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 땅에서

조회 수 2756 추천 수 31 2006.08.13 23:17:22
2006년 8월13일 땅에서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2:10)

“땅에서”라는 문구는 오늘 본문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걸 빼놓고 읽어보십시오.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병행구도 역시 이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나름으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찾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성서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 따라가 봅시다.
땅과 대비되는 용어는 하늘입니다. 이 대립적인 용어를 본문에 대비시킨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고, 하늘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입니다. 하늘에서의 사죄는 야훼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세인 반면에 땅에서의 사죄는 인자, 즉 예수의 권세이겠지요. 이 말은 곧 인간은 하늘로부터 용서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늘의 사죄와 땅의 사죄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참조 구절이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다음에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어떤 이는 베드로가 주님에게서 받은 천국의 열쇠로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큰 착각입니다. 천국 문은 재림하실 주님의 몫이지 천국의 열쇠를 받는 베드로의 몫이 아닙니다. 여기서 매고 푼다는 말은 그 당시 랍비들의 세계에서 사용되던 관용어입니다. 유대인 민중들의 잘못을 랍비가 공식적으로 용서를 선포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하늘로부터의 용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제 죄로 인해 공동체로부터 밀려났던 사람이 공동체 안으로 다시 받아들여졌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이 구절은 베드로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이런 권위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쨌든지 마태복음의 이 구절에서 땅과 하늘이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바로 하늘의 영광스러운 삶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땅의 삶은 잘 알지만 하늘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아주 미숙한 물리학 정보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생명의 근원을 추구했다는 사실에서는 우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확연하게 드러난 이런 생명 현상 너머에, 그 내면에, 다른 지평에 생명의 본질이 숨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늘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말은 곧 주님이 은폐된 생명의 세계로 옮겼다는, 그렇게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다시 우리에게 오실 겁니다. 그때 우리는 새 옷을 덧입을 것이며, 전혀 다른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늘의 생명에 희망을 거는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초월주의자이거나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철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인자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사죄를 베푸신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생명을 온전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땅과 하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중요한 삶의 자리입니다. 땅에 치우쳐서 그것 너머의 생명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하늘에 치우쳐서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땅에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형체를 이루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땅과 하늘을 하나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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