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4일 의인 (2)

조회 수 2669 추천 수 29 2006.09.14 23:19:56
2006년 9월14일 의인 (2)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우리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앞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쓸데없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해석이 없어도 그 뜻이 우리에게 그대로 들어옵니다. 우리도 평소에 아파야만 병원이나 의사를 생각합니다.
의인은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처럼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건강하기 때문에 의사를 직접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명목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떤 건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스스로 영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에 하나님 이외의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성장시켜야 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교권과 복지활동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관심은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작통권 환수 반대에까지 이릅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청 앞 광장에서 매우 정치적인 집회를 자주 엽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불러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사가 필요 없는 법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의인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Eugene

2006.09.15 05:46:17

목사님! 절대로 딴지거는 것은 아니구요. 정말 궁금해서 여쭙니다.

동성애를 옹호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해 힘쓰고 환경을 위해 때로는 시위도 불사하고 종교간의 대화와 평화를 위해 사찰에 가서 절을 하고 사학법 개정에 대한 찬성의 입장을 교단의 이름으로 선언하고...등등

이런 일련의 행위들과 목사님께서 위에서 구체적으로 나열한 것들과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요?
해석의 차이일 뿐 저들도 스스로 의인이라고, 스스로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정치적인 곳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어디까지가 정치적인 것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목사님처럼 그런 부분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도 일종의 정치적 판단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정치적인 것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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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6.09.15 14:08:28

어렵지만,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군요.
어렵다는 건 우리가 결정적인 대답을 찾기 힘들다는 거고,
중요한다는 건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내가 열거한 내용과 유진(Eugene) 님이 열거한 내용은 상충되는 거군요.
나는 주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열거했고,
유진 님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열거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진보적인 쪽의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자칭 의로움을 내보이는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걸 제가 단정할 수는 없지요.
보수적인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그런 현상들은
제 눈에 어느모로 보나 자기의에 사로잡힌 것 같지만
그것도 내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향해서 나가는가,
아니면 수구적이고 반동적으로 나가는가 하는 문제는
자기가 판단하고 선택할 뿐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무엇인 진보이고 무엇이 수구인지를
사회과학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결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 문제는 각자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몫이니까 그렇다 하고,
제가 위의 글에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자기의 영성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를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내가 죽음의 문제가 직면해 있다면
그는 다른 일을 할 수 없겠지요.
오직 그 문제와만 대결하겠지요.
지금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그 병을 낫기 위해서 투쟁하지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불의에 대항하거나
하나님의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이 무의미하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여전히 이차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각자는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겠지요.
어디까지가 자기의 영성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정치적 선택의 문제인지는 다른 사람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지금 한미 FTA 반대, 찬성 논쟁이 심하네요.
기독교 안에서도 이걸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보 쪽의 사람들은 반대하고,
보수 쪽의 사람들은 찬성하는가 봅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게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제 경제 문제에 대해서 아직 판단을 내릴 만큼 아는 게 없기 때문이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만,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일일이 나서서 콩놔라 팥놔라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훨씬 엄청난 공부가 필요한데 공부할 시간이 없거든요.
대추리 미군기지 문제만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군철수를 지지하지만
정부가 하는 대추리 기지 문제에 대해서 일일이 간섭할 수가 없어요.
그걸 내가 판단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거든요.
내 영성의 문제에도 허덕이라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작통권 문제도 그렇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연히 그걸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일이 나서서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치판단은 있지만 남에게까지 그걸 강요할 만큼의 확신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거 아니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겠군요.
저는 소극적인 사람이에요.
무얼 나서서 말하려고 해도 자신이 없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 신학, 전통, 등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지만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등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예민한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서 발언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무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관심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종교는 정치적이어야 하겠지요.
왜냐하면 종교가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이 바로 정치적이니까요.
서로 모순되는 말 같지요?
정치와 분리되면서도 정치적인 종교라는 말이요.
이 사이에는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에 무관심하면서도 정치적인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어야겠지요.
종교만의 독특한 그런 정치적인 에너지가 무얼까요?
이런 문제까지 오늘 말하기는 힘들겠네요.
저는 지금까지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분들의 행동은,
시청 앞 광장에서 부시에게 호소문이나 보내는 그런 행동은
아주 정치적이면서도 비신앙적인 것이라고 보거든요.
반북, 친미적인 행동은 제가 동의할 수 없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도, 모두는 아니지만, 자기의가 매우 강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건 신앙적인 모습은 아니죠.
그런 모습을 볼 때 실망이 되지만,
그것도 인간의 한계로 알고 같은 배를 타고 갑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요즘 노무현 정권 밑에서 고위직을 했던 사람들이 나와서
노 대통령을 욕하고 다니는 걸 보면 우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들은 선악이원론에 빠져 있어요.
자기의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태도는
수구 보수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어쨌든지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나오는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겠지요.
여기에 몰두하는 사람은 다른 일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어 있어요.
그게 어디까지일까요?

Eugene

2006.09.16 00:52:05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어쨌든지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나오는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겠지요."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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