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34)- 교황제도

조회 수 3829 추천 수 1 2010.06.12 22:47:14

 

교황제도는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일치의 역할을 하려면 교회제도는 권위주의적 구조, 또는 전통의 동일성에 대한 보증, 또는 독단적 사법 권위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많은 이들도 교황제도가 기독교 일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회제도의 역할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교황제도의 권위주의적 구조를 변혁해내는 시도가 비록 예비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위한 것이라면 개신교회도 교황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조건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에 의해서 밝혀진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숙이라는 보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 나라, 140 쪽)

 

     개신교 신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해서 복잡한 심사를 보이고 있소. 가장 극단적인 이들은 가톨릭을 이단으로 보기도 하오. 그렇게 보는 분들은 기독교 역사를 잘 모르거나 개신교 패권주의에 심정적으로 물들어 있는 거요. 가톨릭을 이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소. 이들도 기독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오. 가톨릭은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개신교회의 뿌리요.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는 격이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형제로 생각해야 하오.

     혹시 그대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구려. 물론 우리 개신교회의 입장에서는 중세기에 비해서 많이 달라지긴 했다고 해도 교황제도를 지지할 수는 없소. 이것만은 기억해 두시오. 교황제도가 교황을 신성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오. 교황의 칙령을 성서 못지않게 중요한 문서로 간주하는 것은 그들의 질서에 속한 문제요. 교황이 혼자서 마음대로 칙령을 만들지는 못하오. 로마가톨릭교회 전체의 생각이 담기는 것이오. 사실은 신약성서도 교회의 생각을 담은 문서라오. 성서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라 교회가 먼저 있었소. 그런 점에서 교회의 결정을 중요하오.

     판넨베르크는 교황제도를 권위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교회 일치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소. 가톨릭교회도 교황제도가 교회일치를 위한 역할을 감당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소. 그것이 당장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오. 어쨌든지 가톨릭의 제도를 인정할 필요는 있소. 무조건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 아니오. 판넨베르크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숙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오. (2010년 6월12일, 토요일, 그리스와의 축구에서 2대0으로 승리한 날, 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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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잎새의 꿈

2010.06.13 02:05:26

2:1이 아니라, 2: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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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0.06.13 02:34:11

컥....어떻게 2:1 이라고 하셨는지요..

그렇다면 목사님의 일기후보도 좀 미심쩍어지는군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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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0.06.13 07:38:07

앗, 해괴한 일이군요.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로군.

당장 고칩니다.

[레벨:4]청신호

2010.06.13 15:28:23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면 저는 천주교회에 대해서 '복잡한 심사' 를 가진 것으로 보이고 있는 쪽이고  목사님은 '다정한 심사'를 보이고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극단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목사님께서 [천주교를 원칙적으로 따져 개신교회의 뿌리요.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는 격이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형제로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폐일언하고) 그런 만고의 갈등을 넘어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진리적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화를 이룰 수 없어서 마침내 천주교의 뿌리됨를 부정하고 한 공동체와 형제로 생각할 수 없기에 목숨을 걸고? 나왔는데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천주교회를 보고 그 개신교 후예들에게  형제라고 생각하라는 것은 되레 개신교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역사적 뿌리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도 역시 역사적 뿌리만 본다면야 유대교에 닿아 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존재론적으로 유대교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는 없잖습니까?

치열했던 중세시대에 개혁자들에게 일말의  형제 인식이 있었더라면 애시당초 종교개혁이라는게 가능했겠습니까?  그저 그 안에서 종교 갱신만 있을 뿐이었겠ㅈ요. 

 

오늘날의 우후죽순같은 개신교의 난립상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형제라고하는 것은 일치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소탐대실의 길이 아닌가요?  

이점에 대해서 제가 이해의 폭이 밴댕이 인지  목사님이 통합적 경지에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교황을 신성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오]라고도 하셨는데

물론 교황 일개 개인이 단독으로 칙서를 연구해서 발표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일단의 대표단의 결정이겠지만 일단교황의 이름으로 발표되면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져 그 말의 반대는 하나님 반대로 여기고 개인의 양심을 거스려 핍박한 일들은  역사에서 무척 많았는데 어떻게 신성시 하지 않는다고 하는지 궁금하네요.

 

얼른 생각해도 ... 성경의 십계명중 둘째계명(우상형상들 제작및 숭배금지 조항)이 거스린다고 일거에 빼버리고 십계는 맞춰야겠는지 10번째 내용을 두개로 나눠  숫자는 맞추고 천주 십계로 바꾸는 교회 - 

왜 그러냐고 하니 그들의 답은 - 우리 천주교회는 성경내용도 주무르고 고칠 수 있는 (교황의) 권위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논리가 이해가 되시는지요 -

 

천주교에서는 개신교회를 보고서 [시집간 딸들의 교회들아  이제 그만 친정 엄마에게로 돌아오라]고  한다는데 돌아가는게 일치인지요.

