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일- 바리새인 (6)

조회 수 2435 추천 수 41 2006.09.11 23:18:50
2006년 9월11일 바리새인 (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바리새인 서기관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그의 진보성입니다. 바리새인이 과연 진보적인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두개인들처럼 로마의 체제 안에 안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진보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진보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과 대립했을까요? 예수님도 그런 관점으로 분류한다면 진보인사인데 말입니다.
바리새인의 진보성은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진보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 체제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에세네파처럼 과격하게 현실로부터 도피하지는 않았지만 사두개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실안주(status quo)를 거부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이념을 절대화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전체 존재를 율법 수호에 걸어둠으로써 복음의 세계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공산주의가 옛 소련 연방과 동구권에서 실패한 이유는 그들의 진보역사관이 교조화되고, 관료화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오늘 한국사회의 진보인사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회운동에서는 진보적이지만 가정과 교회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목사들도 많습니다. 진보주의의 한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보주의 한계라기보다는 인간의 한계이겠지요.
진보적이든지, 보수적이든지 중요한 것은 이 세상, 인간, 역사를 얼마나 열린 눈으로 보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가장 크게 열린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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