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10)

조회 수 507 추천 수 0 2019.09.14 20:06:12

신앙의 기쁨

베드로 사도는 가장 기초적인 기독교 신앙을 설명한 뒤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6절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가 이를 의미한다. 독자들은 지금 시련을 겪는 중이다.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6b절에서 기뻐하라.’라고 말한다. 8b절에도 이를 반복했다. 기쁨은 신앙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기쁜 일들을 찾는다.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출세하는 일들이 기쁨의 이유다. 문제는 그 모든 기쁨의 이유가 될만한 일들은 두 가지 속성으로 인해서 참된 기쁨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하나는 기쁨의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일들은 곧 시시해진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은 정도로 기뻐하겠지만 실제로 결혼하면 시시해진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기쁨은 기쁨의 조건에 의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이 기쁨의 이유다. 이를 존재의 기쁨이라고 말해도 된다.

기독교인이 기뻐해야 할 존재론적 이유는 7절이 말하는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공동번역은 칭찬과 영광과 영예라고 표현했다. 앞의 두 가지는 같고 뒤의 한 가지만 약간 다르다. 헬라어 에파이노스, 독사, 티메에 해당한다. KJV은 이를 praise and honour and glory라고 번역했다. 비슷한 의미이다. 다만 헬라어 독사는 일반적으로 영광에 해당하는데, KJV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어쨌든지 기독교인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가 높임을 받는다는 데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 단어 중에서 독사가 가장 중요하다. 헬라어 독사는 히브리어 카봇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고,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이런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이런 설명이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기껏해야 세상에서 칭찬받고 명예를 얻고 영광 얻는 데에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칭찬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칭찬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배타적인 판단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흙과 토기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이다. 24, 25장에는 세상 마지막 때와 그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온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나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24:45, 46). 마지막 때의 판단은 일상에서 얼마나 성실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더 엄중한 이야기는 마 25:31-46절에 나온다. 복 받은 자로 판단된 사람들과 저주받은 자로 판단된 사람들이 자기가 왜 그런 판단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판단은 하나님만 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바로 인자이신 예수에게 행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달란트 비유(25:14-30)에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아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기 사람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5:21, 2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칭찬은 세상에서 존경받았느냐 하는 사실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느냐 하는 사실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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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혜식

2019.09.15 07:21:44

20대 초반에, 저는 하나의 이념을 발견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처럼, 돈을 벌건 못벌건, 결혼을 하건 못하건 간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겠다는 이념을 발견하고 기뻐했는데, 어리석게도 이 이념을 왜곡되게 사용해서 현실의 의무를 내팽게치는게 사용했었지요. 그러면서 보편적인 것에서 떨어져나가므로 인한 불안과 소외, 주눅듦을 차곡차곡 쌓았고, 태산처럼 쌓아 놓다 보니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내가 살 길이 존재를 추구하는 것으로 집중이 되는 것 같아서 좋기는 한데, 아직도 내가 존재를 감당 못하니 터져버릴 것 같아 위태롭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찌됐든, 내 삶의 역사가 이렇고 계속 이 길을 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아무런 명예도 돈도 안되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현재로서는 민폐만 되고 오해와 조롱과 비난을 받는데 그럼에도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 저에게는 운명처럼 다가오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불완전하고 비틀거리지만 계속 가보려고 합니다. 

저도 주님이 나타나실 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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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5]정용섭

2019.09.15 20:28:27

예, 김혜식 님이 기대하는 대로

벼락같이 생명 완성이 이루어지는 주님의 재림 때에

주님의 칭찬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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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혜식

2019.09.17 07:16:06

사랑과 격려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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