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2
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볼지어다.’라는 표현은 강조법입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잘 읽어보고 조심하라는 겁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에 떨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환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것이겠지요. 회개하지 않는 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환난을 불러온다는 겁니다. 과연 그런가요? 악과 불법이 늘 심판받을까요?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회개하지 않음과 큰 환난이 늘 일치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환난을 겪는 게 아니고, 거꾸로 환난을 겪는 사람이라고 해서 회개하지 않은 사람도, 즉 악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환난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오히려 착한 사람들이 환난을 더 겪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환난을 직접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쨌든지 제가 알지 못하는 큰 어려움이 두아디라 교회에 닥쳤나 봅니다. 요한은 그것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본문을 세밀하게 연구하지 않아서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이 실제로 당시의 부도덕한 성 행위자들을 가리키는지, 또는 우상숭배 행위를 버리지 못한 이들을 가리키는지를 말입니다. 성경은 우상숭배를 간음으로 표현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특히 상징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요한계시록 같은 문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더불어'
어떤 일을 주도하는 자들은 '주동자'라서 자기 신념이라도 있지
그를 추종하는 따까리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빌붙은 자들이라 더욱 나쁜놈들입니다.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 은 이세벨에게 붙어 이세벨 종교와 더불어 자기 종교를 뒤섞은 자들.
지금도 있다. 종교적 간음자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