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88)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한은 28절에서 하나님이 예수에게 심판의 권한을 주었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면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말한다. 무덤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무덤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편안하게 산다는 것이 신기한다. 죽음을 매 순간 두려워한다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죽음을 까맣게 잊고 사는 건 이런 점에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죽음으로 인해서 불안한 것보다는 망각하는 게 나을지 몰라도 그게 삶을 의미 있게 사는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죽음을 기억하는 게 죽음이 이르기 전의 삶을 생명 충만하게 하는 바른 길이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일상이 너무 과도하다는 것과 죽음이 끔찍스럽게 두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기억하고 아직 죽음이 닥치지 않았을 때 그 상황을 붙들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늘 그 죽음을 직면하게 한다. 성경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남북 이스라엘 왕조의 왕에 대한 이야기도 대개는 그가 몇 년 간 재위하다가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갔다는 말로 끝난다. 그 어떤 영웅호걸도 여기서 예외가 없다. 기독교 신앙의 입문인 세례가 말하는 것도 죽음이다. 구약에서 죽음은 그야말로 생명의 끝장이다. 죽음은 저주스러운 운명이다. 신약에서 죽음은 끝장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근본에서는 이런 관점이 신약을 관통하고 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인자로서의 예수의 권위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을 정도로 확실하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을 수학공식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시적인 표현이자 종교적 수사다.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영적인 권위가 우리가 세상에서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계량적이고 물리적인 세계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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