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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7월30일 믿음이 없는 세대(6) [2]

  • 2008-07-29
  • 조회 수 1844

2008년 7월30일 믿음이 없는 세대(6)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 9:19)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이 단락에서 우리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 있는 세대일까요?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기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른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은 교회당이 텅텅 비어가는 유럽 교회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주일공동예배는 물론이고 새벽기도와 심야기도에 열광적인 한국교회...

7월29일 믿음이 없는 세대(5) [2]

  • 2008-07-28
  • 조회 수 1538

2008년 7월29일 믿음이 없는 세대(5)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 9:19) 예수님만을 순수하게 믿는 것과 그 믿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유익한 요소들을 구분하는 게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그럴 필요가 있는지는 조금 더 세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정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온갖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런 치유를...

7월28일 믿음이 없는 세대(4)

  • 2008-07-27
  • 조회 수 1473

2008년 7월28일 믿음이 없는 세대(4)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 9:19) 간질병 아이를 고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즉시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세대여!” 하고 한탄하신 걸 보면 치유와 믿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치유가 믿음과 상관이 없다는 앞서의 제 설명은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선 믿음은 치유 문제보다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해당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7월27일 믿음이 없는 세대(3) [5]

  • 2008-07-27
  • 조회 수 1750

2008년 7월26일 믿음이 없는 세대(3)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 9:19) 미국의 어느 근본주의 교파에 속하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도 천동설을 굳게 믿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서를 철저하게 문자의 차원에서 오류가 없는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아주 특이해서 아무리 말이 되지 않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분명한 오류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질 때 그...

7월25일 믿음이 없는 세대(2) [2]

  • 2008-07-24
  • 조회 수 1908

2008년 7월25일 믿음이 없는 세대(2)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 9:19) 예수님은 무슨 이유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보기에 여기서 믿음은 간질병을 고치느냐, 못 고치느냐의 문제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어제 한번 짚었듯이 간질병을 고치면 믿음이 있는 거고, 못 고치면 믿음이 없는 거라는 주장은 옳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문의 중심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믿음은 간질병을 고칠 수 있다...

7월24일 믿음이 없는 세대(1) [2]

  • 2008-07-23
  • 조회 수 1624

2008년 7월24일 믿음이 없는 세대(1)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 9:19) 제자들이 간질병 아이를 고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주님께서 오늘 하신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칭합니다. 간질병을 고치지 못한 것과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걸까요?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인다면 제자들이 간질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

7월23일 참된 제자란?

  • 2008-07-22
  • 조회 수 2044

2008년 7월23일 참된 제자란?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막 9:18) 어제의 묵상 내용을 조금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겁니다. 교회 안에서의 활동을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는 게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비롯해서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에서도 제자들의 책임 의식은,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충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

7월22일 무능력한 제자들 [12]

  • 2008-07-21
  • 조회 수 3106

2008년 7월22일 무능력한 제자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막 9:18) 사도행전이 전하는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못지않은 능력의 소유자들처럼 보입니다. 병자들은 지나가는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몸에 닿게 하려고 애를 쓸 정도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서도 초능력이 발현되곤 했습니다. 이에 반해서 복음서 기자들이 전하는 제자들은 무능력한 사람들도 묘사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

7월21일 귀신 들린 아이 [2]

  • 2008-07-20
  • 조회 수 2234

2008년 7월21일 귀신 들린 아이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막 9:17) 간질병 이야기가 이제 조금 빠르게 진행됩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등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이 아버지의 표현을 따르면 이 아이의 벙어리입니다. 그런데 18절의 설명에 따르면 간질병입니다. 17절과 18절이 묘사하는 병의 증세가 다릅니다. 신약성서학자들 중에는 이 전승에 두 가지 다른 이야기가 뒤섞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7월20일 변론의 이유

  • 2008-07-19
  • 조회 수 1425

2008년 7월20일 변론의 이유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막 9:16) 오늘 성구는 아주 간결합니다. 예수님에게 거기 모인 무리를 향해서 무엇을 변론하는가, 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저는 이 질문 자체가 아니가 이 질문을 둘러싼 그 상황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곧 무리들이 변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데, 두 가지 관점으로만 살피겠습니다. 첫째, 문제가 있을 때 변론은 발생합니다. 여기서 변론은 조금 약한 단어입니다. 루터는 논쟁한다고 ...

