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3)

조회 수 1508 추천 수 0 2019.09.05 20:13:32

13-12 하나님 찬송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배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이제 본문은 하나님께 찬송을 돌린다. 그 하나님은 단순히 일반적인 의미의 신이나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이런 표현이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예수와의 관계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구약이 말하는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본질을 정확하게 붙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그 본질에 근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확장했다. 예수가 구약의 하나님 이야기를 문자의 차원에만 머물렀다면 유대교 당국자들과 대립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가지만 예를 들겠다.

하나는 안식일 논쟁이다. 안식일 논쟁에 관해서는 복음서 기자들이 예상외로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13:10-17절에는 예수가 안식일에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던 여자를 고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어서 눅 14:1-절에도 수종병, 즉 배에 물이 차서 몸이 붓는 병에 걸린 사람을 예수가 안식일에 고친 이야기가 나온다. 앞의 이야기만 보자. 엿새가 있으니 굳이 안식일에 치료행위를 하지 말라는 회당장의 주장은 합리적이다. 예수는 회당장의 논리를 위선이라고 책망했다. 2:27절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유명한 경구가 나온다. 안식일 논쟁은 단지 안식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신앙의 문제다. 하나님 신앙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안식일에 대한 예수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기보다는 긍휼을 더 귀하게 여기는 존재다. 여기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냐, 하는 문제 제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수는 이런 문제로 회당과 싸우다가 배척당했다. 마지막은 십자가 죽음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으면 죽음은 면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 호칭이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하는 구절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다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유대인들의 하나님 표상에 근거해서 볼 때 그렇게 보는 게 옳다. “너는 내 아들이라.”라는 표현은 시 2:7절에 나온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구절에 근거하여 마가복음은 예수가 세례받을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보도한다. 아들이라는 표현에서 아버지 호칭도 나올 수 있긴 하다. 그렇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버지라 부르기에는 너무 존엄하기 때문이다. 예수도 하나님을 존엄한 존재로 당연히 알았다. 그러나 예수에게 더 중요한 하나님 이미지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에 가장 적합한 호칭은 아버지다. 아버지 호칭의 핵심은 보호자 이미지다. 물론 보호자 이미지는 구약성경에도 많이 나온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이런 하나님 이미지보다는 율법을 지켰는지의 관점에서 자기 백성들을 판단하는 엄격한 심판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예수는 아빠 아버지라는 호칭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원래의 하나님 이미지를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아버지 이미지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예수의 비유는 소위 탕자의 비유’(15:11-32). 큰아들은 재산을 낭비하고 돌아온 동생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잔치를 베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겠지만 현실에서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어도 여전히 고난과 시련은 그치지 않기도 하고, 막연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레벨:23]브니엘남

2019.09.29 09:32:17

구약에 아들이라는 구절

렘 31:9, 말 2;10, 신 32:6, 사 63:16, 64:8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9.09.29 21:07:06

앗, 그렇군요. 아버지 표상이 예상 외로 구약에 나오는군요.

참고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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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8: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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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9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요한이 볼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국의 멸망 원인은 음행(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피조물의 절대화입니다. 이는 곧 부의 절대화입니다. 일종의 물질 숭배입니다. 3절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치부하려면 우리나라의 재벌처럼 주변의 작은 세력을 강력하게 지배해야 합니다. 로마는 ‘모든 길은...

계 18: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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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8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천사는 “무너졌도다.”를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바벨론은 큰 성입니다. 큰 성은 웬만해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여기 무제한급 격투기 챔피언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웬만해서는 패배를 모릅니다. 기고만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간 방심하는 사이에 그는 싸움에서 질 수 있습니다. 방...

계 18: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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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7:1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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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6 17: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이제 17장 마지막 절입니다. 요한이 반복해서 음녀라고 호칭한 ‘그 여자’는 로마 제국과 그 황제를 상징합니다. 18절에서는 ‘큰 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이 글을 쓸 당시의 로마는 한창 잘나갔습니다. 천하무적 거칠 게 없었습니다. 요즘의 미국보다 더 강력하면 강력했지 못하지 않았습니다. 지리적으로 북아프리카, 유대, 소아시아, 그리스, 마게도냐, 그리고 서쪽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라인강 서쪽 지역과 바다 건...

계 17:1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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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5 17: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17절은 악한 세력들의 자중지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16절의 부연 설명입니다. 이런 말씀을 단순히 종교적 수사로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역사는 사람들이 계획하고 계산하는 방식으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제국은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무너...

계 17:1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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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4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6절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로마 황제와 그 동조자들 사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악한 세력들의 결속은 언젠가는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익 집단이기에 그들이 하나로 묶여 있으려면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어디 그렇게 되나요? 이익이 한쪽으로 치...

