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예수 어록(238)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10장을 끝으로 긴 연설 방식의 예수 발언은 끝나고 11장부터 다시 서사가 시작된다. 긴 연설은 14-17장에 다시 나온다. 이 대목에서 17장은 죽음을 앞둔 예수의 기도다. 18장부터 21장까지는 공관복음서와 비슷한 구도로 예수의 수난 전승이 나온다. 이 수난 전승 외에는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11장에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 이야기가, 12장에는 예루살렘에 다시 들어간 예수 이야기가, 13장에는 예수가 체포당하기 전날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서사에도 요한복음의 예수 어록은 공관복음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11장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는 보도로 시작한다. 누이들은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서 그 사실을 전한다. 예수가 빨리 와서 오빠의 건강을 살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예수는 세 남매를 사랑했다고 요한복음 기자는 전한다(11:5). 이들 세 남매에게 부모가 있었는지는 성경에서 확인할 길이 없다. 일언반구가 없는 거로 봐서 부모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예수를 각별하게 따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 읽기에서 이런 추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지나가자.

나사로 소식을 들은 예수의 반응은 예상외다. 서둘러 나사로 남매의 집으로 갈 수도 있고, 다른 일로 시간이 없으면 그 사정만이라도 먼저 알릴 수 있었는데, 예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말씀을 하실 뿐이다. 1) 나사로는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3) 하나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이미 요 9장에 나온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본 제자들이 누구의 죄로 인해서 이런 불행이 벌어졌느냐고 예수에게 물었다. 예수는 이 사람이나 부모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대답하신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즉 생명의 절정으로 승화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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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1) 요 11:41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2020-02-07
  • 조회 수 1059

예수 어록(251) 요 11:41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사람들이 무덤 입구의 돌을 옮기자 예수는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정확히 말하면 간구하는 기도는 아니고 감사의 기도다. 또는 기도라기보다는 감사 찬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찬양이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이런 찬양에는 간구가 이미 성취되거나 선취(先取)되었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고 말씀했다(마 6:8). 그 말은 우...

예수 어록(250) 요 11:4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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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0) 요 11:40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다시 마르다가 등장해서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 죽음은 박테리아를 통해서 인간 몸을 매우 빠르게 본래 자연 상태로 돌린다. 우리 몸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건 마땅하다. 죽음이 임박하지 않았을 때 미리 흙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본질을 물, ...

예수 어록(249) 요 11:39 돌을 옮겨 놓으라

  • 2020-02-05
  • 조회 수 1170

예수 어록(249) 요 11:39 돌을 옮겨 놓으라 예수는 나사로 시신이 안장된 무덤 앞에 섰다. 무덤 입구는 돌로 막혀 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말씀하신다. 돌은 죽음과 생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죽은 자는 이 장애물로 인해서 생명의 세계로 나올 수 없다. 거기에 모였던 많은 사람은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옮겨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옮겨 놓을 수도 없었고, 옮겨 놓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게 죽은 자는 그렇게 영원히 동굴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예수는 이 장애물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예수 어록(248) 요 11:34 그를 어디 두었느냐 [1]

  •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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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8) 요 11:34 그를 어디 두었느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예수의 말을 들은 마르다는 요 11:27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은 마 16:16절이 전하는 베드로의 고백과 사실상 똑같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한복음 기자에게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의 비중이 베드로 못지않게 크다는 의미이다.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부른다. 예수는 여전히 동구밖에 머물러 계셨다. 마...

주간일지 2월2일 file

  •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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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2일, 주현 후 4주 1) 가난 영성-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은 마 5장의 팔복입니다. 첫째 항목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누가복음은 직접 ‘가난한 자’라고 하는 데 반해서 마태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표현만 다르지 실제 내용은 다를 게 없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들은 심령이, 즉 영혼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물질로 영혼의 위로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오늘날 가난 영성이라는 말이 성립할까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을 가난...

예수 어록(247) 요 11:26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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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7)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문장도 결국은 해석에 달려 있다. 이 문장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문장은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성경만이 아니라 모든 텍스트는 해석이 필요하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그림과 사진과 악보와 기보, 그리고 작은 사물까지 해석을 통해서 그 존재가 드러난다. 여기 마당에 나뒹구는 참나무 낙엽을 보자. 지난여름에 녹색이었던...

예수 어록(246) 요 11:25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2020-01-31
  • 조회 수 1742

예수 어록(246) 요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라고 반응한다. 유대인들에게 부활 신앙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했고, 바리새인들은 인정했다. 행 23:6절에 따르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던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과 똑같이 죽은 자의 부활을 희망한다고 말한다. 공회 구성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

예수 어록(245) 요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 20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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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5) 요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는 나사로 세 남매가 사는 베다니 집에 도착했다. 나사로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안장된 지 나흘이나 되었다고 한다. 무덤에 안장된 지 나흘이라면 죽은 지는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장례식이 이미 끝났는지 아닌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조문객이 많았다는 19절의 설명이 정확하다면 아직 장례가 진행되거나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탓에 초상집 특유의 슬픔이 밤안개처럼 집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요즘은 가정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이들이 ...

