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34) 3:10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는 예수에게 성령으로 거듭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다시 질문한다. 니고데모가 실제로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개념에 대한 설명을 더 정확하게 듣고 싶어서 일부러 질문한 것인지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대충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지만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지식인답게 대화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뒤편으로 가면 니고데모가 몇 번 더 등장한다.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반문한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나쁜 뜻으로 지적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후로 예수는 더 긴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리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제자를 둔 스승으로서의 기쁨이 이 지적에 들어 있다. 제자는 알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스승은 제자가 앎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는다. 이런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는지.

앎은 신비로운 사건이다.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되어 작동됨으로써 앎이 발생한다. 여기에는 고도의 정신적인 학문만 아니라 육체적인 분야도 포함된다. 나는 거의 평생 테니스를 했다. 이는 곧 평생 테니스를 배웠다는 것이다. 아직도 테니스를 배운다. 배우는 것 포기하면 테니스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테니스에서 내가 평생에 걸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볼을 끝까지 보는 것과 몸에 힘을 빼는 것이다. 이게 잘 안 된다. 테니스를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볼을 보자.’거나 힘을 빼자.’라고 말하는데도 어느 순간에 눈이 다른 곳을 향하고, 몸에 힘이 들어간다. 이럴 때 나보다 실력이 좋은 회원이 그걸 지적해주면 훨씬 좋아진다. 앎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향한 앎은 모든 앎의 정점이다. 우리 생명의 궁극적인 의미와 현실에 해당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에 대한 앎이 깊어지지 않으면 생명을 잃는 것과 같다. 여기서 관건은 니고데모와 같이 질문하는 태도와 예수 같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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