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372)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스승인 예수가 보지 못하게 된다는 근심이 다시 예수를 보게 됨으로써 기쁨으로 바뀐다는 말씀이 반복된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매우 강력한 표현이다. 빼앗을 자가 없는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다.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지기에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의 것으로는 이 구원의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이 구원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복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런 구원의 기쁨을 일상에서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묵상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를 통한 구원이, 또는 예수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또는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이 영혼 안에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만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자기와 관계된 일들이 잘 풀리는 데서만 기쁨을 느끼는 삶의 방식에 길들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관계된 일들이 실제로 잘 풀려도 잠시 흐뭇할 수는 있어도 빼앗기지 않을 기쁨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평생 교회 생활을 성실하게 한 기독교인들도 영혼의 갈증을 느끼면서 산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내 생각에 최선의 길은 예수를 늘 새롭게 만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이 그랬다.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우리가 예수를 만난다는 게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제자들도 3년간 공생애에서 함께했던 생전의 예수를 다시 만난 건 아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이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의 구원론적 사역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예수를 만난다는 말은 예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단순한 종교적 감수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포괄적 이해에 속한다. 예수를 통해서 창조 생명의 깊이를 알고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을 느끼고, 진리의 영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느낌들이 깊어지지 않으니 교회를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갈증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려고 여러 집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말씀이 살아있는 집회라면 도움이 되겠으나, 생수가 아니라 소금물이나 설탕물을 제공하는 집회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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