계 17:15 [1]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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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3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요한은 천사의 말을 이어서 듣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천사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와 비슷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 제우스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는 역할은 올림포스 12신 중의 한 신인 헤르메스가 맡았습니다. 헤르메스라는 이름에서 해석학을 가리키는 hermeneutics가 유래했습니다. 제우스의 뜻을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하는 건 일종의 mission impossible입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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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2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요한은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진 자들의 연합체라 할 짐승이 ‘어린 양’과 싸울 것이라는 말을 천사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짐승과 어린 양의 싸움은 아예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짐승은 프로 격투사 골리앗이라고 한다면 어린 양은 목동 다윗입니다. 짐승은 상대를 파멸시키는 일에 특화된 존재...

계 17:13 [2]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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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1 17: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환생한 네로의(도미티아누스로 추정됨) 동조자들은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보탭니다. 악한 세력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지요. 조폭들이 서로 어울려서만 악행을 저지르는 거와 같습니다. 수행자들은 홀로 자신의 길을 넉넉히 가지만, 아니 홀로 있는 걸 더 좋아하지만,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작당을 통해서만 뭔가를 시도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니까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영...

계 17:12 [1]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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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90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여기서 다시 열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환생한 네로의 동조자들을 가리킵니다. 조폭 집단처럼 악한 일을 행하는 독재자 근처에는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독재자의 힘에 빌붙어서 나름 이득을 얻어보려는 속셈이겠지요.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들이 아무리 강력한 권세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한동안’일 뿐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한동안이...

계 17:11 [1]

  •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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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9 17:11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성서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여덟째 왕은 이전 일곱 왕보다 더 잔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왕입니다. 그는 앞에서 반복해서 짚었듯이 네로의 환생이라 부를만한 왕입니다. 로마의 모든 황제가 무지막지하게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로마 제국은 나름 합리적인 체제였습니다. 제국의 질서를 무너뜨릴 정도로 과격하지만 않다면 웬만한 종교 문제나 민족 전통에...

계 17:10 [1]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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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8 17: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요한계시록에는 묵시적 상징이 수없이 등장하기에 초현실주의 그림이나 시나 음악처럼 아주 전문적인 소양이 없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전문 신학자라고 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전체적인 구도만 생각하면서 읽으면 충분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도는 네로 황제부터 도미티아누스 황제까지, 그러니까 기원...

계 17:9 [1]

  •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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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7 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다.’(And here is the mind which hath wisdom.)라는 표현은 일종의 관용어로 보입니다. 문장 자체는 깔끔하지 못합니다. <새번역>은 “여기에 지혜를 가진 마음이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뜻이나 마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νοῦς(누스)이고, 지혜는 σοφία(소피아)입니다. 누스는 mind, thought, reason, attitude, intention, purpose 등등의 뜻이 있습니다. 너무 놀라지 말고, 허둥대지 ...

계 17:8 [1]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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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6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요한은 네로 황제의 환생이라고 말하기에 딱 좋은 왕의 위험성을 무시무시한 단어로 묘사했습니다. 그 짐승은 이전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무저갱’에서 올라와서 멸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무저갱(無底坑)은 밑바닥이 없을 정...

계 17:7 [1]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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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5 17: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천사가 다시 요한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어 ‘앙겔로스’(ἄγγελος)는 영어 angel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앙겔로스를 일반적으로 ‘천사’로 번역하는데, 하나님이나 주라는 표현이 따라올 때는 ‘사자(使者)’로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 탄생 전승을 다루는 마태복음 1:20절에 나오는 앙겔로스는 ‘주의 사자’(ἄγγελος Κυρίου)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직면하기...

계 17:6 [4]

  • 2023-11-30
  • 조회 수 32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4 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이 대목에서 반복되는 ‘여자’는 일종의 국가주의를 가리키는 메타포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로마 제국주의를 가리킵니다. 요한에 따르면 로마 제국은 바벨론 제국과 일란성 쌍둥이 같은 존재입니다. 바벨론은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켰고, 로마는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을 다시 파멸했습니다. 70년 사건이 더 심각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

계 17:5 [1]

  • 2023-11-29
  • 조회 수 22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3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이마에 적힌 이름’은 13:1절과 16절에도 나옵니다. “ …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13:1), “ …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13:16) 이름이나 표는 로마 제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여자는 ‘큰 바벨론’이고,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이런 표현도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온갖 ...

계 17:4 [1]

  • 2023-11-28
  • 조회 수 22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2 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반복해서 나오는 ‘음녀’나 ‘여자’는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신성을 모독하는 로마 제국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 메타포입니다. 이 여자의 복장은 가장 화려한 색깔과 장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자주와 붉은 색깔 옷, 금과 보석과 진주로 몸을 꾸미고 손에 금잔을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사치스러운 모습입니다. ...

계 17:3 [1]

  •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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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81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을 광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큰 음녀’로 불린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붉은빛이 나는 짐승을 타고 있었다네요. 요한은 지금 실제로 붉은 말을 탄 장군이나 황제를 상상하는 걸까요?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이름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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