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14) 10: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는 양의 문이다. 양은 저 문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양치기도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울타리를 넘는 자는 양치기가 아니라 도적이다. 양의 문이라는 표현은 요 14:6절의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가 곧 구원의 문이라는 뜻이다. 이런 요한복음의 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으로 좀 더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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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9)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 2019-12-21
  • 조회 수 932

예수 어록(219)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7절과 8절은 예수를 양의 문이라고 표현했다. 11절과 14절은 “선한 목자”라고 표현했다. 양의 문이나 선한 목자는 같은 의미다. 선한 목자는 목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표현이기는 하나 실제로 목자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떨어질 수 있다. 이리가 양을 강탈하려고 나타나는 상황이다. 삯꾼 목자는 양을 사랑하지도 않고 소명의식도 없기에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도망...

예수 어록(218) 요 10:11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2019-12-20
  • 조회 수 1064

예수 어록(218)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건 아닐 것이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가능하면 십자가 죽음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예수의 관심은 거대한 인류 구원이 아니다. 그에게 인류 구원에 관한 소명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소박하게 자신에게...

예수 어록(217) 요 10:10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2019-12-19
  • 조회 수 1047

예수 어록(217)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다는 말이 그럴듯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생명을 풍성히 얻는다는 말이 성립되려면 풍성히 얻지 못한다는 말이 전제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생명 경험은 속된 표현으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하고, 사회적인 지위도 높아야 한다. 남보다 아주 특별하게 부자로 살거나 사회 명망가로 살지는 못해...

예수 어록(216) 요 10:9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 2019-12-18
  • 조회 수 955

예수 어록(216)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기독교 교리의 초보에 속하지만,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한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아는 것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게 확인될 것이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도 구원을 완전히 실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긴말이 필요 없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주간일지 12월15일 대림절 3주 file [7]

  • 2019-12-17
  • 조회 수 160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15일, 대림절 3주 1) 찾으라- 지난 주일(12월5일) 설교 마지막 문장은 “찾는 자는 찾게 될 것입니다.”입니다. 이게 진리의 속성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에 꽂혀있습니다. 예수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분명히 지금 여기서 그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있겠지요. 그게 무언지 조금씩 눈에 안개가 걷히듯이 저의 눈에 들어오고 있긴 합니다. 훗날 좀더 확연해지면 설명해보겠습니다. 2) 성경봉독- 이번 주일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사야 35:1-10절...

예수 어록(215)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 2019-12-14
  • 조회 수 1559

예수 어록(215)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며 강도라는 요한복음 기자의 진술은 오해받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들을 다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유대 민중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신앙 전통이 살아있었기에 예수도 역사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을 절도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절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이 절대적이...

예수 어록(214) 요 10:7 나는 양의 문이라.

  • 2019-12-13
  • 조회 수 1008

예수 어록(214) 요 10: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는 ‘양의 문’이다. 양은 저 문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양치기도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울타리를 넘는 자는 양치기가 아니라 도적이다. 양의 문이라는 표현은 요 14:6절의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가 곧 구원의 문이라는 뜻이다. 이런 요한복음의 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으로 좀 더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예수 어록(213)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 2019-12-11
  • 조회 수 1064

예수 어록(213)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여기서 타인은 바리새파 지도자들이다. 1세기 마지막 30년 어간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붕괴로 지리멸렬에 떨어졌을지 모를 유대교가 바리새인들의 개혁 운동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던 시기였다. 그 운동의 본거지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얌니야다. 그곳에 랍비 학교가 세워졌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공적인 바리새파 운동으로 인해서 기독교 세력은 위축되었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런 상황...

예수 어록(212) 요 10:4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 2019-12-10
  • 조회 수 1100

예수 어록(212)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본문의 묘사가 한편의 동화처럼 전개된다. 양치기는 양의 문을 열고 앞서 풀밭과 시냇가로 걸어간다. 그 양치기는 노래를 부르거나 피리, 또는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멋진 모양을 그리는 중이다. 새도 날고 나비와 벌이 양치기 주변을 오갔을지 모른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아온다. 양은 양치기의 음성을 알기에 뒤를 따른다. 양치기와 양은 말 그대로 혼연일체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누린다. 예수를...

