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15)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며 강도라는 요한복음 기자의 진술은 오해받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들을 다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유대 민중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신앙 전통이 살아있었기에 예수도 역사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을 절도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절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 앞에서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상대적인 차원에 떨어진다. 아침 태양이 뜨면 밤을 밝혔던 가로등이 보잘것없어지는 형국과 같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예수를 실제로 절대 생명으로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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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24) 요 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 2019-12-28
  • 조회 수 1203

예수 어록(224) 요 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예수는 일부러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때가 중요했다. 하나님의 뜻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위험을 피했다. 자기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을 피하기도했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보여주라는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뜻과 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이 말려도 죽음을 담보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

예수 어록(223)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 2019-12-27
  • 조회 수 992

예수 어록(223)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회당에서 완전히 축출당한 기독교는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틀었다. 그 이전에도 바울에게서 보듯이 이방인 선교가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으나 체계가 잡힐 정도는 아니었다. 유대교가 기독교를 배척하지 않았다면 이방인 중심으로 전개된 오늘의 기독교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예수 어록(222) 요 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2019-12-26
  • 조회 수 1093

예수 어록(222)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는 양을 위해서 포식자와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목자처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의 싸움과 목자의 싸움이 같은 건 아니다. 목자의 싸움은 자기 양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지만 예수의 싸움은 인류 전체를 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면 인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기독교로 인해서 인류가 더 불행해졌다고 주장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전쟁과 식민지 전...

예수 어록(221)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 2019-12-25
  • 조회 수 979

예수 어록(221)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유대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들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예수를 표면적으로만 알지 실질적으로는 모른다는 말이 된다. 이와 달리 예수 제자들은 양이 목자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예수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삯꾼 목자이고, 예수는 선...

예수 어록(220) 요 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 2019-12-24
  • 조회 수 816

예수 어록(220) 요 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선한 목사와 삯꾼 목사 이야기가 반복한다.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와 본격적인 경쟁 관계에 돌입했다는 의미이다. 유대교는 기독교를 회당에서 배척했고, 기독교는 유대교가 하나님 신앙의 근본을 훼손했다고 보았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몰락 이후로 위기에 떨어진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서 율법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율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눈에 이들의 행태는 양을 돌보지...

주간일지 12월22일 대림절 4주 [2]

  •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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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22일, 대림절 4주 1)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의미의 ‘임마누엘’을 실제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 경험은 각양각색이기에 높은 수준의 경험만을 옳다고 말하기도 모호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경험은 아주 부분적이기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가 영적인 화두로 붙들어야 할 제목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그 부분적인 경험이라도 확실하게 붙드는 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아...

예수 어록(219)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 2019-12-21
  • 조회 수 928

예수 어록(219)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7절과 8절은 예수를 양의 문이라고 표현했다. 11절과 14절은 “선한 목자”라고 표현했다. 양의 문이나 선한 목자는 같은 의미다. 선한 목자는 목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표현이기는 하나 실제로 목자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떨어질 수 있다. 이리가 양을 강탈하려고 나타나는 상황이다. 삯꾼 목자는 양을 사랑하지도 않고 소명의식도 없기에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도망...

예수 어록(218) 요 10:11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2019-12-20
  • 조회 수 1062

예수 어록(218)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건 아닐 것이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가능하면 십자가 죽음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예수의 관심은 거대한 인류 구원이 아니다. 그에게 인류 구원에 관한 소명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소박하게 자신에게...

예수 어록(217) 요 10:10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2019-12-19
  • 조회 수 1038

예수 어록(217)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다는 말이 그럴듯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생명을 풍성히 얻는다는 말이 성립되려면 풍성히 얻지 못한다는 말이 전제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생명 경험은 속된 표현으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하고, 사회적인 지위도 높아야 한다. 남보다 아주 특별하게 부자로 살거나 사회 명망가로 살지는 못해...

예수 어록(216) 요 10:9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 2019-12-18
  • 조회 수 948

예수 어록(216)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기독교 교리의 초보에 속하지만,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한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아는 것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게 확인될 것이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도 구원을 완전히 실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긴말이 필요 없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주간일지 12월15일 대림절 3주 file [7]

  • 2019-12-17
  • 조회 수 1600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15일, 대림절 3주 1) 찾으라- 지난 주일(12월5일) 설교 마지막 문장은 “찾는 자는 찾게 될 것입니다.”입니다. 이게 진리의 속성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에 꽂혀있습니다. 예수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분명히 지금 여기서 그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있겠지요. 그게 무언지 조금씩 눈에 안개가 걷히듯이 저의 눈에 들어오고 있긴 합니다. 훗날 좀더 확연해지면 설명해보겠습니다. 2) 성경봉독- 이번 주일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사야 35:1-10절...

