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物) 006- 문손잡이

조회 수 707 추천 수 0 2022.03.08 10:43:31

() 006- 문손잡이

006.JPG

내 방문 손잡이다. 하루에서 수없이 나는 저 친구와 접촉한다. 재질이 알루미늄인지 합금속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9년째 사용하는 손잡이인데도 바로 어제 단 듯이 깨끗하다. 고장 한번 없었다. 단순한 장치니까 웬만해서는 고장 나지는 않겠으나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문을 열려면 손잡이를 아래로 내려야 한다. 닫을 때도 가능하면 손잡이를 내린 채 문을 살짝 제자리로 돌려놓고 손잡이를 다시 올리면 된다. 이게 습관이 되지 않으면 문을 여닫을 때, 특히 닫을 때 별로 듣기 좋지 않은 문소리를 낸다. 보통 때는 조용하다가 이런 부분에서 와일드한 아내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급하게 여닫는다. 낮에야 그러려니 하지만 심야에는 어떤 집의 층간소음처럼 몹시 거슬린다. 여러 번에 걸쳐서 문을 조용히 여닫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닫을 때 마지막 순간이 중요해. 문과 문틀이 만나는 그 순간을 느껴야지.” 아무리 내가 잔소리를 해도 가족은, 특히 아내는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둘째 딸은 금방 알아듣는다. 대학생 때 같은 교회 전도사로 활동한 사람과 결혼한 아내는 평생 남편의 잔소리를, 또는 훈계를 듣고 사느라 고생이 많다. 나이가 들면서는 잔소리의 강도가 준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교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교회 오빠와 결혼한 분들도 대충 분위기가 그렇다고 한다.

방문보다 중문이 어렵다. 중문은 삼단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옆으로 미는 방식이다. 이를 다시 끌어당겨서 닫을 때는 문과 문틀이 접촉하는 순간을 세밀하게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끌어당길 때의 힘이 가속을 붙여서 집이 흔들릴 정도의 소리를 낸다. 아내의 무신경한 습관을 고칠 다른 방법이 없어서 각각의 문틀에 충격 방지용 스펀지를 부착했다. 소리가 훨씬 부드러워지기는 했으나 힘 조절을 미세하게 조정하지 못할 때는 큰 효과가 없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물()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영어로 Thing이라 하고, 독일어로 Ding이라고 하는, 칸트가 Ding an sichDing für sich 개념으로 분리해서 보았던 그 물을 어느 정도로 깊이 인식하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나의 창조 신앙의 깊이도 달라질 것이다. 저 그림에 나오는 손잡이는 처음으로 손잡이를 구상했던 사람의 생각을 내가 따라가면서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이 세상에 무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나의 친구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402 계 18:8 2023-12-28 212
6401 계 18:7 [1] 2023-12-27 226
6400 계 18:6 [1] 2023-12-26 263
6399 계 18:5 [1] 2023-12-25 223
6398 계 18:4 [1] 2023-12-22 249
6397 계 18:3 [2] 2023-12-21 180
6396 계 18:2 [1] 2023-12-20 269
6395 계 18:1 [1] 2023-12-19 255
6394 계 17:18 [1] 2023-12-18 218
6393 계 17:17 [1] 2023-12-15 236
6392 계 17:16 [1] 2023-12-14 243
6391 계 17:15 [1] 2023-12-13 228
6390 계 17:14 [1] 2023-12-12 326
6389 계 17:13 [2] 2023-12-11 212
6388 계 17:12 [1] 2023-12-08 241
6387 계 17:11 [1] 2023-12-07 261
6386 계 17:10 [1] 2023-12-06 234
6385 계 17:9 [1] 2023-12-05 244
6384 계 17:8 [1] 2023-12-04 221
6383 계 17:7 [1] 2023-12-01 238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