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4RmcJW81Hk?si=g1kXtE0g-er_7kV9
요즘은 시골까지 인터넷 광케이블이 깔려서 편리한 점이 많다.
특히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 관리와
유튜브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문명 이기다.
알고리즘 탓인지 가끔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뜬다.
며칠 전 <일 포스티노>를 보았다.
2시간짜리를 영화를 15분 만에 압축해서 소개해준다.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는 뜻이다.
내용은 그만두고, 이 영화에서 받은 강렬한 경험이 여운으로 남는다.
‘은유’(metaphor)가 그것이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칠레 시인의 시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해변 촌사람들의 대사에도 은유가 넘친다.
그 영화에서 은유는 reality이고 세계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곧 은유다. 은유가 영화 전편을 이끈다.
은유는 숨길 은(隱), 깨우칠 유(喩)를 쓴다.
숨기는 방식으로 깨우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나도 성경을 해석할 때 메타포라는 말을 종종 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폐성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가 일종의 은유인 <일 포스티노>를 보고서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이 세계가 은폐의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늦은 밤 동편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화성과
원당 숲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얼마나 이 세계는 신비로운지.
그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숨어 있는 세계가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사람들은 시를 불편하게 여기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불편하게 여긴다.
시를 모르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게 아닐는지.
여기서 시는 전문적이고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세상과 삶의 은폐된 신비에 대한 경험을 일상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다.
<일 포스티노>에서 파블로 네루다만이 아니라 무식한 우체부가 시인으로 살았듯이
우리도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올해 노벨 문학상을 탔다는 속보가 떴군요.
대단합니다.
지난날 고은, 박경리가 한국 첫 노벨문학상을 탈 거로 기대했었는데,
박경리 선생은 일찌감치 돌아가시고 고은은 '미투'로 낙방해서
노벨 문학상은 앞으로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 소설가가 노벨상을 받다니,
이게 꿈인가 싶기도 하고요.
당분간은 한국에 문학 바람이 불기는 할텐데,
잠깐의 바람으로 끝나지 말고
은유를 바탕으로 하는 시와 소설이
오랫동안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