적 극소수들 외에 생의학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간병인이 먹여주고 볼 일을 도와줘야하는 생명 연장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다 겸손하게 말하자면 성공적인 노화의 목표는 종종 생애 마지막 몇 년간의 병적 상태를 줄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른 말로 하면,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산 뒤 빠른 시간 내에 죽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다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죽는다는 목표는, 말하자면 눈사태나 고산병의 개입 없이 실현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불길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고자 취하는 조치들은 손상된 신체와 굴욕적인 장애를 안고 더 오래 살게 될 가능성으로 이어질 뿐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라 스팬이 지적했듯, “수명 연장에 따른 대가는 인생 말년에 높은 비율로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하자 보증도 없다. (219-220)

 

기독교 신앙의 첫 관문은 세례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는 거룩한 의식이다. 물론 예수와 함께 산다는 약속도 세례에 포함된다. 그러나 죽음이 먼저다. 기독교 신앙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단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는 평생 예수의 죽음을, 그리고 자기 죽음을 연습한다. 죽음의 어둠을 경험한 사람만이 영광의 빛이 무엇인지를 절감하게 것이다. 죽음 경험은 우리의 신앙적 일상에서 키리에 엘레이손기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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