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행(3)

조회 수 1487 추천 수 0 2019.01.24 22:01:32

무안국제호텔

11시에 천천히 일어나 걸어서 2-3분 걸리는 동네 무안 국제호텔로 향했다. 달이 밝았다. 무안 국제공항 손님이나 인근 골프장 손님들이 주로 묶는 거 같은데, 그날은 우리 외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창구에 아무도 없고 연락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전화를 거니 30대 청년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안내를 해주었다. 그 청년이 나눠주는 대로 열쇄를 받아드니 맨 꼭대기 4층에는 정 장로 부부, 3층에는 정 목사 부부, 2층에는 홍 집사가 당첨되었다. 4층은 번호가 501호로 매겨졌다. 숫자 4를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실이라 그런지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었고, 욕조도 넓었다. 홍 집사 방에는 백 집사가 함께 자기로 했다. 나중에 들으니 두 사람이 새벽 2시 반까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은 원래 인근 식당에서 사먹을 생각이었는데, 백 집사가 굳이 본인이 죽을 끓이겠단다. 아침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9시에 만나기로 했다. 무안국제호텔은 그 마을 건물 중에서 가장 높기도 하고 백 집사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해서 이틀 동안 여러 번 그 옆으로 지나쳤다. 외관은 퇴락해보였다. 안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쾌적한 편이었다. 내 숙소의 창호가 시원치 않아서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와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에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가 불편하다면 불편한 모든 것이었다. 옆 침대의 집사람은 숙면한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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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밤 신세를 진 무안국제호텔이다. 이름은 거창하나 내용은 평범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아침 산책

전날 김정관 집사 하는 말이 아침 몇 시에 일어날지 모르나 아침 산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숙면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늦게 잠들었다가 눈이 뜨이는 순간에 위층의 정 장로에게서 문자가 왔다. 8시로 기억된다. ‘산책 나가셨나요?’ 옷을 갈아입고 호텔 앞마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내들은 더 쉬라 하고 우리 둘만 나섰다. 마을 인근의 지형이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서 걷기에 재미도 있고 편하기도 했다. 우선 소나무 숲으로 갔다. 호텔에서 가까웠다. 우리 집 마당에서 지금 자라고 있는 소나무 오형제가 15년 동안 살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1천 그루 된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작년 우리 집으로 소나무를 가져온 이후에 소나무 밭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표시가 났다. 나무 크기에 비해서 자리가 비좁아서 답답해보였다. 이제 봄이 오면 정리되지 않겠는가.

능선을 따라서 정비되어 있는 산책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 우리의 산책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곳곳에 운동기구도 놓여 있었으나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까지 나와서 산책할 분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노인들은 움직이는 게 귀찮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각자 바쁘기 때문이다. 마을 이름 망운(望雲)’은 비가 적어서 붙여졌다는 해설 간판을 거기서 읽었다. 붉은 흙과 양파 밭과 마늘 밭, 초등학교 운동장, , 빈집, 이따금 지나치는 승용차가 그곳의 풍광을 만들고 있었다.

30분가량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니 아침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호텔에서 아직 오지 않은 문, 김을 빼고 다섯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내가 다시 기도했다. 이 집에서 두 번째 드리는 기도였다. 아침 식사 주 메뉴는 해물 죽이었다. 우리가 먹기를 끝내고 차를 마시는 중에 문과 김이 들어와서 밥상에 앉았다. 고구마, 과일, 차를 먹고 마시면서 아침 시간을 편안하게 즐겼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우리를 천천히 따라오는 순간이었다.

그 달콤하고 평화로운 순간에 대구의 김 아무개 집사로부터 집 주인 김 집사에게 동영상 전화가 걸려왔다. 일 년 반 전에 이곳을 방문했던 곳이라 옛날 생각이 난 듯했다.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분인데, 그날은 조근조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우리 모두 손뼉 치면서 즐거워했다. 이렇게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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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집사가 15년 동안 가꾼 소나무밭이다. 이제는 나무가 자라서 이식해줘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래는 소나무 밭 옆으로 난 산책로다. 저 아름드리 나무 이름은 까먹었다. 오가는 이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마음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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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이 제법 4,5백 미터 이어진다. 나중에 저 아름드리 나무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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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이 자랑하는 황토밭이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의 첫 장소가 여기 아닌가 모르겠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남녁 황토를 설명한 것으로만 기억에 남는다. 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만져봤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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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밭이다.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철인데도 노지에서 시금치가 자란다. 이런 정도로 농사를 지으면서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젊은 사람들도 농촌을 떠나지 않으련만... 그날 아침 산책의 그 평화로운 느낌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시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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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9.01.25 13:11:33

아름드리나무는 꼭 느티나무 같은데... 느티나무를 모르실리 없고....,

(암튼 저 산책길 나도 꼭 걷고 말테다. 자전거도 타고...ㅎ)


젊은 날 겨울에 화순으로 해서 해남까지 남도여행을 하면서 저 황토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 모릅니다.

화순을 지나 해남 방면 길가의  배추 밭에 배추도 얼지 않은 채 그대로 있더군요.

그 상태에서 밭떼기로 팔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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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01.25 21:58:43

입구에 나무에 대한 설명이 있는 표지판을 본 거 같습니다.

특별한 수종을 설명하는 거라는 느낌만 남아 있습니다.

무안의 부드러운 능선의 들판과 황토와 갯벌과 섬들이

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하늘연어 님도 한번 휙 하고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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