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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1월7일 손을 내밀라.

  • 2006-11-07
  • 조회 수 1813

2006년 11월7일 손을 내밀라.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예수님은 이제 바리새인들과의 승강이는 접어두고, 아니면 그들에게 보란 듯이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건들에는 여러 형식이 있습니다. 말씀이나 기도로, 또는 접촉을 통해서, 또는 어떤 극적인 행위를 통해서 치유하셨습니다. 어떤 형식이었든지 핵심은 예수라는 인격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11월6일 생명과 법 (3)

  • 2006-11-06
  • 조회 수 1705

2006년 11월6일 생명과 법 (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은 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종의 법실증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법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것에만 모든 것의 무게를 놓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완악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1월5일 생명과 법 (2)

  • 2006-11-05
  • 조회 수 1755

2006년 11월5일 생명과 법 (2)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어제 저는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사랑으로 신앙의 초석을 옮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진술은 많은 보충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원칙적으로 율법도 사랑을 폐기하지 아니며, 사랑의 법이라는 것도 우리의 삶에서 구체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늘 신앙의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고 구체적으로 적용시켜나가야 할 것 같...

11월4일 생명과 법 (1)

  • 2006-11-04
  • 조회 수 1876

2006년 11월4일 생명과 법 (1)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성서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사실을 탄식하셨다고 합니다. 완악하다는 이유는 손 마른 사람을 앞에 두고 예수님을 고발할 빌미를 찾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들에게는 한 사람의 운명보다는 (안식일) 법의 수호가 더 중요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완악한 마음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안식일 법을 수호...

11월3일 예수님의 화 [2]

  • 2006-11-03
  • 조회 수 2132

2006년 11월3일 예수님의 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우선 짤막한 본문 비평이 필요한 대목이군요. 우리말 성경에는 예수님이 저들의 완악한 마음을 탄식하셨다는 문장이 먼저 나온 뒤로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셨다는 문장이 뒤를 따르고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서는 그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루터번역본은 헬라어 성경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이렇게 문장의 순서가 바뀐 이유는 번역자...

11월2일 바리새인들의 침묵

  • 2006-11-02
  • 조회 수 1653

2006년 11월2일 바리새인들의 침묵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예수님의 질문 앞에서 바리새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은 잠잠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칫하면 예수님을 고발하려든 자신들의 계획에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형적인 좌고우면입니다. 그들이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이 그들의 양심을 찔렀을지도...

11월1일 옳음의 문제 (2)

  • 2006-11-01
  • 조회 수 1722

2006년 11월1일 옳음의 문제 (2)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어제 함께 나눈 루터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루터 앞에는 로마 교황청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교황청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떤 국가도, 어떤 철학도, 어떤 이념도 없었습니다. 갈릴레오도 역시 자기의 소신을 표면적으로는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

10월31일 옳음의 문제 (1) [2]

  • 2006-10-31
  • 조회 수 1800

2006년 10월31일 옳음의 문제 (1)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예수님의 질문은 군중들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무엇이 옳은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문제가 늘 선과 악으로, 생명과 죽음으로 양분되는 건 아닙니다. 이 양자가 겹치기도 하고 그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늘 선택해야 합니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를 할 때도 후보자들을 완전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

10월30일 예수님의 질문

  • 2006-10-30
  • 조회 수 1750

2006년 10월30일 예수님의 질문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당신을 고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이 바로 위의 구절입니다. 선과 악, 생명과 죽임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 소지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안식일에 악을 행하는 것이 좋다거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원래 율법의 근본은 선을 사회적으로 구체화하고 생명을 살...

10월29일 예수님의 말걸음 (3) [2]

  • 2006-10-29
  • 조회 수 1883

2006년 10월29일 예수님의 말걸음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누가 손 마른 사람을 회당으로 데리고 왔을까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싶어 하던 사람들인지, 아니면 그의 장애 치유를 진정으로 바라던 친구들인지, 또는 예수님을 소문을 듣고 무언가 기대를 한 당사자인지 성서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처한 형편만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회당의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이 손 마른 사람은 회당 분위기가 무언가 편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겁니...

