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4월5일

조회 수 1788 추천 수 0 2020.04.05 19:55:5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45, 사순절 여섯째 (종려) 주일

 

1) 주의 손- 지난 주일의 설교에 이어서 오늘 설교의 주제도 주의 손이었습니다. 주의 손은 주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앞날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강력한 발언입니다. 우리말 성경이 나의 앞날이라고 번역한 단어를 영어와 독일어 성경은 나의 시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비슷한 뜻이긴 하지만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My times are in thy hand.” 이 문장이 가리키는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재난과 불행 앞에서도 겁먹지 않을 겁니다. 그런 믿음이 더 성숙해지면 죽음까지 넘어설 수 있겠지요. 매월 첫 주일에는 원래 어린이 설교를 했는데, 벌써 두 달째 어린이 설교를 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오늘 설교가 좀 길었습니다. 설교자가 자기 생각에 도취하면 길어집니다.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눈치챈 분들이 있겠지만, 오늘 오랜만에 시편을 설교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오랫동안 첫째말씀, 둘째말씀, 셋째말씀에 해당하는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앞으로 일 년에 두세 번이라도 시편을 본문으로 설교하겠습니다.

 

2) 공동예배서- 예배 시작 전에 처음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석한 분들을 위해서 예배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핵심적으로 대구 샘터교회의 예배는 미국연합장로교회에서 나온 공동예배서(Book of Common Worship, 1993/ 번역판은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년 발행)가 제시한 예배 순서와 내용을 토대로 합니다. 예전이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오늘 예배를 설명하게 된 이유는 김*혜 청년이 토요일 저에게 보낸 문자 때문입니다. 김 선생은 혼자 우리 교회에 나오고, 부모님과 동생은 다른 교회에 나갑니다. 처음으로 가족이 함께 집에서 온라인으로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자신이 처음 대구 샘터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의 그 낯선 경험이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다른 교우들에게도 참고가 될까 해서 공동예배서를 이 자리에서 다시 소개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라고 한다면 이런 형식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학대학원 예배학 교수들은 한결같이 예전예배를 드리라고 강의하는데도 한국교회는 용기가 없어서, 또는 신학적인 마인드가 없어서 약식 예배 방식을 따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유튜브로 방송 예고가 어긋났습니다. *희 집사가 요즘 수고가 많습니다. 이쪽의 전문가가 아니니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다니면서 우리 교회 실정에 가장 어울리는 기술을 접목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유튜브가 안 되고 아프리카TV로만 나갔습니다. 오는 주일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송이 나갈 겁니다. 아프리카TV와 유튜브만이 아니라 교회 밴드에도 링크가 된다고 합니다. 기대하십시오. 만에 하나 다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한쪽이 안 되면 다른 쪽으로 옮겨보세요. 오는 주일에는 좀 일찍 라이브 방송을 열기로 했습니다.

 

3) 고난주간 성경 읽기-주보에 나온 내용입니다. 다음 한 주간은 고난주간, 또는 성주간(Holy Week)이라고 합니다. 아래 도표의 순서에 따라서 성경 본문을 매일 읽기 바랍니다. 그 내용은 세계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lectionary)입니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실 터이니 이번 고난주간을 말씀과 함께 보내보십시오.

(요일)

첫째 말씀

시편

둘째말씀

셋째말씀

6()

42:1-9

36:5-11

9:11-15

12:1-11

7()

49:1-7

71:1-14

고전 1:18-31

12:20-36

8()

50:4-9(a)

70

12:1-3

13:21-32

9()

12:1-4, 11-14

:116:1-2, 12-19

고전 11:23-26

13:1-17, 31(b)-35

10()

52:13-53:12

22

10:16-25

18:1-19:42

11()

14:1-14

31:1-4, 15-16

벧전 4:1-8

27:57-66

 

4) 코로나19 전쟁- 온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 지역에는 안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네팔이나 티베트 등의 오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겠지요. 미국은 유달리 힘든 상황입니다. 뉴욕이 주로 그렇다지요. 트럼프는 이를 전쟁으로 비유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거나 어떻게 종료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의 상황이 1-2년 지속한다면 기존의 모든 체제가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될 겁니다. 백신이 빨리 개발되면 좋겠으나 정해진 건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이름이 붙은 이 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더 거쳐서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지구와 인류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5백 년 후의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기억하면서 당시에 인류의 반이 죽었답니다.”라고 회고하게 될까요? 지구에 수많은 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사라지지 말라는 보장 역시 없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별로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벌어진 이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어떤 교회 형태를 갖춰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습니다. 그 대답은 성경을 새롭게 읽는 데서 시작하겠지요. 하여튼 이번 코로나19가 일단은 빨리 진정되었으면 합니다.

