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2)

조회 수 1073 추천 수 0 2019.10.29 21:03:31

56-11: 영원한 영광과 잠깐의 고난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시리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제 베드로 사도는 6절에서 겸손을 한 번 더 언급한다. “때가 되면은 종말이나 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 그들을 높이시리라.”라는 표현은 4절에 나온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라는 표현과 같다.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이 우리에게는 모호하기도 하고, 추상적으로 들린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생명으로 변화하는 것이기에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것이라서 희망의 영역에 속한다. 예수도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런 기독교의 약속을 공허하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이 약속을 아무런 근거없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구원 사건에 근거하여 이 약속을 신뢰하고 희망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일종의 모험이다. 예수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말과 행동과 운명을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근거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잘 멀고 잘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미래는 무슨 미래냐 하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은 한순간으로 끝난다.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오늘의 삶이 의미 충만해지기 위해서라고 이 약속과 희망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생명을 약속으로 믿는 사람은 7절이 가리키듯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긴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겠지만 종종 그 사실에서 멀어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평생 믿음 생활을 해왔어도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어떤 의학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염려가 더 늘어난다는 사실을 그 이유의 하나다. 이렇게 되는 건 삶을 거꾸로 살았다는 증거다. 나이를 먹으면서 염려가 줄어야 정상이다. 삶을 수행의 차원에서 대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삶의 수준이 더 떨어진다. 자신의 본성에만 맡겨두면 아무리 삶의 조건이 좋아도 염려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 여기 바둑 동호인이 두 사람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바둑을 평생 승부에만 집착해서 두었다. 다른 한 사람은 바둑의 길을 평생 따라가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두 사람의 바둑 수준은 더 벌어진다. 기독교인은 기독교 신앙을 도구적으로 대하지 말고 순례의 길로 대해야 한다. 즉 신앙의 세계 안으로 시나브로 깊이 들어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성경 기자들은 늘 깨어 있으라거나 하나님을 닮아가라거나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권면한다. 본문 8절과 9절도 그것을 말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그리고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대적 마귀) 대적하라.” 한마디로 정신을 차리라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돈을 버는 데만 정신을 차린다. 이런 표현이 진부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대 정신이 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돈이 없으면 생존이 위태롭고 돈이 많으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인정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성경은 돈에 예민하게 사는 것을 깨어 있는 삶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삶이야말로 잠들어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인지는 우리가 다 안다. 가장 원초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말한다면 예수의 재림을, 또는 예수의 재림으로 인해서 벌어진 생명 심판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다. 시편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태도를 가리킨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130:5,6). 이런 말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하지만 실제로 그런 태도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임재, 예수의 재림은 관념적이지만 인생살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주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 해결해야 한 현안의 긴박성을 본문은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면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표현했다. 마귀는 흉한 검은 물체가 아니다. 당시 기독교를 박해한 로마 황제와 그 권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매혹적으로 보이는 시대정신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모든 인생 설계가 완성되었다고 하자. , , 자녀, 명예 등등을 골고루 갖췄다. 그것에만 몰두하게 하는 힘이 마귀다. 왜냐하면, 우리가 몰두하여 완성한 성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몰두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궁핍해진다. 이게 인간의 근원적인 딜레마다. 성공적인 인생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삶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9절에서 다시 그를 대적하라.”라고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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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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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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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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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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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고난 미래는 영광이지만 현실은 고난이다. 고난이 잠깐이라는 말은 동의하기 힘들다. 우리의 인생살이 경험에 따르면 행복은 잠깐이고 불행은 길게 느껴진다. 고난이 잠깐이라는 말은 고난을 가볍게 보는 게 아니다. 고난과 재앙은 우리가 투쟁해서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이미 앞에서 베드로전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 세 개(나그네, 고난, 희망)를 말하면서 고난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고난만이 아니라 행복을 포함한 인생살이 전체는 짧다. 잠깐이라는 말이 허풍은 아니다.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다. 요셉의 아버...