[레벨:12]진 예수만

2010.06.13 21:10:22

아래 글의 필자인 제가 전(2009.11.8)에 <열린토론방>에 게시했던 글로써

                  이 문제 "답글"에 대신코자 합니다.(약간의 내용만을 추가했습니다)

 

    ----------------------------------------------------------------------------------------------------------------------------

 

논제 : 과연 로마카톨릭이 예수를 서양귀신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는지에 관한 담론을 원합니다.                                                                           

 

개신교도들에 있어, 아니 큰 틀에서 보면 기독교계 전체에 있어서 카톨릭(혹은 이에 동방 정교회를 포함)과 개신교 이 양자의 정체성 구분에 관한 문제는 하나의 명제로 다뤄져야만 할 사안임에 충분할 것이고, 혹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사안은 유대교까지도 상당부분 연관이 있다. 라고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혁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분 이전의 것인 유대교까지는 우리와의 관계성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하고, 우선은 본 사안을 주님 이후 크게 두 종류로 현존하고 있는 교회 형태인 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의 양자 관계로 돌려도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논제를 제시하는 바의 배경설명>
이러한 논제가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가에 관한 배경설명으로써 발제자인 필자는 다음과 같이 의견을 개진한다.

 

지금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성당을 놓고 도대체 어디에 가야 할 것인지에 관해 고심을 하고 있다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성당으로 이미 옮겼거나 옮기려고 고려중이며 혹은 이전에 그게 어떠한 종류건 기독교도가 아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 양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고, 간혹은 개신교도인 우리들에게 그 차이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실정이다. 물론 그이들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판단은 얻은 상태에서 한편은 우리를 떠보려는 의도일 수 있겠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한편, 어떤 경우는 아예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을 향해서 이 문제에 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는 그러한 사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외적인 모습을 들어 일반론적으로만 판별한다면, 카톨릭이나 정교회 미사는 아직도 경건의 전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개신교 예배는 요즘 들어서 가뜩이나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질돼서, 그러한 분위기의 예배론적인 효율성이나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시각에서는 다분히 경박스러운 쪽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계에서는 도대체 이와 관련된 공식적인 답안을 내려 하지 않는 형편이고, 단지 종교개혁 주일에 설교자의 주관에 따라 카톨릭의 오류 등에 관해 간략한 견해를 언급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는 정도이다.

 

지금의 이 논제는 많은 신학적인 논란이 따를 문제이고 어떠한 정형화된 결론을 도출하기도 어려운 사안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우리 개신교도들은 이 문제에 관한 어떠한 식이든 그에 관해 답을 공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필자인 나는 오랫동안 이 명제에 관한 답을 얻기 위해 적지 않게 고심해 온바 있다.



=== 다음 사항은 필자가 알고 있는 혹은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카톨릭의 오류들에 관한 대강의 내용들이다.

( 이 내용의 대부분은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클라이드 맨슈랙이 저술하고 총신대에서 번역한 <세계교회사> 책에서 터득한 지식들을 기초로한 것이고, 그에다 절간과의 비교 등 일부는 순전히 제 느낌과 주관에 따라 기술한 것임을 먼저 밝힌다.)

1. 성모 마리아 및 기타의 성상 숭배와 각종 성화로 치장된 카톨릭 교회(성당)

O  성모 마리아 상을 숭배하고 그에 기도하며, 성당 건축물들은 각종 성상들과 성화들로 치장되어 있으니 이는 절간에 놓여있는 각양각색의 우상들 및 절간에 그려진 그림이나 단청들과 동질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O  또한, 성당에 그려진 성화의 회화적 기법들은 대부분 인물상을 통통하게 살진 손매, 그러한 모습의 얼굴과 몸매 등으로 표현되어 있어 유심히 관찰해 보면 특히나 절간의 그것들과 비슷한 기법으로 그려진 것으로, 이는 큰 틀에서 사고하면 인간이 본래 추구하는 바(즉, 어떠한 모습도 만들지 말라고 한 종교적 계명을 도외시 했을 때의 인간 본래의 욕망) 소위 “복”을 받은 (혹은 받기에 적당한) 인물 상으로, 이는 인간의 상상속의 본래적인 우상들의 모습 그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물론 간혹 ‘십자가에 달린 예수 모습’ 그림 등에서 예외에 해당하는 작품이 존재하기도 한다.)

2. 성당, 정교회에서는 미사시에 향, 성수, 각종 성구 등을 사용하며, 이는 세상의 모든 일반론적인 종교들과 유사한 예배행태와 동류의 것이다.

3. 교황을 실질적으로는 예수와 같은 반열(즉 예수의 후계자 위상)에 두고 있으며, 단지 하나의 인격체일 뿐인 사람에 대하여서 성모, 성인, 神夫 등으로 (특별하게) 부르고 있으며,  하나의 카톨릭 신앙 선대인 소위 "성인"들에 대하여 추모하고 그에 예배한다.

