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계 3:10 [5]

  • 2023-02-11
  • 조회 수 78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

계 3:9 [4]

  • 2023-02-10
  • 조회 수 63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8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게 들리긴 합니다.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는 요한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크게 위축되거나 사라지느냐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유대교...

계 3:8 [4]

  • 2023-02-09
  • 조회 수 68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계 3:7 [6]

  • 2023-02-08
  • 조회 수 66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6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제 여섯 번째로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는 명령을 듣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겁니다. 그 사자는 헬라어 ‘ἀγγέλος’의 번역입니다. 앙겔로스는 angel(천사), messenger(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직접 해당 교회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

계 3:6 [4]

  • 2023-02-07
  • 조회 수 62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5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라는 표현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용어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막 4:9, 23)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그렇다면 입이 있어도 말...

계 3:5 [4]

  • 2023-02-06
  • 조회 수 64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4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를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명책’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바울은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썼고, 계 20:12절에는 “또 다른 책이 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니”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생명책은 그야말로 상징이고 은유입니다. 이를 마치 족보처럼 실제의 ...

계 3:4 [4]

  • 2023-02-04
  • 조회 수 74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3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처음부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질책을 당한 사데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세상이 세속화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본질을 잃어도 여전히 본질에 천착하는 적은 수의 교회는 있는 법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계 3:3 [4]

  • 2023-02-03
  • 조회 수 65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2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둑 같이’ 이른다는 표현은 공생애 중에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유에도 나옵니다. 요한은 교회에 전승되던 그 비유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 구절을 기록했을 겁니다. 마 24:43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바울도 비슷...

계 3:2 [4]

  • 2023-02-02
  • 조회 수 67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1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꿰뚫는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계속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런 행위의 완전함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 아닌가요? 믿음...

계 3:1 [4]

  • 2023-02-01
  • 조회 수 78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0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다섯 번째로 거론되는 사데 교회는 처음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보통 질책이 아닙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뼈아픈 질책입니다. 질책을 받는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책마저 없는 게 더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사데 교회가 이 질책을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래서 새로워졌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

계 2:29 [4]

  • 2023-01-31
  • 조회 수 65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9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은 ‘Πνεῦμα’(프뉴마)의 번역입니다. 영은 몸(소마, 또는 사르크스)이 아니니 몸으로 사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공기나 숨이 말한다고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요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인들은 나무의 노랫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습니다. 겨울나무에서도 어떤 말인가를 듣습니...

계 2:28 [4]

  • 2023-01-30
  • 조회 수 62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8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일을 나가는 분들은 새벽 별을 가끔 보셨을 겁니다. 금성이라고 합니다. 동쪽에 작은 동산을 둔 마을에 사는 저도 종종 새벽 별을 간혹 봅니다. 밤에는 목성이 밝게 빛나고 새벽에는 금성이 또 그렇게 빛납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통 별들은 힘을 잃지만, 금성은 여전히 고고하게 빛을 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금성을 특별한 별로 여겼고, 성경에도 종종 언급됩니다. 고대인들은 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별...

계 2:27 [4]

  • 2023-01-28
  • 조회 수 72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7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인자)이신 예수께서는 쇠막대기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권세’를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분이십니다. 권세는 헬라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입니다. 이런 단어를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폭력적인 능력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강한 비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입니다. 비바람은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사람의 외투를 벗기지 ...

계 2:26 [4]

  • 2023-01-27
  • 조회 수 74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6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라는 표현이 제국주의적인 느낌을 줍니다. 당연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로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께서 제국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어떻게 만국의 권세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교는 지배 세력이 아닙니다. 지배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오히려 소금과 누룩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붙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계 2:25 [4]

  • 2023-01-26
  • 조회 수 70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5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사탄의 ‘깊은 것’에, 즉 성적인 문란과 우상숭배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굳게 잡는다는 말은 신앙을 기분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아니라 수행하듯이 흔들림 없이 지켜내라는 뜻입니다.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교우들끼리 친교를 나누고, 서로 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신학을 공부하면 더 좋습니다. 그런 일이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으나 계속 이어가야...

계 2:24 [3]

  • 2023-01-25
  • 조회 수 7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4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한의 말인가요, ‘하나님의 아들’(계 2:18)의 말인가요? 계시록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요한이니까 요한의 말이라고 봐야겠으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는 거니까 하나님 아들의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성경은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글을 기록한 저자가 있고, ...

계 2:23 [4]

  • 2023-01-24
  • 조회 수 62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3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끔찍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2절에 나오는 ‘큰 환난을 당한다.’라는 표현까지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의 자녀를 죽이겠다.’라는 표현은 받아들이기가 어렵군요. 당사자를 죽인다고 하지 않고 그의 자녀를 죽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계 2:18)이 그런 저주를 쏟아냈다는 사실은 우리가 도저...

계 2:22 [4]

  • 2023-01-23
  • 조회 수 6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2 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볼지어다.’라는 표현은 강조법입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잘 읽어보고 조심하라는 겁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에 떨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환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것이겠지요. 회개하지 않는 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환난을 불러온다는 겁니다. 과연 그런가요? 악과 불법...

계 2:21 [4]

  • 2023-01-21
  • 조회 수 70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1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 ”라는 문장은 문학적인 성격이 강한 겁니다. 묵시 문학적인 성격이 그것입니다. 요한이 당시 그리스도교 상황에 대해서 기도하는 중에 깨달은 바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이런 문장을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서 요한에게 일일이 불러서 적게 하신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그런 분이 이 세상에 사는 요한과 ...

계 2:20 [4]

  • 2023-01-19
  • 조회 수 77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0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 교회도 역시 요한의 책망을 피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이세벨의 호출됩니다. 그녀로서는 억울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부인 이름이 이세벨입니다. 그녀는 이방 나라의 공주였다가 아합 왕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이는 이세벨을 대표적 악녀로, 일종의 ‘팜므 파탈’로 묘사합니다.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