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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예수제거 음모 (2) file

  • 2006-11-13
  • 조회 수 1820

2006년 11월13일 예수제거 음모 (2)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막 3:6)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입니다. 그거야 어쩌겠습니까? 오늘도 어떤 사람들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상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다툴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 당당하게 처신하지 못하고 뒤에서 음모...

11월12일 예수제거 음모 (1)

  • 2006-11-12
  • 조회 수 1783

2006년 11월12일 예수제거 음모 (1)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막 3:6) 바리새인들이 헤롯당 사람들과 함께 예수를 죽일 의논을 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를 매우 심란하게 만드는군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첫째, 그들은 아무나 죽이고 싶어 하는 불한당이 아닙니다. 둘째,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 정도로 파괴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제한다면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는 성서의 진술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더구나 지금은 예수님의 공생애 ...

11월11일 바리새인과 헤롯당

  • 2006-11-11
  • 조회 수 4606

2006년 11월11일 바리새인과 헤롯당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막 3:6) 회당 안에서의 일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을 무시하고 손 마른 사람을 고쳤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이제 걸려들었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을까요, 아니면 뭐 저런 친구가 있어, 우리를 물로 보는 거야 뭐야, 하고 속상해했을까요. 그들의 속이야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회당에서 나가 헤롯당과 공모하기 시작했다고 사실이 중요합니다. 원래 ...

11월10일 손을 내밀매

  • 2006-11-10
  • 조회 수 1783

2006년 11월10일 손을 내밀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손을 내밀자 그 손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마술인가요, 기적인가요. 이 문장에 대한 역사비평은 오늘 그만 두고, 큐티 방식으로 그것의 영적인 의미를 찾아봅시다. 오늘 우리에게는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합니다. 첫째, 마른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그가 주님의 말씀에 ...

11월9일 만인구원과 선택구원

  • 2006-11-09
  • 조회 수 2678

2006년 11월9일 만인구원과 선택구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어제의 큐티에서 저는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구원의 보편성을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걱정하실 분들이 있겠군요. 제가 보기에 만인구원론과 선택구원론이 무조건 대립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성서는 이 양자를 모두 배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인...

11월8일 믿음 없는 구원? [2]

  • 2006-11-08
  • 조회 수 2200

2006년 11월8일 믿음 없는 구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손 마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과연 그에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어제 제가 말씀드린 그런 기독론적인 믿음이 있었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알았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마...

11월7일 손을 내밀라.

  • 2006-11-07
  • 조회 수 1823

2006년 11월7일 손을 내밀라.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예수님은 이제 바리새인들과의 승강이는 접어두고, 아니면 그들에게 보란 듯이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건들에는 여러 형식이 있습니다. 말씀이나 기도로, 또는 접촉을 통해서, 또는 어떤 극적인 행위를 통해서 치유하셨습니다. 어떤 형식이었든지 핵심은 예수라는 인격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11월6일 생명과 법 (3)

  • 2006-11-06
  • 조회 수 1713

2006년 11월6일 생명과 법 (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은 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종의 법실증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법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것에만 모든 것의 무게를 놓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완악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1월5일 생명과 법 (2)

  • 2006-11-05
  • 조회 수 1763

2006년 11월5일 생명과 법 (2)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어제 저는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사랑으로 신앙의 초석을 옮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진술은 많은 보충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원칙적으로 율법도 사랑을 폐기하지 아니며, 사랑의 법이라는 것도 우리의 삶에서 구체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늘 신앙의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고 구체적으로 적용시켜나가야 할 것 같...

11월4일 생명과 법 (1)

  • 2006-11-04
  • 조회 수 1888

2006년 11월4일 생명과 법 (1)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성서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사실을 탄식하셨다고 합니다. 완악하다는 이유는 손 마른 사람을 앞에 두고 예수님을 고발할 빌미를 찾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들에게는 한 사람의 운명보다는 (안식일) 법의 수호가 더 중요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완악한 마음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안식일 법을 수호...