주간일지 11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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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46)

  •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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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얼굴과 등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베드로 사도의 진술을 따라가는 중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가장 가까이 간 구약의 인물은 모세다.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로 된 두 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백성들은 그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로 인해서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모세는 하나님에게“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전서 강해(45)

  •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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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에 엘레이손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은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도 된다. 중세기 미사곡에 자주 나온다. 진혼곡인 <레퀴엠> 합창곡에는 반드시 나온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입에서는 이 기도 외에는 나올 게 없다는 뜻이다. 나도 동의한다. 하나님의 자비만이 우리가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살아온 과정에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만한 일과 책망받을만한 일을 저울에 달아보니 책망받을만한 쪽이 훨씬 무겁다는 게 확인된다. 내 손에 죽...

베드로전서 강해(44)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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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중세기 유럽 사람들은 ‘memento mori’라는 라틴어 문장을 그릇이나 옷, 또는 현관문에 새겼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의 근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로마 시내에서 개선 행진을 벌인다. 왕이 하사한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탔을 것이다. 그 뒤로는 수많은 부하의 줄이 이어진다. 구름떼처럼 몰려나온 로마 시민들이 가도에서 환호를 올린다. 개선장군이 영광을 한몸에 받는 순간이다.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환영식의 한 소재다. ...

베드로전서 강해(43)

  • 2019-10-30
  • 조회 수 899

영원한 영광 근신하라는 말만 생각하면 기독교인의 삶이 처절해 보인다. 어려움을 당하지만 인내하면서 기도로 버티라는 말로 듣는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삶을 버거워하는 인상을 준다. 시쳇말로 찌질해 보인다. 아니다. 기독교인은 어느 순간에도 비관론에 떨어지지 않는다. 실패가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휩싸여 살지 않는다. 굳이 구분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낙관론에 가깝다. 큰 성공과 큰 긍정으로 산다. 즐거움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이다. 하나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임마누엘 신앙이다. 베드로 사도도 그 사실을 10...

베드로전서 강해(42)

  • 2019-10-29
  • 조회 수 1073

5장 6-11절: 영원한 영광과 잠깐의 고난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시리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

주간일지 10월27일 file [4]

  • 2019-10-28
  • 조회 수 174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0월27일, 창조절 9주 1) 해바라기 씨- 오늘(10월27일) 설교에서 ‘해바라기 씨 2개’ 비유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개는 땅에 심겨 2미터 높이의 기둥과 화려한 꽃의 형상으로 변화했고, 다른 하나는 본래의 씨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 차이는 너무 커서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이런 극적인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개의 사람은 다른 데에 마음이 떨어져서 그걸 무시하고 삽니다. 그런 삶은 추상적인 삶입니다. 이런 추상성을 극복하고 가장 실질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베드로전서 강해(41) [2]

  •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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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장로는 교회의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자다. 그가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가 2절과 3절에 나온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라. 2)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 하지 말고 자발성으로 하라. 3)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본이 돼라. 당시에도 문제가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원과 수녀원에는 왜 그런 이들이 없겠는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

베드로전서 강해(40)

  • 2019-10-22
  • 조회 수 1105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사물(Ding)을 사중자, 즉 네 가지 힘의 회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네 가지는 하늘과 땅, 사멸할 자들과 신성들이다. 그에 의해서 사물은 신비의 차원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게오르그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설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1887-1914)의 시 ‘어느 겨울 저녁’을 보자. 눈이 창가에 내릴 때 저녁 종이 길게 울리고 식탁은 여럿을 위하여 차려지고 집안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방랑하다가 어두운 오솔길로 문밖에 이른다. 은혜...

베드로전서 강해(39)

  • 2019-10-21
  • 조회 수 974

5장 1-5 장로와 젊은이들에게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주간일지 10월20일 창조절 8주 file [2]

  • 2019-10-21
  • 조회 수 145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0월20일, 창조절 8주 1) 고립무원-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실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눅 18:1-8절도 그런 비유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부는 고립무원, 절체절명의 신세에 떨어진 사람의 운명을 대변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이런 운명에 떨어졌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외쳤습니다. 신(神)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설교에서 우리의 실존이 고립무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데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갈망이 시작...

베드로전서 강해(38)

  • 2019-10-19
  • 조회 수 914

베드로 사도는 13절에서 대담한 발언을 한다. 기독교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고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고난은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할 뿐이지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계기냐고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두 가지 성경이 있다. 하나는 역설적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여기 정말 복음에 충실하게 목회하는 목사가 있다...

베드로전서 강해(37)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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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12-19 고난 앞에서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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