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는 하늘, 4월15일

조회 수 4398 추천 수 31 2006.04.15 23:56:51
2006년 4월15일 갈라지는 하늘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0)

마가복음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순간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갈라진 것이며, 둘째는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려왔으며, 셋째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첫 번 현상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 물속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순간에 하늘이 갈라졌다고 합니다. 도대체 하늘이 어떻게 갈라졌다는 것일까요? 하늘이 갈라질 수 있나요? 간혹 먹구름 사이가 열리고 햇살이 내리비출 때 하늘이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긴 하지만 오늘 마가복음 기자가 그런 물리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고대인들이 하늘을 무엇으로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짚어야 합니다. 창조설화에 의하면 하나님은 둘째 날에 물과 물을 나누어서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물과 물 사이가 궁창, 곧 하늘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하늘이 생기기 전의 세상은 온통 물이었다는 것이며, 하늘 너머에 여전히 물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노아 홍수 때 하늘의 창이 열리고 그 물이 쏟아졌습니다. 고대인들은 하늘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하늘을 생명이 숨어있는 곳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당연히 하늘에 계신 분이고, 예수님은 승천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신비와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의 신비가 일치한 것이죠.
오늘 첨단의 생물학과 물리학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의 눈에 고대인들의 생각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앞선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의 신비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신비를 파괴하는 오늘 우리의 삶은 그저 생명의 정보에 치우칠 뿐이지 생명의 신비에는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물속에서 나올 때 하늘이 갈라졌다는 건 바로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의 신비가 곧 예수님에 의해서 열렸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은 말 그대로 개천(開天)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개천을 경험하고 거기에 우리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그 개천은 오늘 이 시간,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생명이 열리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주님, 당신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십니다. 당신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줄로 믿습니다. 아멘.

[레벨:18]은나라

2016.11.04 23:45:47

그동안 그냥 신앙했습니다.

가르쳐주면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어느친구의 질문을 통해 신앙의 질문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기초부터 공부하다보니, 그동안 그냥 믿었던 것들에 작은 질문들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때 어떤일이 있었길래..그들은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하구요.

물론 예수를 통해 내가 생명을 얻음에는 의심이 없지만요.

[레벨:18]은나라

2017.02.07 10:05:57

다시 읽어보니,

"예수님이 물속에서 나올때 하늘이 열린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설명을 하기위한 메타포이군요?ㅎ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7.02.07 21:51:48

예, 성경은 시(詩)로 읽어야 합니다.

종교 언어로 진리를 전하는 글쓰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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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4일 ‘어록’5-2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위의 어록에 나오는 단어인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은 우리말로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구약성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묵시문학적 전승과 연관된 것인데, 이 세상(에온)의 마지막에 올 심판자를 가리킵니다. 인자가 단지 심판자라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떤 특별한 권능을 소유한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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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3일 ‘어록’5-1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위의 말씀을 앞에 둔 저는 지금 현기증이 날 것 같습니다. 저 말씀이 말하려는 세계를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설명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신앙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하면 결국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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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0일 ‘어록’3(4)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6) 온 천하와 자기 목숨의 대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다른 건 접어두고 목회자와 관계된 한 가지 사실만 짚을까 합니다. 오늘 교회 지도자로 자처하는 우리 목사들은 목회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이런 사명감을 강조하고, 목회 현장에 나오면 이런 요구가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목사들의 목회적 열정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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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9일 ‘어록’3(3)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6) 앞의 두 묵상에서 저는 온 천하와 목숨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했습니다. 목숨은 온 천하와 다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핵심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에 따르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명에 집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우리 삶의 능력으로 확보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온 천하를 얻는 방식의 삶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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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8일 ‘어록’3(2)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6) 기독교 신앙은 온 천하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방식으로 생명을 얻는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어제의 묵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묵상은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이 언어의 세계에 몰두하듯이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 몰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온 천하를 얻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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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7일 ‘어록’3(1)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6) 위의 어록에는 ‘온 천하’와 ‘목숨’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대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지만 밖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세상의 생각은 온 천하를 얻는 것이 바로 목숨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온 천하를 무조건 나쁜 뜻으로만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든 성실한 노력도 모두 온 천하에 속합니다. 예컨대 슈바이처나 데레사 같은 이들의 삶도 역시 온 천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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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5일 ‘어록’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8:35)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은 자칫 기독교 신앙에서 금욕과 자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유럽의 중세기 기독교는 이런 금욕적인 정서가 팽배했습니다. 청교도, 각성신앙, 부흥운동도 크게 보면 이런 흐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속의 삶을 가능한대로 부정하고 거룩한 삶에 매진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교회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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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4일 ‘어록’2(3)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8:35) 어제의 묵상에서 성서가 말하는 생명이 단지 생물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획득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표현이 어떤 분들에게는 관념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고 하더라도 병든 몸이 건강해진다거나 수명이 길어지는 것도 아니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생명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요? 창세기가 말하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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