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31)

조회 수 1134 추천 수 0 2019.10.11 20:12:26

상투스!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는 스랍들의 찬송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설명이지만, 이런 구절을 교회당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합창을 직접 듣는 거와 같은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이사야의 귀에만 들린 합창 소리다.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합창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들리는 영적인 합창이다. 시인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작곡가가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거와 같다. 오늘 우리도 이사야의 영적인 경험을 이해한다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의 하나님 경험도 기본적으로는 이들의 하나님 경험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거룩하심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이다.

앞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경험을 설명할 때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을 짚었다. 거기서는 주로 두려움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여기서는 거룩하다는 말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거룩한 존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존재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데에 있다. 바르트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절대타자(totaliter aliter). 하나님은 우리와 유사한 존재가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기에 그 어떤 방식으로도 우리가 그를 규정할 수 없고 범주화할 수 없다. 흔히 말하듯이 사람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만, 하나님은 초월한다. 제약받는 자와 초월하는 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심연이 놓여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인간은 새처럼 공중을 날지 못한다. 사람과 새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놓인 셈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완전히 구별된 존재라고 한다면 결국 사람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종의 불가지론이 개입된다. 이런 문제는 서로의 주장이 얽혀서 따라가기 복잡하니까 길게 끌지 말자. 하나님 인식과 경험에서도 하나님이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주장이 기독교 정통의 입장이다. 그 주도권을 가리켜서 계시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시로 우리는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인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세상 이치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은 진리의 관점에서 가장 수준이 낮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사랑의 실증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구별된다는 말을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바꾸면 낯설다는 뜻이다. ‘거룩하다.’라는 말은 곧 낯설다.’라는 말이다. 낯설기에 거룩하고, 거룩하기에 낯설다. 이런 점에서 가장 낯선 존재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이 된다. 이사야의 환상에 나오는 스랍은 이상한 생물이다. 천사도 이상한 생물이다. 모두 낯선 생물들이다.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을 직접 표현할 수 없으니까 우리의 익숙한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상인 스랍이나 천사처럼 낯선 생물들을 등장시켜서 간접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은 절대적으로 낯선 경험이다. 갑자기 외계인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하나님에 대한 낯선 경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종종 나타난다.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여 히브리 사람들은 건너게 하고, 파라오 마병들은 바닷물에 수장시킨 이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리암의 노래를 들어보자.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21).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는 존재다. 그런 일들을 그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다. 예수 사건 앞에서도 사람들은 놀라워했다고 한다. 다 같은 이야기다. 하나님은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낯선 존재라는 말이다.

낯선 존재나 낯선 능력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악한 방식으로 낯선 것들에게는 거룩하다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사탄이나 마귀의 힘을 빌려서 사람들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선한 능력과 악한 능력을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양쪽 모두 놀랍고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걸 구분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영적인 통찰력의 심화가 최선이다. 영적인 통찰력이 깊어지려면 낯설지만 선한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좋은 시를 많이 읽고 공부한 사람만이 좋은 시와 그렇지 못한 싸구려 시를 구분할 수 있는 거와 같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낯섦을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두지만 낯설다는 경험은 거룩하다는 경험과 같다. 낯선 경험과 거룩하다는 경험의 대상은 어떤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의 깊이에 들어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스랍들을 경험했지만, 우리는 강과 산과 사막에서도 스랍들을 경험할 수 있다. 나무와 꽃이 스랍이며, 아침 안개와 구름이 스랍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유심히 보면 낯설지 않은 게 없다. 즉 거룩하지 않은 게 없다. 시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그런 걸 잘 살피면서 놀라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다. 이시영 시인의 시집 사이에서 3행으로 된 시 저 잎새 하나를 읽어보겠다.

 

나뭇잎 하나에도 신의 강렬한 입김은 스며

바람 불지 않아도 저 잎새 밤새도록 찬란히

은빛 등을 뒤집고 있으니

 

시인에게는 나뭇잎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그것 자체가 낯설고 거룩해서 신의 입김이 스며들었다고 본 것이다. 일본 고유의 단시 하이쿠에 이런 시가 있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간노 다다모토). 사물에 대한 이런 시각 없이 우리는 성경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사물의 깊이를 느끼고 생각할 줄 아는, 그래서 세상을 새롭고 놀랍고 두렵고 거룩하게 경험하는 신자들은 목사들의 상투적인 설교에서 아무런 영적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한편으로 당연하고, 다른 한편으로 안타깝다. (이사야의 하나님 경험 항목은 졸저 <목사 구원>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21세기 현대인들의 희망은 유물론과 휴머니즘을 토대로 한다. 물질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거듭남이 왜 참된 희망의 근거인가에 관해서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으로 깊이 들어가고 그 신앙이 실제 교회 생활과 세상살이에서 현실로 자리를 잡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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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31)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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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스!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는 스랍들의 찬송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설명이지만, 이런 구절을 교회당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합창을 직접 듣는 거와 같은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이사야의 귀에만 들린 합창 소리다.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합창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들리는 영적인 합창이다. 시인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작곡가가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거와 같다. 오늘 ...