10월28일 예수님의 말걸음 (2)

  • 2006-10-29
  • 조회 수 1690

2006년 10월28일 예수님의 말걸음 (2)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에게 사람들 한가운데 서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는 문제들을 공론화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설령 사람들과의 마찰이 확대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문제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고발하려는 사람들과의 마찰을 줄이면서 손 마른 사람을 도우려고 했다면 그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고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예수...

10월27일 예수님의 말걸음 (1)

  • 2006-10-27
  • 조회 수 1684

2006년 10월27일 예수님의 말걸음 (1)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지금 예수님이 처한 상황은 매우 곤란해보입니다. 한쪽에는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손 마른 사람이 거의 무기력하게 앉아있습니다. 저 같았으면 그냥 모른척하고 회당을 빠져나왔을지 모릅니다. 도와달라는 구체적인 요구가 없는 마당에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요. 손 마른 사람을 못 본척하고 그 상황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원망할 사람은 별...

10월26일 고발 [1]

  • 2006-10-26
  • 조회 수 1684

2006년 10월26일 고발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막 3:2)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은 누굴까요? 이 사건 뒤에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공모했다는 6절 말씀을 참고한다면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바리새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은 단지 노골적으로 예수님과 대립했지만, 이들은 위선적으로 대립했다고 말입니다. 어쨌든지 ...

10월25일 손 마른 사람 (3)

  • 2006-10-25
  • 조회 수 1998

2006년 10월25일 손 마른 사람 (3)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1) 손 마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으며,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은 제가 이렇게 떠들지 않아도 대개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건 정말 장광설에 불과합니다. 제 이야기를 직접 예로 드는 게 좋겠군요. 테니스 동호회에는 여러 실력의 사람...

10월24일 손 마른 사람 (2)

  • 2006-10-24
  • 조회 수 2010

2006년 10월24일 손 마른 사람 (2)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1) 손 마른 사람을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본문을 이렇게 바꿔서 써볼까요? “한쪽 손 마른 장애인인 내가 회당에 앉아 있는 중에 예수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이 사람은 단순히 대상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

10월23일 손 마른 사람 (1)

  • 2006-10-24
  • 조회 수 3809

2006년 10월23일 손 마른 사람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1)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아직 회당에서 축출당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묘사입니다. 유대교 고위 당국자들과의 충돌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 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노골적으로 예수를 해치울 생각으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작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본다면, 이 사건이 예수님의 운명에 아주 결정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

10월22일 안식일과 인자 (8)

  • 2006-10-22
  • 조회 수 1756

2006년 10월22일 안식일과 인자 (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앞에서 저는 주일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주일이 사람을 억압하는 종교형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만을 위한 종교 행사로 떨어지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주일, 사람, 인자 사이에 매우 미묘한 긴장이 있습니다. 영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하면 이런 요소들이 우리의 신앙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막 2:28절 큐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주일의 주인은 사람을 ...

10월21일 안식일과 인자 (7)

  • 2006-10-21
  • 조회 수 1687

2006년 10월21일 안식일과 인자 (7)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인간의 감수성이 지배하는 예배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 하는 예배를 우리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구분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신학적 영성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설명해보아야겠지요. 예전(liturgy)과 교회력의 약화는 오늘의 예배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가장 결정적인 근거입니다. 예전과 교회력은 그리스도교 신앙...

10월20일 안식일과 인자 (6)

  • 2006-10-20
  • 조회 수 1672

2006년 10월20일 안식일과 인자 (6)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안식일의 주인이 인자라고 한다면 가능한대로 교회 자체나 사람들의 흥미를 줄이고 주님에게 우리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자는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저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열린예배”도 역시 안식일의 주인이 인자라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거역하는 예배 행위가 아닐는지요. 물론...

10월19일 안식일과 인자 (5) [1]

  • 2006-10-19
  • 조회 수 1780

2006년 10월19일 안식일과 인자 (5)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며칠 동안의 큐티를 세밀하게 읽으신 분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27절 말씀과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28절 말씀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설명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겁니다. 제가 인자에 관한 말씀인 28절을 설명하면서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27절과 28절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27절은 종교적 제도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으며, 28절은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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