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48)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에는 철학적인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요한복음이 기록된 시대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모든 신약성경이 그런 시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신약성경의 언어가 헬라어라는 사실이 그 단적인 증거다. 예수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아람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신약성경의 독자들이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헬라어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고, 헬라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헬라 철학의 범주 안에서 살았다는 의미다. 요한복음은 헬라철학의 영향을 다른 성경보다 더 많이 받았다.

위 구절에 나오는 진리는 헬라 철학이 추구하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찾았다. 진리로 번역된 헬라어는 알레테이아다. 알레테이아(alētheia)는 은폐를 가리키는 레테(lēthē)에 박탈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a가 붙은 단어다. 어원적으로 진리는 은폐와 가상을 드러내는 탈()은폐다. 인도 말로는 타트바(tattva)와 사티야(satya)가 있다고 한다. 타트바는 문자적으로 그것이다.’로서 사물의 본질을 가리키고, 사티야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의미에서 진리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를 진리라고 본다. 진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이기에 진리를 따르는 자는 당연히 빛을 향할 수밖에 없다. 예수를 진리라고 본 이유는 예수에게서 생명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것들은 생명을 주지 못한다. 유한한 피조물에 더 예속시킨다. 당시의 로마 정치 이데올로기는 가장 세상적인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화려하지만 거기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요한복음 기자는 알고 있었다.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영혼의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로마의 권력과 재물과 명예도 영혼의 만족에서는 무능력했다. 요한복음 기자를 비롯해서 초기 제자들과 예수 추종자들은 십자가에 달렸던 예수를 살아있는 자로 경험했다. 그것이 부활 경험이다. 그 경험에 근거하여 그들은 예수야말로 생명을 주는 진리라고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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