베드로전서 강해(3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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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이유 베드로 사도도 고난의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고난을 피할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매우 역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으니 세상 사람들과 세상의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광신자처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다. 고난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 가운데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마음이 상해도 심각한 정도로 낙심하지는 않는다. 집에 들어가면 더 행복한 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 속에 ...

베드로전서 강해(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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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서도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이 피투적 존재로서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해서 완벽한 대답을 바란다는 것은 속된 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져 보고 모든 실체를 말하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작은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만 어렴풋이 짐작하며 살아갈 뿐이지 이것이 전체적으로 어떤 근원과 목표를 가졌는지 잘 모른다. 그렇다면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한 질문 앞에서 “우리가 아는 것이 없다.”라는 ...

베드로전서 강해(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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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 “무죄한 자의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기독교인들에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 간혹 ‘병원 24시’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불의의 사고를 만난다거나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이유나 위로를 제시하기가 힘들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을 볼 때는 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의, 사랑, 전능과 같은 속성의 하나님 바로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런 숙명적 고난의 이유를 해명할 길이 막막하다...

베드로전서 강해(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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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3-17 소망에 관한 질문과 대답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

주간일지 10월6일 창조절 6주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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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0월6일, 창조절 6주 1) 한센병- 한센병 환자 10명이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옵니다. 그중의 한 명은 사마리아 이방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 지역과 구별됩니다.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유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이 유대의 순수 혈통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열 명의 한센병 환자 중에서 바로 그 지역의 사람이 예수님에게 칭찬받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역설...

베드로전서 강해(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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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8-12 악, 욕, 복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

베드로전서 강해(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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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7 아내와 남편 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베드로전서 강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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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가 하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참는 것이 신앙적으로 옳다고 말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23절은 이렇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여기서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다. 사람의 판단은 늘 오류를 전제한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긴다는 게 쉽지 않다. 하나님의 현실성(reality of God)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

베드로전서 강해(23) [4]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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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8-25 그리스도의 고난과 공의의 하나님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그는...

베드로전서 강해(22강)

  •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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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1-17 이방 세계 안에서 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너희는 ...

베드로전서 강해(21) [1]

  •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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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에서 놀라운 빛으로!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신분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9절에서 다시 부연하여 설명한다. 이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네 가지 성격이 나온다. 1) 택하신 족속, 2) 왕 같은 제사장, 3) 거룩한 나라, 4)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각 항목에 큰 의미가 있다. 이를 인식하는 기독교인이 있고 못 하는 기독교인이 있다. 만약 기독교인의 이런 영적 실존을 인식한다면 그는 비록 거지 행색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룩한 아우라에 둘러싸여서 살 것이다. 이 거룩한 아우라는 특별한 빛이다.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주간일지 9월29일 [2]

  • 20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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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9월29일, 창조절 5주 1) 선한 싸움- 오늘 설교 성경 본문에 나오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1)라는 문구를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유유자적하는 산보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거는 투쟁으로 본 것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에는 두 가지 종류의 다툼이 나옵니다. 하나는 교만하여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다툼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위에서 말한 믿음의 다툼입니다. 전자는 ‘자기’를 내세우기에 영혼을 파괴하지만, 후자는 자기를 부정하기에 영혼을 풍요롭게 합...

베드로전서 강해(20)

  •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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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10 그의 기이한 빛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

베드로전서 강해(19)

  •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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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2-25 거짓 없는 형제 사랑 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진리의 속성- 베드로 사도는 22절에서 형...

베드로전서 강해(18)

  •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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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자가 되라! 이제 베드로전서는 예수 재림으로 인해서 주어질 은혜(구원)에 근거하여 교인들을 향해서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15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16절에서는 레 11:44(레 19:2, 20:7 참조)을 그대로 인용한다. 거룩하다는 말은 앞에서 확인했듯이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물인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세상과 구별되거나 거룩해질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다. 거룩해진다거나 구별된다는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베드로전서 강해(17) [4]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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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3-21 성화의 길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너희가 알거니와...

베드로전서 강해(16)

  •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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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복음 베드로전서 기자는 복음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강조하는 중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깊이 연구하고 기대했던 내용이 바로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전해진 복음이다. 12절에서는 천사들도 보기 원했던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존재인데, 그들도 복음은 알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영혼 구원은 천기누설처럼 하나님에 의해서만 준비되고 실행된 사건이니 ‘계시’로만 알려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문은 복음 전파를 성령의 일이라고 말한다. “성령을 ...

베드로전서 강해(15)

  •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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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고난과 영광 11절이 말하는 고난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훨씬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알았다기보다는 그들의 메시아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는 뜻으로 보는 게 옳다. 여기서 영광은 부활이면서 동시에 승천이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또는 생명의 절정이기에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는 표현이 이를 가리킨다. 바울은 고후 4:6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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