7월19일 예수와 무리 [4]

  • 2008-07-18
  • 조회 수 1741

2008년 7월19일 예수와 무리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막 9:15) 간질병 아이를 앞에 두고 서로 변론을 벌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라며 달려와 인사했다고 합니다. 아직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자마자 곧 놀랐다는 마가복음의 표현은 조금 과장된 듯 보입니다. 마가복음 기자의 신학적 특징인 ‘놀람’이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기술된 것 같군요. 마가복음에서 무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축귀, 치병 앞에서 많이 놀라는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

7월18일 공연한 변론 [2]

  • 2008-07-17
  • 조회 수 1777

2008년 7월18일 공연한 변론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막 9:14)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변화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가 보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변론을 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산에 올라가지 않은 제자들, 큰 무리, 서기관들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읽으면 그 변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이 간질병 결린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그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7월17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 2008-07-16
  • 조회 수 2034

2008년 7월17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 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니라 하시니라.(막 9:13) 예수님은 엘리야에 관해 질문한 제자들에게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함부로 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초능력적인 승리자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건 우문현답이라고 해야겠군요. 어떤 사건이나 사태를 자기의 실질적인 앎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남이 전해준 정보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그런 범주 안에서만 생각...

7월16일 고난당하는 메시아 상 [3]

  • 2008-07-15
  • 조회 수 2034

2008년 7월16일 고난당하는 메시아 상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막 9:12) 엘리야는 승리의 표상입니다. 그가 메시아의 선구자라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곧 메시아도 역시 승리의 표상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인자가 고난의 표상으로 나옵니다. 구약성서가 사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어떤 본문은 승리의 표상을, 어떤 본문은 고난의 표상을 그리고 있다는 말씀이에요. 이렇게 서로 다...

7월15일 서기관들의 주장 [2]

  • 2008-07-14
  • 조회 수 1852

2008년 7월15일 서기관들의 주장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막 9:11) 어제의 묵상 본문인 10절과 오늘 본문인 11절의 흐름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부활이 무엇인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던 제자들이 느닷없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아가 와야 한다는 서기관들의 주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미 메시아와 부활 사건을 연결해서 생각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게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다양한 신앙...

7월14일 부활이 뭐꼬? [2]

  • 2008-07-13
  • 조회 수 1755

2008년 7월14일 부활이 뭐꼬?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막 9:10)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예수님의 메시아 성을 비밀로 부치라는 9절 말씀에 이어서 마가복음 기자는 10절에서 제자들이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했다고 보도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세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다니, 그것이 실제로 무엇일까요?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의 실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7월13일 제자들이 본 것 [4]

  • 2008-07-13
  • 조회 수 1741

2008년 7월13일 제자들이 본 것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마가복음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 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예수의 옷에 광채가 났고, 모세와 엘리아가 등장했으며, 구름 속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일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현상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

7월12일 죽음 너머의 생명 [2]

  • 2008-07-11
  • 조회 수 1819

2008년 7월12일 죽음 너머의 생명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문제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죽음 이후의 문제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어디 있는가, 하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더구나 한국교회에서 부활신앙이 일종의 역사 허무주의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런 주장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죽음 너머의 생명을 말한다는 것은 생명을 통전(integrity)적으...

7월11일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2]

  • 2008-07-10
  • 조회 수 1991

2008년 7월11일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사도신경의 한 대목도 위의 구절과 일치됩니다.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초기 기독교의 신앙은 바로 이 한 구절에 묶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죽음과 삶의 대비입니다. 죽은 자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의 대비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서 무슨 경험을 했기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

7월10일 예수 사건의 유일회성 [8]

  • 2008-07-09
  • 조회 수 2437

2008년 7월10일 예수 사건의 유일회성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라는 건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왜 기독교만의 배타적 사건이냐, 하는 데 있습니다. 반국가사범에 대한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로 죽은 사람은 예수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태일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부활 전승도 기독교에게만 있는 건 아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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