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 민중 (2) -당파성-

조회 수 2862 추천 수 51 2006.07.15 23:23:42
2006년 7월15일 민중 (2) -당파성-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박해받는 계층을 향해서 당파성(Parteilichkeit)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됩니다. 기존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민중신학에서는 그것을 편파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철저한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셈입니다.
하나님이 하층민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편든다는 성서적 증언은 많습니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라 할 출애굽은 이집트 사람들의 학정에 눌린 히브리 사람들의 호소가 하늘에 닿았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이렇게 눌린 자의 소리에 응답하시는 야훼이십니다. 같은 연장선에서 이 출애굽 공동체는 유대적 혈통을 가진 단일 민족이 아니라 그 당시 이집트에서 살던 소수 인종 및 미디안 광야에서 떠돌던 부랑자들, 오늘로 말하자면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집시 같은 사람들의 다인종 공동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사사기, 사무엘 상하 서에 기록된 가나안 정복의 역사는 바로 이들과 가나안 원주민들과 영토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 법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모든 노동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안식일 법은 단지 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안식일 법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집단은 노예처럼 혹독한 노동에 숙명적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일 법은 그들을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물론 이를 이용해서 그들의 생존을 더 위태롭게 만드는 사용자들이 있긴 하겠지만, 신학적으로만 본다면 안식일 법의 해방적인 기능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가 주어진다는 이사야의 예언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지복(至福)선언도 역시 하나님이 특별한 계층을 사랑하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특히 팔복의 말씀에 등장한 이들은 어떤 종교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순전히 사회적으로 가장 궁핍한 처지에 빠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말은 곧 그들에게 구원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어디 그것만이겠습니까? 그리스도교의 칭의론과 은총론도 역시 이런 맥락과 일치합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구원이 인간의 업적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은 곧 민중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웬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그럴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무런 차이가 없는 구원이 임한다고 한다면 이 사건은 결국 후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의 보편성이 실제로는 구원의 편파성과 일치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민중을 향해서 편파적이라는 사실을 성서와 그리스도교 가르침에서 찾아볼 수 있긴 하지만 이것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근본으로 삼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구원이 단지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구원은 민중이나 그렇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생명은 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요청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당파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의 현실성을 찾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역사와 더불어 드러나야 할, 그러나 결국 종말에 가서야 완전히 드러나게 될 그 구원의 현실성(reality) 말입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과 구원은 당파적입니까?

[레벨:7]늘오늘

2006.07.16 04:43:00

정치(분배)가 문제시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져온 신학적인 담론,
투표권이 하나일 때, 어찌하는 것이 더 신앙적일까? 에 대한 시론,
그러므로 그에 대한 대답은,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것에 의해 평가될, 그러한 내몰린 선택은, 고정된 것이 아닌,
상황 속에서의 대응이라는 유동적인 진리값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숙고된 개인의 선택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고,
동시에 그 선택이 절대화 되어선 안 될 것 같고요.
저는, 민중신학이 담아내려는 당파적인 선택을, 제가 하기를 바랍니다. ^^

고작해야, 투표일에 열우당과 민노당을 놓고 고민하는 정도이고,
일상에선 마냥 무관심/무능력한 소시민입니다만,
‘민중’을 편드시는 하나님을 강력 주장하지는 않지만,
성공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463 10월22일 물음의 이중성 [3] 2008-10-21 1731
1462 10월21일 신앙의 눈 [2] 2008-10-20 2130
1461 10월20일 제자 정체성 [7] 2008-10-19 1872
1460 10월19일 불과 소금 2008-10-18 4238
1459 10월18일 지옥(10) [6] 2008-10-17 2082
1458 10월17일 지옥(9) 2008-10-16 1471
1457 10월16일 지옥(8) [4] 2008-10-15 1896
1456 10월15일 지옥(7) [2] 2008-10-14 1727
1455 10월14일 지옥(6) 2008-10-13 1468
1454 10월13일 지옥(5) [4] 2008-10-12 1786
1453 10월12일 지옥(4) [3] 2008-10-11 1792
1452 10월11일 지옥(3) [6] 2008-10-11 2026
1451 10월10일 지옥(2) [2] 2008-10-09 2276
1450 10월9일 지옥(1) [3] 2008-10-08 2525
1449 10월8일 눈의 범죄 [11] 2008-10-07 2192
1448 10월7일 발의 범죄 [4] 2008-10-06 1685
1447 10월6일 손의 범죄 [2] 2008-10-05 1887
1446 10월5일 실족케 하는 죄 [2] 2008-10-04 1942
1445 10월4일 기독론적 뿌리 [6] 2008-10-03 1792
1444 10월3일 종교적 똘레랑스 [3] 2008-10-02 1959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