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1)

조회 수 1258 추천 수 0 2019.10.26 19:07:44

장로

장로는 교회의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자다. 그가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가 2절과 3절에 나온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라. 2)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 하지 말고 자발성으로 하라. 3)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본이 돼라. 당시에도 문제가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원과 수녀원에는 왜 그런 이들이 없겠는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항목이 재미있다. 아마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재물을 모은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그 사람이 반드시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기 때문에만 벌어지지 않는다. 선의로도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재정 장로와만 아는 비밀 계좌를 열었다고 하자. 교회가 어려움에 떨어지거나 선교할 일을 대비해서 현금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수십억, 수백억이 쌓일 수 있다. 재정 장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그 재정을 사사롭게 사용할 수 있다. ‘기꺼이하라고 말한 걸 보면 교회 지도자들은 사례비보다는 소명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세 번째 항목은 오늘에도 아주 실감 나는 이야기다. 권위주의에 떨어지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교회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자기주장에 특히 강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주장이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교만

벧전 5:5절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충고다. 사실은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이가 젊다기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인 장로와 대비되는 뜻으로 젊은이라고 한 것 같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거꾸로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주신다는 것이다. 교만과 겸손은 교양처럼 보이기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건 착각이다. 교만은 소위 원죄에 해당한다. 어거스틴은 죄를 휘브리스’(교만)이라고 규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모르 수이’(자기 사랑이라고 했다. 교만한 자의 특성이 자기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죄를 자기 집중, 자기 연민(나르시시즘)이라고 규정했다. 다 통하는 개념들이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삶의 방식, 또는 그런 기질을 가리킨다. 자기를 중심에 두기에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 심리학이나 철학은 자기에게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긍정 심리학이다. 이게 죄인 이유는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은 생명에서 소외된다. 자기를 확인하려고 재물과 사회 지위에 집중한다. 재물이 늘고 신분이 높아진다고 해서 사람이 만족하는 게 아니다. 집착할수록 공허도 비례하여 더 깊어진다. 생명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교만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순전한 기독교> 192쪽 이하에서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말한다. 그 내용은 발췌 방식으로 요약하겠다.

 

성도덕은 기독교 도덕의 중심이 아니다. 중심은 교만이다. 성적인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등은 교만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악마는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

교만은 다른 이들의 교만과 경쟁 관계에 있다. 다른 악은 우연히 경쟁적으로 되지만 교만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교만은 단순히 무언가를 더 가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옆 사람보다 더 가져야만 만족하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얻어도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람과 사람을 본다.

기독교인인데도 교만한 사람은 상상 속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기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악마를 따르는 것이다. 덜 나쁜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을 이용하기에 생기지만 교만은 지옥에서 곧장 온다. 다른 악들에 비해서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교만을 통해서 인간적인 유혹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만이라는 독재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악마는 우리를 순결하고 절제하며 용감하게 살도록 허락한다.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지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역겨운 사람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말을 하든지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예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걸쳐서 겸손한 사람이 되기 힘들 것이다. 교만이 몸에 뱄다. 무엇인 교만인지도 모른다. 교양으로 겸손을 위장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매우 곤란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18:9-14) 비유 앞에서 우리의 생각은 복잡하다. 실제로는 바리새인처럼 살고 싶어 한다. 실제로 자기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자기를 높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바리새인처럼 살면서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칭찬한 세리와 자기를 동일시한다. 기독교인의 심리가 이중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닐는지.

어떻게 실제로 겸손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다른 뾰족한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그것의 하나를 나는 앞에서 순교 영성이라고 말했다. 순교 영성을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게 좋다. 삼위일체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그 세례 의식이 반복이라 할 성찬식의 참된 의미 안으로 구도 정진으로 태도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이미 죽었기에 자기는 없고, 예수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에 지금의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인 빵과 포도주로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는 무엇이 더 우리에게 필요하겠는가. 이런 세례 영성과 성찬 영성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다. 이런 신앙 경험은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기에 우리는 순례자처럼 푯대를 향하여 천천히, 그러나 치열하게 좌고우면 없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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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9.10.27 16:54:24

오늘 말씀은 골백번 읽고, 묵상하고, 통곡해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고, 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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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10.27 22:54:46

예, 저에게도 찔리는 구석이 많습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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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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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털 옷, 4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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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0일 제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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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30일 제삼시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15:25)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제삼시’로 못 박습니다. 오늘의 시간으로 오전 9시입니다. 제육시, 즉 낮 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깔렸고(막 15:33), 제구시, 즉 오후 3시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했습니다.(막 15:34, 37) 마가복음의 이런 연대기적 진술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말하지 않고 대신 어둠이 깔린 낮 12시와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

결혼예식 기도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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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8일(금) *내일 대구샘터교회 남청년이 구미에서 결혼한다. 신부가 경북 구미에 살기 때문이다. 관례대로 신부측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주례를 감당하시고, 나는 기도를 맡았다. <매일 기도하라>에 이미 쓴 결혼 기도문을 기초로 해서 다시 살을 붙였다. 혹시 결혼예식에 기도할 기회가 있는 분은 내 허락을 미리 받지 않아도 이 기도문을 사용하실 수 있다. 오석원, 윤성희 결혼예식 기도 주님, 꽃처럼 아름다운 신부 윤성희 자매와 늘 푸른 나무처럼 듬직한 신랑 오석원 형제가 지금 여기 부부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많은 증인들 ...

오순절 마가 다락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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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오순절 마가 다락방 어제 성령강림절 설교 본문은 행 2:1절 이하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야기였다. 바람, 불, 방언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나마 설교 시간에 했으니,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 120명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는 말은 100% 정확한 거는 아니다. 120명은 행 1:15절에 근거한 것이고, 마가의 다락방은 행 1:13절과 행 12:12절에 근거한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이 아무리 커도 120명이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모이는 숫자는 들쑥날쑥하지 않았겠는가. 장소도 경우...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 조회 수 10535

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 조회 수 10516

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원당일기(70)- 창 file

  • 2020-09-18
  • 조회 수 10095

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냅니다. 건강에는 나쁘지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상이 창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도 상당히 깁니다. 제 방의 창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교 준비하다가 오후에 찍은 사진인데, 한번 보세요.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대로 찍은 탓에 네모 반듯하게 나오지 않았네요.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진입니다. 밖이 밝으니 창틀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창 자체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창을 통해서 보는 밖을 좋아하는 거겠지요. ...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 2007-06-23
  • 조회 수 9924

2007년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제자들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발먼지를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발먼지를 어떻게 털어내라는 것일까요? 발을 땅바닥에 대고 쾅쾅 울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을 들고 신발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라도 털어내라는 것인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습관, 또는 격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 2012-11-20
  • 조회 수 9767

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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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9565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479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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