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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1월29일 게네사렛 땅에서 [1]

  • 2007-11-28
  • 조회 수 3065

2007년 11월29일 게네사렛 땅에서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막 6:53,54) 풍랑으로 고생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풍랑이 그친 뒤 게네사렛 호수 서안의 게네사렛 지역에 배를 대고 배에서 내렸습니다. 팔레스틴의 북쪽 지역을 크게 갈릴리라고 하는데, 오른편에 큼지막한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를 갈릴리 호수, 또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합니다. 그 호수가 없었다면 팔레스틴 문명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게네사렛 호수에서 발원해서 남쪽 사해에 이르는 강을 요단강이라고 합...

11월28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7)

  • 2007-11-27
  • 조회 수 1456

2007년 11월28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7)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에 나온 ‘구원의 현실’이라는 말을 보충해서 설명해야겠군요. 구원이면 구원이지 구원의 현실이 뭐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구원의 문제를 더 엄밀하게 규정하려면 이런 언어 조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현실(reality of God)이라는 말도 역시 똑같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분하기는 하지만 그 하나님을 더 엄밀하게 규정하기 위해서 하...

11월27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6) [2]

  • 2007-11-26
  • 조회 수 1959

2007년 11월27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6)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는 마가복음 기자의 진술은 아마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일어난 신앙적 위기를 내포하는 게 아닐는지요. 2천 년 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도행전만 보면 복음이 일사천리로 전파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교회가 계속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

11월26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5) [3]

  • 2007-11-25
  • 조회 수 1680

2007년 11월26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5)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우리는 어떻게 자기염려, 자기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의 경직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는 사실 기독교보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더 세밀합니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거든요. 그들에게 집착을 없애는 것, 즉 멸집(滅執)이 가장 핵심적인 공부입니다. 멸집에 이르는 깨우침을 돈오(頓悟)라고 하는데,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멸도(滅道: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수행)를 행합니...

11월25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4)

  • 2007-11-24
  • 조회 수 2011

2007년 11월25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4)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여러분들은 어떤 순간에 마음이 둔해지시나요? 제 경우를 말한다면 나 자신에게 집착하는 순간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하지 않는다면 집착할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을 염려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둔해지면서 글쓰기나 설교 중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집니다. 나에 대한 염려가 결국은 나를 파괴하는 지름길인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

11월24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3) [4]

  • 2007-11-23
  • 조회 수 1665

2007년 11월24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3)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성서해석이 하나님 경험에 이르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게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길의 하나라는 말은 곧 언어가 담지하고 있는 존재론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서라는 언어의 세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사실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결코 완벽한 해석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할 ...

11월23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2) [2]

  • 2007-11-22
  • 조회 수 1526

2007년 11월23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진 이유는 오병이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의 표징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온갖 걱정거리로 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둔해진 마음은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시나브로 악순...

11월22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1) [4]

  • 2007-11-21
  • 조회 수 2451

2007년 11월22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1)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예수님이 물위를 걸은 이 사건 앞에서 보인 제자들이 모습에 대해서 마가복음 기자는 비판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앞서 일어났던 오병이어 사건에 나타난 예수님의 메시아적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고, 결국 마음이 둔해진 것이라도 말입니다. 이런 보도를 읽는 오늘 우리는 제자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오병이어를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호수에서의 사건을 ...

11월21일 바람이 그치다.(4) [6]

  • 2007-11-20
  • 조회 수 1731

2007년 11월21일 바람이 그치다.(4)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바람인지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살이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가리킬까요? 물론 그런 것들은 평범한 우리가 감당하기가 어려운 짐들입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그런 구체적인 어려움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

11월20일 바람이 그치다.(3) [3]

  • 2007-11-19
  • 조회 수 1865

2007년 11월20일 바람이 그치다.(3)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오늘 우리는 바람이 그쳤다는 이 진술의 신앙적 의미를 짚으려고 합니다. 일종의 적용입니다. 성서읽기에서 적용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대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한 두 마디를 해도 좋겠지요. 묵상에서 삶의 현실들을 찾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가 봅시다. 호수 위에서 바람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와 꼭 닮은 것 같습니다. 호수 건너편으...

