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조회 수 2481 추천 수 29 2006.08.31 23:47:52
2006년 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아내와 나는 어젯밤 시몬의 집에서 돌아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거나,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입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나도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의 그 말은 마치 과녁 중심에 꽂힌 화살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 박힌 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도저히 떠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야훼 하나님을 약간 생각하기는 했지만 별로 진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그럴 여유도 없었지요. 그냥 자식새끼 굶기지 않고, 아내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고, 그렇게 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대충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 나라고 다른 수가 있나 자위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구석은 늘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간혹 회당에도 가고, 지난번에는 예루살렘 성지순례도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런다고 해서 허전한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했던 거지요. 그런데 지난 며칠간 예수 때문에 내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던 생각과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어젯밤 예수의 말씀이 끝났을 때 친구가 나를 예수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물론 그 옆에는 시몬이 서 있었지요. 나는 세관에서 일하는 레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내 집사람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자, 예수는 아, 그래요, 나는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받더군요. 나이는 그렇게 많이 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였습니다. 지난 번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예수의 직업이 목수라고 했습니다. 목수라면 힘든 일인데, 그에게서는 그렇게 노동에 찌든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랑 전도자라거나 서기관 같은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겉모습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면적으로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이런 건 직접 만나보아야만 알 수 있는 거지요.
예수는 나에게 요즘 일이 힘들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런 질문은 흔하게 들었던 겁니다. 똑같은 질문인데도 예수에게 직접 듣는 질문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이 나에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이런 평화로움을 전해 받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나는 조금 힘듭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이 평소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만 요즘은 더욱 그렇습니다. 고기가 잘 잡히지 않으니까 모든 게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들이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거니까 그런대로 헤쳐 나갈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선생님,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마음이 허전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무나 진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묻기는 했지만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레위, 나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러 다닙시다.” 예수는 나에게 전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언지도 잘 모르는 나에게 그걸 함께 전하러 가자니, 이 말은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나는 고민했습니다. 예수의 말이 무언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그를 따라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점점 커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구를 했을 거라는 믿음도 아주 짧은 순간에 점점 자라났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나에게서 일어나는 걸까요? 이제는 정말 나는 예수를 따라나서야 한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내 운명을 예수에게 걸어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 말입니다.

[레벨:1]똑소리

2006.09.01 15:29:30

정확한 명칭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식의 글쓰기를 <이야기식 큐티>라고 부르나요?
색다른 맛이 있긴한데
아깝게도 정목사님 특유의 힘찬 필치가 살아나지 않아 보이는군요.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이전 방식대로 회귀하는게 좋을 듯합니다.
조회수가 갑자기 뚝 떨어진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방식도 좋지만
목사님의 고유한 컬러를 살리는 쪽으로 밀고 가는게 더 좋을 듯 합니다.

[레벨:1]한진영

2006.09.01 16:30:44

정목사님 말씀대로
우연한 방식으로 사소한 일상이 우주론적 사건이되는 것을
세리의 입장으로 표현해 가시는게 흥미롭습니다.

별다른 것 없이 무료한 세리 마태의 일상에
별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찾아 오시는 주님의 방문과 그들의 만남이
지난 주에 본 괴물이라는 영화의 어떤 장면과 겹쳐지네요.

난데없는 괴물의 출현으로 한강 둔치가 발칵 뒤집혔는데
맹렬하게 날뛰는 괴물을 숨가쁘게 쫓던 카메라가
갑자기 스톱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리며 고요하게 강물을 보는 한 여대생에게 시선을 맞춥니다.

혼란과 광기로 출렁이던 전형적인 호러영화 식의 카메라 워크가
이 장면에서는 갑자기 커피 광고처럼 클래식해지면서 순진하고 고요해지는데,
다음 순간 괴물이 홀로 앉아 음악을 듣던 그녀를 순식간에 채어서 끌고 가는 장면으로
다시 박진감 있게 이어 가더군요.

한 여대생 피해자와 무서운 괴물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점을 바꿈으로 인해 더 극적이면서도 사실감을 주면서 표현되었습니다.

감독은 장면을 이어감에
이런 방식으로 음악적 감각의 리듬을 준 것이겠지요.


묘미가 이런데 있는 것 같습니다.

위성에서 찍어 보낸 우주의 사진을 보면
끝없는 바다같은 우주에서
치밀하게 계산되어 돌아가는 별들의 공전과 자전등이 무슨 낭만적 요소를 찾아 내기 힘든
광대하고 막막하며 웅장한 장면이지만,
시점을 바꾸어 보면
서산에 지는 해가 먼지같은 사람의 일상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며,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지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엄연한 시적 현실로서 서로 관여되어 있는 것 처럼,

마태의 독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심은,
궁극적인 영적 세계의 주인인 예수와
너무나도 육적인 듯한 마태의 일상의 만남의 장면을 통해
사실상 영적인 것과 인간의 매일의 생활이 내적으로 깊이 연락하며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드라마틱한 조치로 읽혀집니다.

우리가 모르는 중에도 우리를 보고 계시는 주님의
너무 나도 일상적인 일하심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레벨:11]권현주

2006.09.01 19:36:37

레위가 마태입니까?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9.02 00:06:49

똑소리 님,
그냥 한번 새로운 방식으로 성서 안으로 들어가보려는 시도였어요.
뭐, 새로울 것도 없지만요.
레위가 우리와 똑같은 삶의 조건 가운데서 살았고,
예수와의 만남도 그런 일상의 한 순간이었다는 걸
조금 더 리얼하게 포착해보려고 있지요.
이전의 글에 힘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한진영 님,
글을 잘 새겨주셨네요.
괴물, 봤어요?
나는 못봤는데요.

권현주 선생,
맞습니다.
레위가 마태이고, 마태가 레위입니다.
이게 100% 맞는 건 아니에요.
이름에 대한 건 이 시리즈 글 (1)번에 설명되어 있어오.

[레벨:15]namoo

2006.09.02 10:07:56

처음 예수를 만났을때의 잔잔하지만 그 주체할 수 없었던 울렁임이 되살아 나네요.

불치병이 치료되었단 얘기나 전복된 차 속에서 혼자 살아 남았단 간증보다도
어쩜 밋밋하기까지한 한마디 예수의 속삭임이 일상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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