11월3일 예수님의 화 [2]

  • 2006-11-03
  • 조회 수 2143

2006년 11월3일 예수님의 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우선 짤막한 본문 비평이 필요한 대목이군요. 우리말 성경에는 예수님이 저들의 완악한 마음을 탄식하셨다는 문장이 먼저 나온 뒤로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셨다는 문장이 뒤를 따르고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서는 그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루터번역본은 헬라어 성경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이렇게 문장의 순서가 바뀐 이유는 번역자...

11월2일 바리새인들의 침묵

  • 2006-11-02
  • 조회 수 1661

2006년 11월2일 바리새인들의 침묵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예수님의 질문 앞에서 바리새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은 잠잠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칫하면 예수님을 고발하려든 자신들의 계획에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형적인 좌고우면입니다. 그들이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이 그들의 양심을 찔렀을지도...

11월1일 옳음의 문제 (2)

  • 2006-11-01
  • 조회 수 1731

2006년 11월1일 옳음의 문제 (2)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어제 함께 나눈 루터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루터 앞에는 로마 교황청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교황청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떤 국가도, 어떤 철학도, 어떤 이념도 없었습니다. 갈릴레오도 역시 자기의 소신을 표면적으로는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

10월31일 옳음의 문제 (1) [2]

  • 2006-10-31
  • 조회 수 1812

2006년 10월31일 옳음의 문제 (1)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예수님의 질문은 군중들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무엇이 옳은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문제가 늘 선과 악으로, 생명과 죽음으로 양분되는 건 아닙니다. 이 양자가 겹치기도 하고 그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늘 선택해야 합니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를 할 때도 후보자들을 완전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

10월30일 예수님의 질문

  • 2006-10-30
  • 조회 수 1758

2006년 10월30일 예수님의 질문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당신을 고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이 바로 위의 구절입니다. 선과 악, 생명과 죽임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 소지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안식일에 악을 행하는 것이 좋다거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원래 율법의 근본은 선을 사회적으로 구체화하고 생명을 살...

10월29일 예수님의 말걸음 (3) [2]

  • 2006-10-29
  • 조회 수 1892

2006년 10월29일 예수님의 말걸음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누가 손 마른 사람을 회당으로 데리고 왔을까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싶어 하던 사람들인지, 아니면 그의 장애 치유를 진정으로 바라던 친구들인지, 또는 예수님을 소문을 듣고 무언가 기대를 한 당사자인지 성서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처한 형편만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회당의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이 손 마른 사람은 회당 분위기가 무언가 편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겁니...

10월28일 예수님의 말걸음 (2)

  • 2006-10-29
  • 조회 수 1698

2006년 10월28일 예수님의 말걸음 (2)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에게 사람들 한가운데 서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는 문제들을 공론화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설령 사람들과의 마찰이 확대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문제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고발하려는 사람들과의 마찰을 줄이면서 손 마른 사람을 도우려고 했다면 그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고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예수...

10월27일 예수님의 말걸음 (1)

  • 2006-10-27
  • 조회 수 1693

2006년 10월27일 예수님의 말걸음 (1)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지금 예수님이 처한 상황은 매우 곤란해보입니다. 한쪽에는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손 마른 사람이 거의 무기력하게 앉아있습니다. 저 같았으면 그냥 모른척하고 회당을 빠져나왔을지 모릅니다. 도와달라는 구체적인 요구가 없는 마당에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요. 손 마른 사람을 못 본척하고 그 상황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원망할 사람은 별...

10월26일 고발 [1]

  • 2006-10-26
  • 조회 수 1692

2006년 10월26일 고발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막 3:2)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은 누굴까요? 이 사건 뒤에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공모했다는 6절 말씀을 참고한다면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바리새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은 단지 노골적으로 예수님과 대립했지만, 이들은 위선적으로 대립했다고 말입니다. 어쨌든지 ...

10월25일 손 마른 사람 (3)

  • 2006-10-25
  • 조회 수 2008

2006년 10월25일 손 마른 사람 (3)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1) 손 마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으며,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은 제가 이렇게 떠들지 않아도 대개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건 정말 장광설에 불과합니다. 제 이야기를 직접 예로 드는 게 좋겠군요. 테니스 동호회에는 여러 실력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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