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20)

조회 수 1414 추천 수 0 2019.09.28 20:11:36

21-10 그의 기이한 빛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러므로”- 2장은 1:13과 똑같이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로 시작된다. 영원한 말씀이신 복음(유앙겔리온)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므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이 생각하는 복음과 기독교가 생각하는 복음은 다르다. 기독교의 복음을 온전히 파악하고 추구할 때만 세상이 말하는 복음을 극복할 수 있다. 세상의 복음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집 등등,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좋은 일들은 일종의 복음이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사람이 생명 충만을 누릴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왜 그런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누구나 안다. 그 모든 좋은 소식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복음이지 실제로 이루어진 다음에는 평범한 일상으로 떨어진다. 그런 복음은 상대적이고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그것을 절대화하면 우리의 삶이 위축되거나 과부하에 떨어진다. 기독교의 복음은 1:23절이 말하듯이 썩지 않고 살아있는하나님의 말씀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를 통한 영원한 생명 경험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 베드로 사도는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을 버리고 갓난아이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조언한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시원적 영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창조와 종말 완성은 시원적인 세계다. 이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보충하면 직립 보행이 시원적인 세계다. 만약 직립 보행의 깊이로 들어간다면 다른 삶의 조건들은 부족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21세기 세속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순전하고 신령한 세계를 사모하기가 어렵다. 세상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교회 생활과 세속 생활이 거의 분리되어 있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갈등을 느낀다. 영혼이 혼탁해진다. 이를 극복하면 의도적으로라도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예배드리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게 좋다. 좀더 나아가서는 좋은 신앙 서적을 읽거나 성경 읽기와 교회의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거룩한 제사장”- 베드로 사도는 기독교인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 뒤에(2:2) 아주 독특한 표현으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거룩한 제사장’(5). 이런 표현은 우리에게 낯설다. 듣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것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는 말로 들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거룩한 제사를 드리라는 뜻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궁극적으로 제사, 즉 예배다. 예배는 두 가지 핵심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영광은 앞에서도 말했고 뒤에서도 말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희생제물만 보자. 구약 시대의 희생제물은 양이 주로 바쳐졌다. 예수는 우리를 대신한 희생제물 어린양이다. 우리도 희생제물이 된다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세상에 속한 일들은 완전히 부정하고 늘 예배만 드리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돈 버는 행위도 역시 궁극적으로는 거룩한 제사다. 우리의 생명도 궁극적으로는 희생제물이다.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섬기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업을 자기가 계획하고 진행하겠지만 실제로는 세속적인 제사다. 사람들이 붙잡은 모든 것은 번제처럼 불살라진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인이 어떤 방식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는 각자가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 자신의 신앙 수준에 따라서 그게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이 거룩한 제사 행위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만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제 삶을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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