예수 어록(215)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 2019-12-14
  • 조회 수 1558

예수 어록(215)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며 강도라는 요한복음 기자의 진술은 오해받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들을 다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유대 민중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신앙 전통이 살아있었기에 예수도 역사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을 절도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절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이 절대적이...

예수 어록(214) 요 10:7 나는 양의 문이라.

  • 2019-12-13
  • 조회 수 1000

예수 어록(214) 요 10: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는 ‘양의 문’이다. 양은 저 문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양치기도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울타리를 넘는 자는 양치기가 아니라 도적이다. 양의 문이라는 표현은 요 14:6절의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가 곧 구원의 문이라는 뜻이다. 이런 요한복음의 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으로 좀 더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예수 어록(213)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 2019-12-11
  • 조회 수 1043

예수 어록(213)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여기서 타인은 바리새파 지도자들이다. 1세기 마지막 30년 어간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붕괴로 지리멸렬에 떨어졌을지 모를 유대교가 바리새인들의 개혁 운동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던 시기였다. 그 운동의 본거지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얌니야다. 그곳에 랍비 학교가 세워졌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공적인 바리새파 운동으로 인해서 기독교 세력은 위축되었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런 상황...

예수 어록(212) 요 10:4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 2019-12-10
  • 조회 수 1092

예수 어록(212)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본문의 묘사가 한편의 동화처럼 전개된다. 양치기는 양의 문을 열고 앞서 풀밭과 시냇가로 걸어간다. 그 양치기는 노래를 부르거나 피리, 또는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멋진 모양을 그리는 중이다. 새도 날고 나비와 벌이 양치기 주변을 오갔을지 모른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아온다. 양은 양치기의 음성을 알기에 뒤를 따른다. 양치기와 양은 말 그대로 혼연일체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누린다. 예수를...

주간일지 12월8일 대림절 2주 file [2]

  • 2019-12-09
  • 조회 수 120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8일, 대림절 2주 1) 불 심판- 목사가 자신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저는 가끔 그런 일을 경험합니다. 오늘(12월8일)이 그런 날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심판은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더 할 나위 없는 복된 소식입니다. 심판을 복음으로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은혜로운 설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를 심판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2019-12-07
  • 조회 수 1313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은 우리에서 보호받는다. 그 양의 우리는 하나님이다. 양치기는 양을 위해서 문을 여닫는다. 아침에 문을 열고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고 저녁에 다시 문을 열어 양을 우리에 넣고 문을 닫는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에 목자가 하라는 대로 하고, 목자도 자기 양을 알기에 최선의 방식으로 양을 지킨다. 예수만이 양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양치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자라는 뜻...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 2019-12-06
  • 조회 수 998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 예수만이 양과 목자를 연결하는 통로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어떤 이가 참된 목자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예수와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예수와 관계없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양의 목자가 아니라 도적이다. 원래 목자는 하나님이지만 이 구절에서는 목자를 예수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 11절에서는 예수가 선한 목자로 나온다. 어쨌든지 예수만이 양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

예수 어록(209) 요 10:1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2019-12-05
  • 조회 수 1079

10장 예수 어록(209)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0장 1절부터 21절까지 다시 긴 연설이 시작한다. 주제는 양과 목자의 관계다.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 표상에는 목자 상이 있다. 구약성경 곳곳에 나온다. 대표적으로 시편 23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대 유대인들의 삶이 늘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하기만 하면 모든 삶의 조건이 풍족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불...

예수 어록(208) 요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 2019-12-04
  • 조회 수 1387

예수 어록(208) 요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의 말을 듣던 바리새인들이 40절에서 자신들도 시각장애인에 속하느냐고 예수에게 반문한다.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반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 예수의 대답은 정곡을 찌른다. 당신들이 본다고 하니 오히려 죄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대답이 약간 특이하다. 시각장애인이냐, 하고 물었는데, 죄가 없다거나 있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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