예수 어록(244) 요 11:15 믿게 하려 함이라

  •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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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4)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복음서는 예수의 일대기를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한 문헌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바로 “믿게 하려고” 기록한 문헌이다. 예수는 생명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나흘 동안 예수가 그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중요하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예수의 능력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나사로 이야기에서 핵심은 나사로가 ...

예수 어록(243) 요 11: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 2020-01-28
  • 조회 수 817

예수 어록(243) 요 11: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나사로는 잠들었다.”라는 예수의 말을 제자들은 실제로 잠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똑같은 말이라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거꾸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준다. “나사로는 죽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언젠가 “정용섭은 죽었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게 될 것이다. 죽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노환, 질병, 사고 등으로 죽는다. 똑같은 장소에 있다가도 한 사람은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죽는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선 일행 중...

주간일지 1월26일 file

  • 2020-01-27
  • 조회 수 96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26일, 주현 후 3주 1) 하나님의 현존-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첫 선포가 저의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수의 이 메시지가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저 메시지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구체적인 형체를 지니고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나에게 왔다.”라고 말하는 시인들의 언어 경험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아니...

예수 어록(242) 요 11:11 잠

  • 2020-01-25
  • 조회 수 854

예수 어록(242) 요 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이제 예수는 나사로에 관해서 직접 말한다.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한다. 나사로는 잠든 게 아니라 실제로는 죽었다. 사실은 잠과 죽음은 일상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생리 현상이다. 어쨌든지 여기서 그를 깨운다는 말은 살린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는 우리를 깨우고 살리는 자다.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는 세 명의 제자, 즉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

예수 어록(241) 요 11:10 실족 [2]

  • 2020-01-24
  • 조회 수 937

예수 어록(241) 요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실족은 발을 잘못 딛는다는 뜻이다. 실족은 실족으로 끝나지 않고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등산 중에 실족하여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추락사하는 일도 있다. 젊었을 때는 실족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늙으면 쉽게 실족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겠다. 별로 실감하지 못하다간 최근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더 실감하게 되었다. 집안에서 문이나 벽에 살짝 부딪혀도 몸이 크게 충격을 받는다. 발을 조금 잘못 디뎌서 중심을...

예수 어록(240) 요 11:9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4]

  • 2020-01-23
  • 조회 수 1116

예수 어록(240) 요 11:9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유대로 다시 가겠다는 예수의 발언을 들은 제자들이 그 위험성을 지적하자 예수는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라는 문장으로 대답했다. 낮이 늘 열두 시간은 아니다. 동지 때는 열 시간이 안 될 수도 있고, 하지 때는 열네 시간이 더 될 때도 있다. 대략 낮과 밤은 반으로 나뉜다. 여기서 낮은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종교적 메타포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다. 빛이 있을 때는 길을 잃지 않는다. ...

예수 어록(239) 요 11:7 유대로 다시 가자.

  • 2020-01-22
  • 조회 수 1478

예수 어록(239) 요 11:7 유대로 다시 가자. 예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이틀 더 그 자리에 머물렀다. 예수가 일부러 시간을 지체했는지, 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모른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예수는 이제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라고 말씀하신다. 유대는 예루살렘 인근을 가리킨다. 그 지역에 나사로 남매가 사는 베다니가 있다. 지금 예수의 제자들이 머무는 곳은 요단강 동쪽이다. 요 10:40절에 따르면 예수와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피해서 “요단강 저...

예수 어록(238)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 2020-01-21
  • 조회 수 1515

11장 예수 어록(238)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10장을 끝으로 긴 연설 방식의 예수 발언은 끝나고 11장부터 다시 서사가 시작된다. 긴 연설은 14-17장에 다시 나온다. 이 대목에서 17장은 죽음을 앞둔 예수의 기도다. 18장부터 21장까지는 공관복음서와 비슷한 구도로 예수의 수난 전승이 나온다. 이 수난 전승 외에는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11장에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 이야기가,...

주간일지 1월19일 file

  • 2020-01-20
  • 조회 수 79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19일, 주현 후 2주 1) 아포칼립시스- 오늘 설교 본문에 속한 고전 1:7절에는 특별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나타나심’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고 설교 시간에 설명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는 계시, 또는 묵시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KJV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coming)이라고 번역했고, NIV는 ‘계시된’(to be revealed)라고 번역했습니다. 루터 성경은 ‘계시’(Offenbaru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용...

예수 어록(237) 요 10:38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 2020-01-18
  • 조회 수 998

예수 어록(237) 요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예수는 대담한 발언을 계속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예수 당신을 믿지 못하더라도 예수에게 나타나는 일은 믿으라고 말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의존해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예수의 행위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를 이룬다는 증거다. 그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예수...

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 2020-01-17
  • 조회 수 1022

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예수는 일관되게 자기의 행위, 즉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근거로 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예수의 행위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병든 사람과 장애인을 고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도 다 안다. 그 사실만으로는 예수를 비난할 수 없었기에 신성모독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들은 원래 삐딱한 사람들...

예수 어록(235) 요 10:36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 2020-01-16
  • 조회 수 961

예수 어록(235) 요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수는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하거나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런 표현도 듣기에 따라서 신성모독으로 비치겠지만 예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두 표현 모두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유대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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