 

5) 3월 재정보고- 주보에 나온 내용을 다시 싣습니다. 아래 재정보고(보고자: 재정부장부장 김*근 집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통장 이체 방식인데도 다른 달보다 헌금 액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습니다. 다섯 주일의 합계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하나로 모인 것 같습니다. 재정부장의 말을 들으니 우리 교인이 아닌 네 분이 3월 한 달간 1,210,000원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저도 한분을 제외하고는 다 모르는 분들인데,작은교회를 염려해주시는 마음, 고맙습니다.

수 입

지 출

헌금

1

2,500,000

예배부

50,000

주보

2

1,820,000

교육문화부

0

 

3

1,130,000

봉사 경조부

18,000

생수

4

1,690,000

나눔선교부

1,650,000

정기후원

5

2,520,000

어린이청소년부

 

 

소 계

9,660,000

사무관리부

2,136,718

예배처소 임차료, 목활비, 카니발 보험 외

기타

예금이자

0

재정부

3,205,700

목사 사례비(22십만), 퇴직적립, 일반적립 외

합 계

9,660,000

합계

7,060,418

3월 잔액 (2,599,582)

이월

6,618,403

차기이월

9,217,985

총계

16,278,403

총계

16,278,403

 

6) 집단 영성- 대구 샘터교회는 지금 실험적인 제도를 도입해서 실행 중입니다.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없습니다. 운영위원회가 당회 역할을 합니다.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운영위원들은 모두 일반 신자들입니다. 남녀 균형을 맞추고, 나이도 노소의 균형을 맞춰서 선택합니다. 운영위원장 역시 2019년부터 목사가 아니라 일반 신자가 맡습니다. 전체적으로 평신도교회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이런 제도가 흔들리지 않고 탄력을 받으려면 집단 영성이 필요합니다. 사회에서도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이요. 개인은 장단점이 있어서 실수하게 마련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놓고 보면 단점이 줄어들고 장점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집단 영성이 잘 발휘되면 대구 샘터교회가 단단해지겠지만, 그게 부족하면 단점이 더 두드러질 겁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용감하게 이 길을 가봅시다. 성령에 의지해서!

 

7) 그리움- 오늘로 온라인만의 예배가 일곱 번째로 드려졌습니다. 거의 두 달이 돼가는군요. 일주일에 한 번 같은 공간에 모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되니 뭔가 허전할 겁니다. 일종의 그리움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우신가요? 모든 것이겠지요. 주보를 손에 들었던 순간이 그리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우의 따뜻한 미소나 인사, 각각의 목소리, 식사 찬송과 먹을거리, 청소와 성가 연습, 1층 카페에서의 담소 등등, 이루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설교를 온라인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싶은 그리움도 거기에 포함되겠지요. 환풍기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아 집사의 붓글씨 족자도 두 군데에 잘 걸려있습니다. 게시판에 붙은 안내 쪽지도 여전합니다. 거울도 안녕하고, 엠프와 디지털 피아노도 잘 지냅니다. 생수는 오래 쓰지 않아서 심심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보고 싶으신가요? 그리움이 해소될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결정적인 순간도 올 거고요.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을 비롯하여 모든 인생살이는 그리움으로 남는 게 아닐는지요.

 

8) 주보 표지- 주보 표지 사진을 여기 다시 올립니다. 일전에 카니발 뒷문이 열리지 않아 차량 서비스 센터에 가서 차를 맡기고 바로 옆에 있는 북안 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잠시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벚나무를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눈부실 정도로 꽃이 만발한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꽃 같은 아이들이 없으니 꽃도 슬퍼 보이는군요.