4. 카톨릭에서도 두 손을 합장하기를 좋아하고 묵주 등을 사용하는바 이 역시 동양의 불교 행태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5. 카톨릭의 전례음악인 "레퀴엠(즉 장례미사곡)"은 그 내용이 산 사람들이 죽은자를 위하여 자비를 구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단계 상승하여 사후에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다는 신앙적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내용의 것으로, 이는 불교에서 죽은 사람을 위하여 천도제니 혹은 49제니 그런 것을 거행하는 행태와 같다고 판단된다. (예로, 유명한 클래식 악곡인 '모짜르트 레퀴엠' 가사를 살펴보면 그게 기독교적인 정신에 합당한 것인지 크게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와같은 카톨릭적인 종교행태가 불교의 그것과 일면 매우 유사한 점이 있으며, 이는 곧 '성경적인 가르침'에서 기초된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보편적 종교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기독교적인 본질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으로, 이런 일은 '카톨릭을 과연 "基督敎"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렇게 불러도 되는 것인지', 그에 관해서 크게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판단이나 개인적 결정에 관해서는 그간 필자 스스로도 인문학적 또는 종교적 시각으로 충분히 고심했던 사항으로, 나는 이러한 판단이나 사적 결정에 관해서 어떠한 추호의 거리낌도 없이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음을 밝힌다.


<기타사항>

스페인계가 전한 남미쪽의 (잘못된) 카톨릭 유산의 모습의 한 예로, 그곳 일부 지역에서는 사설 종교의식에서 여러 가지 우상들(그 대부분이 악마상들)과 여러 종교의 상징물들 중에 십자가가 나란히 하고 있는, 참으로 참담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  이는 얼마 전 남미쪽 민생들이 생활상을 소개하는 TV프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로, 통상 이러한 모습을 지칭하는 종교학적인 용어로 “만신전”(萬神殿)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초기 로마 기독교도들이 당시의 사회 지도세력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게 된 이유의 하나가 바로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만신전에 올리는 神의 하나로 삼는 것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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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0.06.13 22:21:04

청신호 님,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대글을 다신 분 같군요.

반갑습니다.

눈팅만 하시다가 이렇게 글을 남긴다는 게

큰 용기를 필요하거든요.

앞으로도 반론이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대글을 주세요.

청신호 님이 말하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내용은

다른 어떤 이에게서 전해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교황 핍박, 십계명, 시집간 딸 등등의 이야기는

몇 마디로 가톨릭을 몰아붙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랍니다.

그 외에도 많을 거에요.

마리아 숭배라든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등등이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지적하기 시작하면 

같은 개신교회인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도

아마 밤새도록 싸워도 끝니 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종파나 교파를 말할 때는

그 신학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몇 가지 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보고 비판하는 건

'안티 기독교'의 행태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답니다.

안티 기독교가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 

왜곡된 현상을 붙들고 늘어진다는 걸 아시지요?  

로마가톨릭 교회의 중심 신학을 말해야 된다는 겁니다.

가톨릭 교회의 중심 신학이 말하는 삼위일체,

종말론, 성서론, 구원론 등을 봐야지요.

우리 개신교회와 똑같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의 신학은 건강합니다.

유럽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회 사이에

신학적인 교류가 많아요.

제가 전공한 판넨베르크 신학을

가톨릭 신학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편입니다.

칼 바르트 신학도 가톨릭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구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한국교회 평신도들은 세계 교회와 세계 신학에 대한 이해가

좀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하답니다.

근본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이며,

미국의 값싼 복음주의에 경도된 분들을 통해서만

기독교 신앙을 듣고 있는 형편입니다.

책 한권을 소개해 드리겠어요. 

일단 읽어보시고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말씀을 주세요.

서강대학교신학연구소, 한국신학연구소 펴냄,

<하나인 믿음>, 분도 출판사

위 책은 30개 항목의 신학 주제를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들 36명이 공동으로 연구한 책이랍니다.

집필자들은 세계 신학계가 인정하는 신학자들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레벨:4]청신호

2010.06.13 23:38:52

그래요 눈팅(참 재밌는 표현?)  시간을 끝내고 적극적으로  파들어가보겠습니다.

이러다 보면 사정없이 무식과 무지도 노출되겠습니다만...

 

동의합니다.  본질(중심)을 외면한 채 표피층에 나타나는  변수만 붙들고  딴지를 거는 것은 조심해야겠지요.

열린 맘으로 소개한 책을 살펴보겠습니다만  그것이 사고의 월담을 가능케 할런지는 ㅁ르겠습니다.

 

윤리도덕적이고 반성경적인 짓?  (개신교) 칼빈도 저질렀습니다만   종교적인 것 때문에 수 백만의 생명을 처단의 신학적 뿌리가 되었던 상치되는 신학적 잇슈들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 때는 그들이 서로들 잘 몰랐고 이해가 얕아서  그런 실수가 있었다"는 식으로 넘어가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을 살펴보고  생각을 나누지요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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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2010.06.13 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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