주간일지 12월8일 대림절 2주 file [2]

  •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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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8일, 대림절 2주 1) 불 심판- 목사가 자신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저는 가끔 그런 일을 경험합니다. 오늘(12월8일)이 그런 날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심판은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더 할 나위 없는 복된 소식입니다. 심판을 복음으로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은혜로운 설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를 심판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2019-12-07
  • 조회 수 1323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은 우리에서 보호받는다. 그 양의 우리는 하나님이다. 양치기는 양을 위해서 문을 여닫는다. 아침에 문을 열고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고 저녁에 다시 문을 열어 양을 우리에 넣고 문을 닫는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에 목자가 하라는 대로 하고, 목자도 자기 양을 알기에 최선의 방식으로 양을 지킨다. 예수만이 양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양치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자라는 뜻...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 2019-12-06
  • 조회 수 1003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 예수만이 양과 목자를 연결하는 통로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어떤 이가 참된 목자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예수와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예수와 관계없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양의 목자가 아니라 도적이다. 원래 목자는 하나님이지만 이 구절에서는 목자를 예수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 11절에서는 예수가 선한 목자로 나온다. 어쨌든지 예수만이 양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

예수 어록(209) 요 10:1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2019-12-05
  • 조회 수 1094

10장 예수 어록(209)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0장 1절부터 21절까지 다시 긴 연설이 시작한다. 주제는 양과 목자의 관계다.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 표상에는 목자 상이 있다. 구약성경 곳곳에 나온다. 대표적으로 시편 23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대 유대인들의 삶이 늘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하기만 하면 모든 삶의 조건이 풍족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불...

예수 어록(208) 요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 2019-12-04
  • 조회 수 1401

예수 어록(208) 요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의 말을 듣던 바리새인들이 40절에서 자신들도 시각장애인에 속하느냐고 예수에게 반문한다.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반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 예수의 대답은 정곡을 찌른다. 당신들이 본다고 하니 오히려 죄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대답이 약간 특이하다. 시각장애인이냐, 하고 물었는데, 죄가 없다거나 있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이 ...

예수 어록(207) 요 9:39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2]

  • 2019-12-03
  • 조회 수 1421

예수 어록(207) 요 9:39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은 예수를 인자로 인식하고 믿었다. 인자 외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그리스도라는 표현도 있다. 인자는 묵시문학에서 온 개념으로, 세상 마지막 때 심판할 자를 가리킨다. 제자들은 무슨 근거로 예수를 마지막 때에 올 심판자라고 믿었나? 어떤 이들은 예수를 옥황상제 비슷한 존재로 여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살기 쾌적한 천국으로 보내고, 믿지 않는 자는 유황불에 던진다는 식이다. 이런 ...

예수 어록(206) 요 9:37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 2019-12-02
  • 조회 수 877

예수 어록(206) 요 9:37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전에 시각장애인이었던 이 사람은 인자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다. 예수가 그에게 한 대답이 바로 요 9:37절이다. 문장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일반적인 문장이라면 단순히 “내가 바로 인자다.”라거나 “아니다.”라고 하면 된다. 예수는 우회적으로 대답한다. 이런 표현이 당시 아람어나 그리스어 문장의 문학적인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와 비슷한 방식의 대화가 요 18:28절 이하에도 나온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 법...

주간일지 12월1일 대림절 1주

  • 2019-12-01
  • 조회 수 115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1일, 대림절 1주 1) 칼과 창- 오늘 설교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오래, 그리고 깊이 간직해야 할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더는 싸우지 않고 전쟁 연습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때를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고 하나님이 실행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서 평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평화 연습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의 나...

예수 어록(205) 요 9:35 네가 인자를 믿느냐.

  • 2019-11-30
  • 조회 수 1186

예수 어록(205) 요 9:35 네가 인자를 믿느냐. 9:8-34에는 예수의 어록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의 긴 어록 중심으로 전개되는 요한복음에 잘 나타나지 않는 대목이다. 눈이 밝아진 이 사람과 이런 일이 일어난 날이 하필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과 이 사람의 부모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다. 이 대목에서 요한복음이 기록된 당시에 예수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어땠는지를 암시하는 두 구절이 눈에 띈다. 하나는 22절이다. 바리새인들의 닦달을 받은 부모가 아들에게 대답을 미룰 수밖에 ...

예수 어록(204) 요 9:7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 2019-11-29
  • 조회 수 914

예수 어록(204) 요 9:7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예수는 시각장애인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의식을 집행한다. 흙을 침으로 이겨서 그 사람의 눈에 바른다. 이런 장면은 복음서에 드물다. 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예수도 침과 흙이 치유 효과를 낸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퍼포먼스를 실행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내려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수의 평소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의 눈에 손을 얹고 하나님을 향해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드렸어야만 한다. 예수는 이 사람에게 실로암 못에 가...

예수 어록(203)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 2019-11-28
  • 조회 수 1235

예수 어록(203)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이런 말을 우리는 입에 달고 살지만 이게 실제로 무슨 뜻인지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호로만 우리에게 승하고 신앙의 능력으로는 쇠하기 때문이다. 와 닿지 않는데 어쩌랴. 평소 신앙생활의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허투루 대했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도대체 예수는 왜 세상의 빛인가? 그가 빛이라면 우리는 왜 여전히 어두움에 들어간 사람처럼 사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한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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