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39)

조회 수 973 추천 수 0 2019.10.21 20:40:56

51-5 장로와 젊은이들에게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제 베드로전서 마지막 장이다. 장로와 젊은이에게 주는 권면이다. 우선 1절에 베드로전서를 작성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세 가지 특징이 거론되었다. 1) 그는 장로였다. 베드로 사도의 이름을 빌려도 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이다. 굳이 오늘날의 직책으로 바꾼다면 목회 전반을 책임지는 목사에 해당한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증인이라고 했다. 그가 예수의 고난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 지금 기독교 신앙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다. 고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한다. 교회 지도자라고 한다면 고난의 증인이 되는 걸 각오해야 하지 않을는지. 3) 영광에 참여할 자는 순교 당할 자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순교자는 특별한 명예를 얻는다. 말이 순교지,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침묵>

월간지 <기독교 사상>에 지난 2년 동안 엔도 슈사큐와 건너는 강이라는 제목의 글이 연재되었다. 글쓴이는 일본 난진대학교 김승철 교수다. 20172월호에 최종회 밟힘과 밝힘의 세계라는 글이 실렸다. 여기에 영화 사일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일런스는 엔도 슈사쿠(1923-1996)<침묵>을 원자료로 사용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17세기 일본에 선교사로 온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스페인 가톨릭 본청에 알려진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 두 명의 제자 신부가 이를 확인하려 일본에 와 숨어서 신앙생활을 유지하던 신자들을 만난다. 순교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그 끔찍한 상황 앞에서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는다. “(후미에를) 밟아도 좋다.” 후미에는 17세기 일본의 에도막부 시대에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동판이나 목제판에 새긴 그리스도나 마리아상이다. 감독 스콜세지는 <침묵> 독일어 역에 기고한 서문에서 엔도의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붙였다고 한다. 6.25를 배경으로 하는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적이라는 것. 그분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맡기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고 계실 때조차 모든 것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계시다는 것. <침묵>은 이러한 사실들을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몸으로 알게 된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기독교사상, 173).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직접 순교를 당하지는 않겠지만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순교 영성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단초를 우리는 스데반의 순교 이야기(7)에서 발견한다. 스데반은 마지막 순간에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스데반은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지금 돌에 맞아 죽는 그 광경이 현실(reality)이지만 스데반에는 예수가 현실이었다. 기독교인은 순교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사람들이 못 보는 환상을 현실로 보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순교의 영성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는 연금술사를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순례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큰 스승을 만난다. 스승은 그에게 말한다. 납을 금으로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금으로 보는 능력이 연금술이라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각각의 시간에 따라서 납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한다. 시간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에서는 같은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걸 느끼는 사람은 세상을 새롭게 본다. 밥 한 그릇에서 천사를 만날 수도 있다. 벼가 자라고 익는 과정에 참여한 물, 탄소, 바람, 햇살, 안개, 박테리아 등등, 그런 힘들이 한 그릇의 밥에 숨어있다. 이 사실을 뚫어보는 사람은 5만 원 호텔 뷔페만이 아니라 5천 원에 먹을 수 있는 시장통 백반 정식으로 생명의 충만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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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99, 눅 9:1~6, 제자 파송 https://youtu.be/tJuTf-o3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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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토 fil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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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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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낙타털 옷, 4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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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6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막 1:6) 낙타털 옷 마가의 설명에 따르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급 모피코트를 입은 멋쟁이군요. 동물애호가들이 이 구절을 읽으면 요한이 활동하고 있는 광야로 나가서 데모를 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누군지 아시죠? 하나님이십니다. 선악과 사건 이후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과 이브에게 야훼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성서에 ...

10월30일 제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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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30일 제삼시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15:25)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제삼시’로 못 박습니다. 오늘의 시간으로 오전 9시입니다. 제육시, 즉 낮 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깔렸고(막 15:33), 제구시, 즉 오후 3시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했습니다.(막 15:34, 37) 마가복음의 이런 연대기적 진술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말하지 않고 대신 어둠이 깔린 낮 12시와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

결혼예식 기도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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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8일(금) *내일 대구샘터교회 남청년이 구미에서 결혼한다. 신부가 경북 구미에 살기 때문이다. 관례대로 신부측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주례를 감당하시고, 나는 기도를 맡았다. <매일 기도하라>에 이미 쓴 결혼 기도문을 기초로 해서 다시 살을 붙였다. 혹시 결혼예식에 기도할 기회가 있는 분은 내 허락을 미리 받지 않아도 이 기도문을 사용하실 수 있다. 오석원, 윤성희 결혼예식 기도 주님, 꽃처럼 아름다운 신부 윤성희 자매와 늘 푸른 나무처럼 듬직한 신랑 오석원 형제가 지금 여기 부부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많은 증인들 ...

오순절 마가 다락방 [2]

  •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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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오순절 마가 다락방 어제 성령강림절 설교 본문은 행 2:1절 이하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야기였다. 바람, 불, 방언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나마 설교 시간에 했으니,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 120명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는 말은 100% 정확한 거는 아니다. 120명은 행 1:15절에 근거한 것이고, 마가의 다락방은 행 1:13절과 행 12:12절에 근거한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이 아무리 커도 120명이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모이는 숫자는 들쑥날쑥하지 않았겠는가. 장소도 경우...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 조회 수 10563

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 조회 수 10535

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원당일기(70)- 창 file

  • 2020-09-18
  • 조회 수 10111

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냅니다. 건강에는 나쁘지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상이 창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도 상당히 깁니다. 제 방의 창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교 준비하다가 오후에 찍은 사진인데, 한번 보세요.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대로 찍은 탓에 네모 반듯하게 나오지 않았네요.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진입니다. 밖이 밝으니 창틀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창 자체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창을 통해서 보는 밖을 좋아하는 거겠지요. ...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 2007-06-23
  • 조회 수 9944

2007년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제자들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발먼지를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발먼지를 어떻게 털어내라는 것일까요? 발을 땅바닥에 대고 쾅쾅 울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을 들고 신발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라도 털어내라는 것인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습관, 또는 격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 2012-11-20
  • 조회 수 9810

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 조회 수 9587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9585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512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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