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험 (2), 4월26일

조회 수 5696 추천 수 70 2006.04.26 23:17:22
2006년 4월26일 예수님의 시험 (2)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제가 신학대학교 학부에 다닐 때인지, 아니면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 전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이하 ‘최후’)을 흥미진진하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저자의 <희랍인 조르바>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지만 <최후>의 내용은 큰 틀에서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면 그 책이 젊은 시절의 내 감수성을 크게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최후>의 이야기는 무장독립 운동을 하던 아들이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된 어느 유대여인네의 절규로 시작됩니다. 이 여인은 예수에게 와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네가 만든 십자가로 내 아들이 죽게 되었다. 너도 앞으로 내 아들처럼 십자가에 처형당할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 요셉의 대를 이어 목수 일을 했기 때문에 로마 관리의 명령에 따라서 반국가 사범을 처형할 십자가형틀을 만들어 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약간 조숙하거나 사색적이라는 점에서 구별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특별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유대 축제에 나갔다가 소녀들의 환심을 얻기도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특별히 예수에게 관심을 많이 보였습니다. 아마 예수도 호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소년 소녀의 낭만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청년이 된 예수는 세례 요한과 영적인 대화를 심각하게 나눕니다. 때로는 별빛을 받으면 밤새도록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이 먼저 출가하고, 뒤이어 예수도 요한을 따라 나섭니다.
복음서의 이야기 진행처럼 예수는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의 죽음 때문에 십자가형틀을 만든 목수를 저주한 유대여인의 저주대로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에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백마를 타고 베다니 마을로 가서 마리아, 마르다 자매와 결혼합니다. 그 당시에 이런 결혼제도는 크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아들과 딸을 낳고 부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어느 날 갑자기 대문이 열리면서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들어옵니다. 그들은 지난날 예수의 제자들이었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멱살을 잡고 윽박지릅니다. “당신은 배신자요. 당신이 십자가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실패했소. 책임지시오.” 다른 제자들도 예수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 의해서 땅바닥에 넘어졌습니다. 그들은 넘어진 예수에게 발길질을 했습니다. 배, 가슴, 목, 머리를 발로 밟았습니다.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면서 예수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나는 배신자가 아니야. 도망가지 않았어. 나는 비겁자가 아니란 말이야.” 이렇게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예수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숨을 몰아쉬며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여전히 십자가에 달려서 신음하는 중이었습니다.
니코스카잔치키스는 <최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 당한 유혹이 무엇일까에 대해 작가의 상상력을 빌려 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 당시 일반적인 유대 청년처럼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는 게 작가의 대답인데, 이런 작가의 추정이 사실에 가까울까요? 그런 아무도 모르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소설은 소설로 읽으면 충분합니다.
<최후>는 젊은 시절의 저에게 예수님에 관한 상을 조금씩 새롭게 교정해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근엄한 표정에서 다정한 표정으로, 전능자에서 무력한자로, 신앙의 대상에서 삶의 동료로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훨씬 리얼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일부는, 주로 한기총에 속한 분들은 이 <최후>에 손사래를 치시네요. 왜들 그렇게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해서 자신감이 없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땅의 삶에서 우리만 시험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성서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조건으로 시험받으셨다고 알려줍니다. 지금 우리가 시험받는 바로 그 순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도 똑같이 시험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용기를 냅시다.

주님,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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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8일 베드로의 항변(1)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막 8:32) 고난, 죽임, 부활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서 본질적인 것인데, 그것을 베드로가 가로막았다는 건 약간 이상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베드로처럼 우리도 항변했겠지만,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도 함께 말씀하셨다면 당연히 아멘으로 화답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뜯어말린 ...

5월17일 케리그마(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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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7일 케리그마(1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과 부활을 케리그마로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만이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공동체에 속한 우리는 이 케리그마에 매진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신앙을 관념적이라거나 실천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그건 케리그마를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해입니다. 케리그마에 천착...

5월16일 케리그마(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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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6일 케리그마(9)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예수님이 고난, 죽임, 부활을 예고하셨다는 위의 본문은 예수님의 삶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완성된 초기 기독교의 신앙적 명제입니다. 이 명제에 기독교 신앙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확대하면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도 역시 케리그마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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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5일 케리그마(8)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사흘 후의 부활’이 후대의 삽입이라는 사실관계가 정말 옳은가, 하는 문제를 여기서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겠군요. 신학적으로 까다롭기도 하고, 이런 짧은 묵상의 글로 담기도 힘드니까요.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의 뒷부분으로 넘어가면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겠지만, 그것이 어떤 실증적인 사실보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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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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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4일 케리그마(7)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케리그마의 세 번째 항목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아마 이 대목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 겁니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면 아래와 같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믿음이 너무 좋거나, 아니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성서에서 어떤 내용을 만나도 아무런 갈등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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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3일 케리그마(6)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예수님이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배척받았다기보다는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이라는 어제의 묵상 내용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군요. 자칫하면 복음서의 기존 흐름을 깨뜨리는 것 같아 보이니까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객관적인 역사가의 눈으로 예수 사건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역사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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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2일 케리그마(5)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케리그마의 둘째 항목은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고난과의 연장선에 놓여 있긴 하지만, 고난의 궁극이라는 점에서 구별해야 합니다. 본 구절에는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및 서기관들에게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진술되어 있습니다.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그 당시 유대교의 고위 성직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자들입니다. 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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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1일 케리그마(4)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예수님의 고난, 또는 수난이 말하려는 핵심을 이해하려면 우선 인간의 삶과 고난의 문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실존이 가장 명백하게 확인되는 순간이 바로 고난입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인류 역사는 바로 그것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서 제외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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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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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0일 케리그마(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겠지요. 멜 깁슨이 제작자 겸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신학자 존 파이퍼는 이 영화가 예수님의 고난을 훌륭하게 묘사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왜 예수가 그렇게까지 고난을 당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되기 전인 2004년 초에 이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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