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43) 11: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나사로는 잠들었다.”라는 예수의 말을 제자들은 실제로 잠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똑같은 말이라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거꾸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준다. “나사로는 죽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언젠가 정용섭은 죽었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게 될 것이다. 죽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노환, 질병, 사고 등으로 죽는다. 똑같은 장소에 있다가도 한 사람은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죽는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선 일행 중에서 한발 앞서가던 이들은 눈사태에 휩쓸리고 바로 뒤따르던 이들은 피할 수 있었다. 죽음과 삶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린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바울은 죽음을 잠이라는 메타포로 묘사한 적이 있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죽어도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이다. 잠은 표면적으로는 죽음이지만 생명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기에 죽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죽음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우리가 현상적으로만 조금 알 뿐이지 총체적으로는 모른다. 죽음을 통과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터널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는 사람은 터널의 끝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거와 같다. 잠이라는 바울의 메타포를 따르면 죽음은 부활 생명으로 발현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무는 상태다. 일종의 씨앗과 같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활동이 없으니 생명 현상을 확인할 길 없으나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꽃이라는 생명으로 발현되는 씨앗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가볍게 여기면 곤란하다. 죽음의 전율이 없으면 부활의 희망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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