     북안초.jpg

 

9) 헌금: 1,270,000(통장 입금 45일 낮 130분 기준)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레벨:29]모모

2020.04.06 00:28:47

라이* 방송을 조금 일찍 열고 조금 늦게 닫았으면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4.06 21:15:13

모모 님, 좋은 의견을 주셨네요. 

시작 전 10분, 끝나고 5분은 여유를 두겠습니다.

[레벨:17]시골뜨기

2020.04.06 16:18:31

정말 함께 모여 서로 얼굴들을 보면서 예배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상희 집사님이 수고가 많으시군요!

유투브로 방송이 안 나오기에 내 컴퓨터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4.06 21:18:08

ㅎㅎ 글쎄 말입니다. 

이 집사가 집에서 잘 됐는데 교회 폰으로 하니 안 된다면서 

애를 태우다가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아마 다음 주일에는 최적의 상태로 방송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profile

[레벨:13]뚜벅이

2020.04.07 17:20:34

꼼꼼한 주간일지 감사합니다.

집단영성과 그리움에서 눈물이 나네요.

봄탓을 해보며 이전같은 일상이 와도 

이전과 같지는 않을거라 생각하며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4.07 21:33:57

ㅎㅎ 봄에는 꽃이 많아 눈물도 흔하고 알러지도 흔합니다.

그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멋진 봄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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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4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요한은 신비한 광경을 다시 봅니다. 하늘에서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광경입니다. KJV이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e temple of 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 in heaven was opened.” 이미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여기 15:5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

계 15:4 [2]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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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3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로마 황제숭배를 거절한 (순교 당한) 무리가 부르는 찬양이 4절에도 이어집니다. 여기서 저는 두 문장만 짚겠습니다. 하나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다.’라는 문장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여러 번 나온 문장입니다. 구약성경에도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 경험은 곧 거룩함에 대한 경험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세...

계 15:3 [1]

  • 2023-10-16
  • 조회 수 33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2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3절에서 명시적으로 ‘모세의 노래’가 언급됩니다. 짐승에게 엎드리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래가 곧 홍해를 건넌 뒤에 부르는 모세의 노래와 같습니다. 홍해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노래’라고 다시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뒤에서는 애굽 기마병이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

계 15:2 [1]

  • 2023-10-13
  • 조회 수 35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1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홍해를 암시, 또는 상징합니다. 모세를 중심으로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애굽의 막강한 기마병들이 쫓아오는 가운데 남녀노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다는 건 ‘미션 임파시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셨다고 그들은 믿었고, 그렇게 고...

계 15: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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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0 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라 이제 요한계시록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합니다. 15-18장은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과 바벨론의 멸망’을 다룹니다. 참고로, 마지막 단락인 19-22장은 ‘어린양 혼인 잔치와 새 창조’를 주제로 합니다. 이렇게 분량이 많기도 하고 묵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글을 기록한 요한은 위대한 문필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 덕분에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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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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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49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포도주 틀에서 흘러나온 피가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는 표현은 실감 나지 않습니다. 성서주석에 따르면 1스다디온은 192m이고, 천육백은 세상을 지칭하는 상징 숫자인 넷의 배수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넷은 동서남북에서 온 거겠지요. 192m 곱하기 1천6백이면 307,200m입니다. 대략 307km입니다.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호수까지가 123km이니까, 왕복 거리도 더 되...

계 14:19 [1]

  •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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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48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천사는 낫으로 포도를 거둬서 ‘포도주 틀’에 던졌다고 합니다. 포도주 틀은 하나님의 진노를, 즉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나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과 대립하는 것같이 들립니다. 아닙니다. 심판도 하나님의 사랑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증오나 적개심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

계 14:18 [1]

  • 202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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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47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불을 다스리는 천사’라는 표상은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에도 자주 나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인간에게서 빼앗아간 불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었다가 저주를 받아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중에 독수리를 죽인 헤라클레스에 의해서 구출되었다고 합니...

계 14:17 [1]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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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46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무수한 천사가 등장합니다. 천사는 물론 메타포입니다. 영화에는 천사가 사람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제가 본 영화로는 <시티 오브 엔젤>이 유명합니다. 사람과 천사의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분한 천사 세스입니다. 그는 사람 여자 외과 의사 메기(맥 라이언)를 사랑합니다. 세스는 메기와 부부가 되기 위해서 천사의 지위를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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