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8일- 죄 (2)

조회 수 2891 추천 수 27 2006.07.28 23:24:45
2006년 7월28일 죄 (2)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예수님에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장애와 난치병과 같은 불행을 죄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보고 그의 불행이 본인의 죄냐 부모의 죄냐 하고 물은 제자들도(요 9:2)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욥기서에서도 비슷한 구도로 설명되어 있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일,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들은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원인이 작용했다는 말 이외에 그것을 해명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불행의 원인을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 죄를 푸는 것이 곧 그런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구원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죄로부터 구원받는다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도 역시 큰 틀에서 본다면 유대인들의 이런 생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죄 문제는 앞으로 조금 더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니까 여기서는 불행과 죄의 관계에 한정해서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요즘 느닷없이 ‘가계저주론’이라는 해괴한 논리가 한국교회 일부에서 성행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림살이가 펴지지 않는 이유를 그들의 가계(家系)에 내재하고 있는 저주라고 보고,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바로 불행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라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아주 일부이긴 하겠지만 그리스도교가 왜 이렇게까지 변질되고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면 앞으로 그리스도교는 무속종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그렇게 변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쪽의 종교소비자들은 늘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지도를 모두 읽어내는 21세기에도 점치는 직업이 성행하는 걸 보면 그리스도교가 철저하게 무속적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계저주론의 등장이 느닷없다는 위의 진술을 취소해야겠군요. 느닷없는 게 아니라 당연한 귀결입니다. 청중들의 귀만 즐겁게 만드는 대중추수주가 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다는 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누구의 죄로 시각장애인이 되었는가 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분명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시각장애는 어떤 사람의 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예수님의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겠군요. 예수님은 장애의 원인을 설명한 게 아니라 장애를 비롯한 불행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신앙적 태도를 언급하셨으니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불행의 원인은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원인을 찾아서 책임을 추궁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책임을 당사자에게서 물으려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합니다. 공부하지 않았다거나 게을렀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식으로 그들을 비난합니다. 북한을 향한 적개심은 훨씬 강력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끊임없이 “누구의 죄냐?”고 묻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따져봐야 할 때가 있긴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일은 사죄와 용서가 아닐까요?

주님, 서로를 향한 용서의 은총을 허락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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