11월19일 바람이 그치다.(2) [2]

  • 2007-11-18
  • 조회 수 1826

2007년 11월19일 바람이 그치다.(2)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어제 묵상에서 저는 제자들의 기억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진리가 드러나는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억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완전히 망각했다고 생각되는 것도 우연하게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경험은 자주 일어납니다. 커피를 마시다가 실수로 커피 잔을 놓쳐 깨뜨리는 순간에 완전히 잊고 있던 십년 전의 어떤 사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11월18일 바람이 그치다.(1) [1]

  • 2007-11-17
  • 조회 수 1870

2007년 11월18일 바람이 그치다.(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복음서 기자는 이 대목에서 제자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49절에서 예수님을 유령인가 해서 소리를 지른 적이 있고, 50절에서 그 예수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복음서 기자가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놀람의 문제는 며칠 전의 묵상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상황은...

11월17일 두려워 말라.(2) [8]

  • 2007-11-16
  • 조회 수 1592

2007년 11월17일 두려워 말라.(2)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이 있습니다. 작게는 일신에 관한 두려움입니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을까, 사업이 망하지 않을까, 또는 자식이 공부를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조금 더 심각하게는 삶의 허무로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취로 우리의 삶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11월16일 두려워 말라.(1) [2]

  • 2007-11-15
  • 조회 수 1655

2007년 11월16일 두려워 말라.(1)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본문 50절을 자세하게 보세요.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험에 관한 성서의 묘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구조입니다. 아직 동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놀랐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

11월15일 놀라는 제자들

  • 2007-11-14
  • 조회 수 1387

2007년 11월15일 놀라는 제자들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기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앞 절에 묘사된 유령 운운도 역시 이 놀라움에 대한 서술입니다. 놀라움은 바로 하나님 경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

11월14일 유령인가?(3) [3]

  • 2007-11-13
  • 조회 수 1667

2007년 11월14일 유령인가?(3)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성서 텍스트는 해석되어야 한다는 저의 주장이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겠군요. 모든 게 해석되어야 한다면 결국 성서의 중심까지 해체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그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의 신화적 요소를 무조건 제거하자는 게 아니라, 즉 불트만 식으로 탈(脫)신화화하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담아내려는 구원의 현실들을 바르게 찾자는 말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에 관한 많은 경...

11월13일 유령인가?(2) [2]

  • 2007-11-12
  • 조회 수 1776

2007년 11월13일 유령인가?(2)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어제의 묵상에서 저는 성서의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호수 위에서 새벽 네 시에 바람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물위를 저벅저벅 걸은 것인지 아니면 해변을 걸은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텍스트는 물론 물위를 걸어서 오셨다고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추해석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성...

11월12일 유령인가?(1) [3]

  • 2007-11-11
  • 조회 수 1677

2007년 11월12일 유령인가?(1)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게 분명한 사실처럼 보입니다. 저는 사람이 물위를 걸을 수 없다는 일반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물위를 걸은 게 아닐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가능한대로 성서 기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뿐입니다. 다시 마음을 열고 이렇게 질문해야겠군요. 성서...

11월11일 물 위를 걷다.(3) [2]

  • 2007-11-10
  • 조회 수 1647

2007년 11월11일 물 위를 걷다.(3)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 6:48) 제자들의 예수님 경험은 예수님의 공생애와 그 이후에 따라서 약간씩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그것을 주도면밀하게 구분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관점이 복음서에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즉 하나님으로 고양되기 전과 후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

11월10일 물 위를 걷다.(2) [2]

  • 2007-11-10
  • 조회 수 1686

2007년 11월10일 물 위를 걷다.(2)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 6:48) 어제 저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보도에 관한 하나의 해석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물위를 걸은 게 아니라 해변을 걸으신 것인데, 경황이 없었던 제자들이 물위를 걸으신 것으로 착각한 것인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런 해석에 강하게 반발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인간의 합리적 인식 안으로 끌어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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