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4월2일

조회 수 6044 추천 수 105 2006.04.02 23:08:37
2006년 4월2일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4)

세례 요한

공관복음서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복음서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설명하기 전에 세례 요한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심지어 세례 요한의 출생설화를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연결시키기까지 합니다. 요한은 이미 가임기가 끝난 엘리사벳의 몸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는 동정녀인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여섯 달 간격으로 태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 뒤로도 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지만 요한은 예수의 신발끈을 맬 자격도 없다고 자신을 낮추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서 “당신이 메시아인가?”하고 묻기도 했고, 자신은 망하고 예수는 흥해야 한다는 경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복음서는 근본적으로 세례 요한을 예수의 협력자로, 또는 보조자로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요한이 예수의 경쟁자였을 개연성이 완전히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경쟁자였을지 모른다는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복음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과 예수 사이의 경쟁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도 붙일 수 없을까요? 요한은 자기 나름으로 최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예수는 예수 나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바울은 요단강 가에서, 예수는 갈릴리 호수 가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지요. 그런 과정에서 서로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며, 따라서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구체적인 위기를 절감하면서 상대방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예수가 메시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며, 예수는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요한이 예수의 경쟁자였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이 문제를 이 두 사람에 있었을 법한 경쟁구도로까지 비약시킬 생각도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복음서 읽기의 정도가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요한의 운명을 조금 더 진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뿐입니다. 예수와 요한, 양자의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았을 뿐만 아니라 요한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죽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을 겁니다.  
불을 토하는 설교와 금욕적인 삶을 통해서 유대 민중들의 영혼에 불을 지른 세례 요한은 유대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그 당시에 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인물입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는 민중들만이 아니라 유대교의 고위 성직자들까지 모여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라는 건 그야말로 거품처럼 쉽게 사그라지기도 합니다. 요한이 헤롯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구명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급기야 그가 참수형을 당했어도 대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요한을 통한, 혹은 요한을 위한 민중 혁명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아주 허무하게 역사의 중앙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삶은 무의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서 설명한다면, 예수는 세례 요한의 출가와 그의 활동에 영적인 자극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 기자 모두가 동일하게 증언하고 있듯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영역에서 요한처럼 살아야하는 게 아닐는지요. 그렇게 살다가 때가 되면 무대에서 빨리 내려오는 게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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